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12.3 쿠데타 1주년, 국회 앞에 다시 모인 시민들 "내란 청산 끝까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 영장 기각에도 시민 열기 식지 않아…한덕수 "눈 뜨고 있었는데 뭘 봤는지 몰라"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시민들은 맨몸으로 국회를 향해 달려갔다. 장갑차를 에워싸고, 군용 버스 앞을 막아섰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2025년 12월 3일, 영하 7도의 한파 속에서 시민들이 다시 국회 앞에 모였다. 내란 청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외침과 함께였다.
이날 새벽 전해진 소식은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서울중앙지법 이정재 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이다. 이정재 판사는 지난 6월 윤석열 체포영장을 기각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삼부토건 조성옥, 스카이데일리 기자 영장도 그의 손에서 기각됐다.
추경호의 뻔뻔한 증언 거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은 영장 심사를 앞두고 열린 증인신문에서 묵비권을 방패 삼았다. 지난달 24일 한덕수 재판 증인으로 출석한 그는 "같은 취지로 증언을 거부하겠습니다"를 반복했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통화 내용을 묻자 증언을 거부했다. 비상계엄 선포 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한덕수 총리가 "추 대표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는 경호관 진술에 대해서도 추경호 의원은 입을 다물었다. 원내대표의 역할이 무엇인지, 국무총리의 역할이 무엇인지조차 답변하지 않았다. 재판장이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게 있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지만 그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국민의힘은 영장 기각 소식에 환호했다. 내란 정당 오명을 벗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추경호 의원은 여전히 기소된 상태다. 재판은 진행 중이고, 증언 거부의 불이익은 본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덕수, "눈을 뜨고 있었는데 뭘 봤는지 몰랐다"
한덕수 전 총리의 법정 발언은 추경호 의원 못지않게 황당했다. 검찰이 CCTV 영상을 제시하며 대통령 집무실에서 문건을 들고 나온 장면을 확인시켜도 그는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문건 두 종류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구분한 모습이 찍혀 있었지만 "무엇인지 인지를 하지 못한다"고 잡아뗐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는 장면도 CCTV에 담겨 있었다. 한덕수는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계엄 당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화를 나눈 사실마저 "CCTV를 보고 알았다. 대화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의 결론은 이랬다. "아마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눈을 뜨고는 있는데 뭘 보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나 그렇게까지도 생각을 했습니다." 국무총리라는 사람이 헌정질서가 중단되는 그 순간 '눈뜬 장님'이었다고 자인한 셈이다. 시민들이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설 때 국정 책임자는 스스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변명하고 있다.
국민의힘 '개사과'의 민낯
12.3 쿠데타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반성문을 발표했다. 친한동훈계 모임인 '대안과 책임' 소속 25명이 이름을 올렸다. 안철수, 송석준, 배준영, 김재섭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계엄을 막지 못한 점을 사과하고 윤석열과의 단절을 약속했다.
그러나 같은 날 송석준 의원은 국회 앞에서 다른 모습을 보였다. 내란을 부정하는 시위대 사이에서 '이재명 재판하라'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오전에는 사과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오후에는 12.3 쿠데타를 부정하는 집회에 참가한 것이다. 107명 국민의힘 의원 중 25명만 사과에 동참했다는 사실도 이들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송언석 원내대표도 "계엄을 막지 못해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막지 못한 것은 계엄만이 아니다. 탄핵안 1차 표결 때 의원들을 당사로 불러 모아 부결에 가담했던 것은 국민의힘이다. 한남동 관저 앞에서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것도 이들이다. 계엄에 대한 사과 이전에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반성이 먼저다.
"윤석열은 스스로 임기를 단축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8분,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0시 55분 이재명 대표가 시민들에게 국회로 와달라고 호소했다. 뉴탐사는 10시 58분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취재진을 나눠 현장으로 보냈다. 박대용 기자는 국회로, 강진구 기자는 과천 수도방위사령부로, 권지연 기자는 국회의장 공관으로 향했다.
11시 4분 국회 출입문이 폐쇄됐다. 11시 35분 박대용 기자가 국회에 도착했고, 11시 37분 경찰이 국회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강진구 기자는 수방사 앞에서 경찰이 삼엄하게 경계하는 가운데 차량들이 이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12월 4일 오전 0시 20분, 강기자는 상황을 전파했다. "수방사에서 사이카 호위 받으며 차량 통과. 요인 체포조로 보임."
그 차량들은 14명의 체포 명단을 들고 국회로 향하던 병력이었다. 0시 22분 계엄군이 국회 본청 출입문을 폐쇄했고, 0시 45분 본청에 진입했다. 0시 49분 국회 본회의가 개의됐고, 0시 50분 강진구 기자가 국회 정문앞에 도착했다. 1시 1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강진구 기자는 계엄 선포 직후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이 스스로 임기를 단축시켜버린 것 같아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계엄군을 막아선 것은 시민들이었다. 장갑차 앞에 몸을 던지고, 군용 버스를 에워쌌다.
계엄 해제 뒤에도 자리를 지킨 시민들
새벽 1시 1분,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 시민은 말했다. "아직 안 끝났어요. 윤석열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확실한 거 보고 가려고요."
또 다른 시민은 더 분명하게 말했다.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지만 예외 조항이 있죠. 내란이나 외환죄를 범하면 당연히 체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윤석열은 계엄 해제 의결 직후 국방부 벙커로 내려가 2차 계엄을 모의하고 있었다. 국무회의가 열리지 않아 계엄 해제가 지연되는 동안 또 다른 쿠데타가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영하 7도 한파 속에서 시민들이 다시 국회 앞에 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법정 공휴일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여전히 내란 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추경호 의원 영장이 기각됐어도, 한덕수가 뻔뻔하게 버텨도, 국민의힘이 개사과를 해도 시민들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1년 전 그날 밤,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섰던 그 시민들이 여전히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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