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트럼프는 '승리'를 말했고, 시장은 '폭격 연장'을 들었다
워싱턴은 승리, 테헤란은 조롱, 서울은 -3%... 트럼프 연설 하나에 세계가 갈라졌다
KOSPI 전날 8% 급등 후 오늘 연설 직후 3% 급락, 고점 대비 235포인트 증발
트럼프 "핵심 전략 목표 완수 임박" 직후 "2~3주 더 극도로 강하게 타격" 예고
종전 선언·철수 일정 없이, 호르무즈 정상화 책임은 동맹국에 전가
뉴욕·런던 마감 상태에서 연설, 서울·도쿄만 장중 반응
미국은 모순을 봤고, 유럽은 에너지 공백을, 이란은 미국의 약점을 봤다
10시에서 10시 33분 사이
4월 2일 오전 10시, 트럼프가 '에픽 퓨리 작전' 경과를 밝히는 대국민 연설을 시작했다. "지난 4주 동안 미군은 신속하고 결정적이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KOSPI는 장 초반 5,551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전날 종전 기대에 8% 넘게 뛴 여세가 남아 있었다.
다음 문장에서 분위기가 뒤집혔다. "앞으로 2~3주 동안 이란을 극도로 강하게 타격할 것이다."
10시 33분 기준 KOSPI는 전일 대비 162포인트(2.96%) 내린 5,316. 장 초반 고점에서 따지면 30분 만에 235포인트가 증발한 셈이다. 코스닥도 2%대 동반 하락. 원/달러 환율은 1,518원을 돌파했다.
시장이 기대한 건 세 가지였다. 구체적 철수 일정, 호르무즈 개방 보장, 핵협상 로드맵. 하나도 충족되지 않았다. 호르무즈를 아예 안 꺼낸 건 아니다. 트럼프는 "전쟁이 끝나면 해협은 자연스럽게 열린다"고 말하면서 "기름이 필요한 나라들은 용기를 내서 해협에 가서 직접 지켜라"고 했다. 거기에 "미국산 원유를 사라, 우리한테는 넘치도록 많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호르무즈 정상화 보장이 아니라, 동맹국에 책임을 넘기면서 미국산 원유 세일즈까지 한 셈이다. 이란을 "잔혹한 테러 정권"으로 규정하고, 나토 동맹국에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는 대목도 들어갔다. "핵심 전략 목표가 완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 뒤에 "2~3주 더 때리겠다"를 붙인 연설이었다.
4개 대륙이 서로 다른 문장을 들었다
흥미로운 건 이 연설을 놓고 세계 언론의 초점이 완전히 갈라졌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임무를 '거의' 완수했다"고 말한 순간 투자자들은 "아직 안 끝났다"로 읽었다고 분석했다. BBC는 'US on the cusp of ending Iran war(미국, 이란전 종결 직전)'라는 헤드라인을 달았지만 본문에서는 전쟁이 끝나는 것과 미국이 빠지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짚었다. 미국·영국 언론은 모순에 집중했다.
유럽의 관심사는 달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연설 전날 트럼프의 행보에 'Mess-up accomplished(엉망진창 달성)'라는 제목을 달았다. 유럽이 듣고 싶었던 건 종전이 아니라 기름값이었다는 뜻이다.
이란의 반응은 완전히 반대 방향이었다. 아라크치 외무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은 열려 있다, 다만 우리를 공격한 국가들의 선박에는 닫혀 있다"고 했다. "미국이 정말 용감하다면 직접 와서 열어보라." 이란 국영 통신 IRNA와 Press TV는 아라크치 발언을 그대로 전하면서, 트럼프의 종전 요구에 대해 "미국이 협상 조건을 제시할 자격이 없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아시아 언론은 시장 충격에 매달렸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TD시큐리티 전략가의 말이 정확하다. "시장에 중요한 건 호르무즈 정상화였는데, 연설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왜 서울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맞았나
연설 시각은 미국 동부시간 오후 9시. 뉴욕은 5시간 전에 마감했다. 런던도 닫혔고 상하이는 아직 열기 전이었다. 정규장이 열린 주요 시장은 서울과 도쿄뿐이었다. 뉴욕과 유럽 투자자들은 하룻밤 동안 분석하고 대응할 시간이 있었다. 서울과 도쿄는 연설이 나오는 그 순간에 사고팔아야 했다.
KOSPI의 낙폭(-2.96%)이 닛케이(-1.8%)보다 컸다. 한국 증시의 개인투자자 거래대금 비중은 60%를 넘는다. 기관·외국인 중심인 도쿄에 비해 실시간 뉴스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구조다. 전날 사이드카가 발동될 만큼 급하게 올랐다는 건, 같은 속도로 내려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거기에 에너지 구조가 겹친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7%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이 중 99%가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한다. 트럼프가 호르무즈 정상화를 보장하지 않고 "다른 나라들이 지켜라"고 떠넘긴 이상, 유가 하락 기대는 후퇴한다. 유가가 오르면 물류비가 오르고, 식료품이 오르고, 한국은행 금리 인하 시점이 밀린다. 변동금리 대출을 안고 있는 가계 입장에서는 트럼프 연설 한 편이 이자 부담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승리는 누구의 언어인가
결국 이 연설에서 '승리'라는 단어는 쓰는 사람마다 뜻이 달랐다.
트럼프에게는 중간선거 7개월 전, 경제 지지율 31%(CNN/SSRS 조사)인 상황에서 "우리가 이기고 있다"는 내러티브가 필요했다. 이란에게는 "미국의 시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체제 정당성을 유지하는 메시지였다.
시장은 기대에도 반응하고, 실망에도 반응한다. 다만 기대로 올린 가격은 언젠가 사실로 증명되든지, 아니면 되돌려지든지 해야 한다. 전날 8%는 종전 기대가 올린 가격이었고, 오늘 3%는 그 기대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돌려준 값이다. 이란 전쟁 개전 이후 KOSPI는 -16%에서 +8%로, 다시 -3%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호르무즈가 막혀 있는 한, 이 롤러코스터는 트럼프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또 반복된다.
최신뉴스
여러분의 회비는 권력감시와 사법정의, 그리고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취재 및 제작에 사용되며, 뉴탐사가 우리사회 기득권을 견제할 수 있는 언론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뉴탐사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