지난 2022년 7월 19일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당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의 운전기사와 수행비서가 '장관님 수행'을 사유로 초과근무수당을 신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법무부가 우여곡절 끝에 정보공개청구에 응한 것이다. 한동훈은 그동안 청담동 술자리 참석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면서도 정작 그날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번 정보 공개로 한동훈이 해당 날짜에 수행 인력을 대동하고 심야에 외부 일정을 소화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동훈에게 유리한 심증을 보이던 항소심 재판부는 이 자료가 제출되자 12월 12일로 예정됐던 선고를 무기한 연기했다.
법무부, "장관님 수행" 다섯 글자 공개
법무부는 12월 8일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답변으로 한동훈 당시 장관의 수행비서 이승헌 씨와 운전기사 박종현 씨의 초과근무 신청 사유를 공개했다. 두 사람이 2022년 7월 19일과 20일 이틀간 초과근무수당을 신청하면서 기재한 업무 내용은 "장관님 수행"이었다.

두 사람의 초과근무 시간은 합산 14시간이다. 법무부는 당초 11월 24일까지 답변하기로 했으나 12월 8일로 연장했다. 연장 사유는 "청구 내용이 복잡해서 정해진 기간 내에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다섯 글자를 공개하는 데 법무부가 한 달 가까이 고심한 셈이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한동훈이다. 수행 인력 두 명이 밤 시간대에 초과근무를 했다면, 한동훈 장관도 그 시간에 외부에서 공식 일정을 수행했다는 뜻이 된다. 경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청담동 술자리가 열린 시각은 퇴근 이후인 오후 8시 이후로 확인됐다.
정보공개청구, 블랙홀 주변을 관측하듯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취재해온 뉴탐사는 한동훈의 동선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우회적인 방법을 택했다.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천체다. 직접 관측이 불가능하다. 천문학자들은 블랙홀과 주변 물질의 상호작용을 관찰해 블랙홀의 존재를 확인한다. 한동훈 본인에 대한 정보 공개가 막히자, 수행 인력의 근무 기록을 추적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운전기사 박종현 씨와의 직접 통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강진구 기자가 법무부 운전기사실에 전화를 걸어 박종현 씨와의 통화를 요청했다. 계장이 "막 들어왔다"며 전화를 바꿔주려는 순간, 수화기 너머로 박종현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끊어. 모른다고 해. 바꿔주면 어떻게 해." 계장은 곧이어 "지금 또 나갔다"고 말을 바꿨다. 운전기사가 청담동 술자리 참석 여부에 대해 사실대로 답변할 수 있었다면 저런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다.
한동훈, "직을 걸겠다"면서 행적은 미공개
한동훈은 2022년 10월 24일 국정감사에서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저 자리에 제가 갔던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다 걸겠습니다. 법무부 장관직 포함해서 제가 앞으로 어떤 직이라든가 다 걸겠습니다", "그 반경 몇 킬로 안에라도 있었으면 저는 다 걸겠습니다." 강한 부인이었다.
그런데 한동훈은 정작 그날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저는 술자리를 별로 안 좋아한다", "회식자리도 안 간다"는 말만 반복했을 뿐이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의 행적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만약 청담동 술자리와 무관한 곳에 있었다면 일정을 공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명 방법이다. 그러나 한동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첼리스트 박모씨의 녹취록도 의미심장하다. 박모씨는 오마이뉴스 하모 작가와의 통화에서 "증거가 없으니까 안 나서는 것"이라며 "선거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면 5년 동안 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청담동 술자리가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나온 발언이다. 술자리 자체가 허구라면 "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나올 이유가 없다.
경호처도 윤석열 행적 공개할까
대통령 경호처에도 같은 방식의 정보공개청구가 진행 중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수행 인력 명단과 해당 날짜의 초과근무 기록을 요청했으나, 경호처는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보공개법 제9조는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성명과 직위"는 비공개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 경호처 공무원이라고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경호처에서 같은 날짜에 수행 인력의 초과근무가 확인된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동훈이 동일한 시간대에 외부 활동을 했다는 정황이 더해진다. 법무부와 경호처 양쪽에서 수행 인력의 야간 초과근무가 확인된다면, 두 사람이 같은 장소에 있었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경호처가 정보 공개를 거부할 경우 행정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한동훈, 민형사 전패 위기…구속 가능성도
이번 정보 공개로 한동훈은 민사와 형사 재판 모두에서 전패할 위기에 몰렸다. 민사소송에서 입증 책임은 법률 효과를 주장하는 자가 진다. 한동훈은 1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인 한동훈이 청담동 술자리 보도가 허위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1심 재판부는 "허위성 입증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고 거듭 확인하면서도 판결문에서는 "피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청담동 술자리 존재를 믿기 어렵다"고 했다. 사실상 입증 책임을 언론사에 전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보 공개로 상황이 바뀌었다. 한동훈의 수행 인력이 해당 날짜에 '장관님 수행'으로 초과근무를 했다는 객관적 자료가 나왔다. 이제 한동훈이 그날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밝혀야 할 차례다. 밝히지 않으면 그 불이익은 한동훈이 감수해야 한다.
만약 청담동 술자리 참석 사실이 최종 확인될 경우, 한동훈은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국정감사에서 "저 자리에 갔던 적이 없다"고 한 발언은 위증죄에 해당할 수 있다. 뉴탐사를 상대로 제기한 형사고소는 무고죄가 된다. 10억 원 손해배상 소송은 소송사기로 볼 여지가 있다. 운전기사나 수행비서에게 입막음을 지시했다면 직권남용죄까지 추가된다. 한동훈이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항소심 재판부, 유리한 심증 보이다 돌연 선고 연기
가수 이미키 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재판부는 오는 12월 12일로 예정된 선고를 무기한 연기했다. 12월 9일 오전 '장관님 수행' 자료가 참고 서면으로 제출됐고, 같은 날 오후 재판부가 선고 연기를 결정했다. 연기 사유는 '기타'로 기재됐으며, 추후 기일을 정하겠다는 뜻의 '추정'으로 처리됐다. 형사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재판부는 한동훈의 항소심도 함께 맡고 있다. 앞서 9월 결심 직후 재판장은 "한동훈 장관이 직을 걸겠다고 했는데 그 이상 강하게 부정할 수 있냐"며 한동훈 측에 유리한 심증을 내비쳤다. "대통령이 그날 강남에 가서 술을 먹었다고 하면 따라붙는 수행 인력만 해도 수십 명인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도 했다. 그러나 디지털 증거 조작 의혹 자료와 법무부 정보 공개 결과가 잇따라 제출되면서 재판부의 태도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당초 10월 30일이던 선고가 12월 12일로 한 차례 연기됐고, 이번에 다시 무기한 연기됐다.
한동훈이 제기한 형사고소 사건의 재판도 12월 17일에서 1월로 연기됐다. 재판부가 첼리스트 박모씨 휴대폰의 내비게이션 파일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을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뉴탐사 측은 해당 디지털 증거에 조작 흔적이 있다고 주장하며 감정을 신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검찰 측이 준비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하면서 기일이 연기됐다.
청담동 술자리와 관련된 세 개의 재판이 모두 형사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형국이 됐다. 이미키 씨 항소심, 한동훈 항소심, 그리고 형사재판까지 세 건 모두 연내 선고가 불가능해졌다. 국과수 감정 결과가 나오면 형사재판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증거 조작이 확인될 경우 검찰이 공소를 취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동훈, 이제 말해야 할 때
한동훈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2022년 7월 19일 저녁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공개하면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 공개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수행비서와 운전기사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울 경우, 두 사람이 위증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동훈을 보호할지는 미지수다. 운전기사실 통화에서 드러난 회피 반응은 이미 그들이 처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1심에서 한동훈이 승소한 뒤 상황은 한동훈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정권 교체 이후 법무부의 정보 공개 태도가 달라졌고, 디지털 증거 조작 의혹도 제기됐다. 항소심 재판부의 선고 무기한 연기는 1심 판결만으로 사건을 마무리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보여준다. 한동훈의 결기 있는 발언은 3년이 지난 지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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