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추진하는 '약자와의 동행' 사업 운영 과정에서 보조금 부정 사용 의혹이 제기됐지만, 서울시의 형식적인 조사와 미온적 대응으로 사태가 더욱 악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내부 비리를 고발한 사회복지사는 오히려 해고되고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으며, 불법을 자행한 상담소 측은 아무런 처벌 없이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약자와의 동행, 화려한 구호의 민낯
2022년 7월 오세훈 시장이 취임하면서 민선 8기 첫 추경 예산에 '약자와의 동행' 사업이 포함됐다. 당시 기준금리와 물가 상승으로 민생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시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1550억 원의 재원을 확보하고, 이를 약자와의 동행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세훈 시장은 취임 직후 쪽방촌을 방문해 "약자와의 동행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제가 서울시장으로 존재하는 이유이자 평생의 과업"이라며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서울에 있는 쪽방주민 2,400여 명을 위한 '동행식당' 50곳이 운영되는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이 추진됐다.
'서울특별시 쪽방 주민의 복지 및 생활 안정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쪽방주민은 시장이 별도로 정한 쪽방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자를 말하며,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상담 및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방상담소에 대한 지도감독권은 서울시장에게 있다.
드러난 비리, 개인 카드로 매일 식당 이용
문제는 쪽방 주민 지원 사업 운영 과정에서 불거졌다. 남대문 쪽방 상담소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던 한 직원이 내부 비리를 발견하고 제보에 나선 것이다.
사회복지사의 증언에 따르면, 통합사례회의 중 한 쪽방주민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음에도 '동행식당'을 매일 이용하는 것으로 기록된 사실을 발견했다. 쪽방주민들은 동행식당을 이용할 때마다 카드로 8,000원씩 결제하는데, 구치소에 있는 사람의 카드가 계속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서울고시원의 한 주민이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 주민이 "저는 엄모씨가 아니라 김모씨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해지니 앞으로는 모른 척해 주세요"라고 말한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발견한 사회복지사가 상담소 중간관리자에게 보고했지만, 오히려 그 이후부터 직장 내 괴롭힘이 시작됐다.
미거주자 명의로 보조금 부정 사용 의혹
본지가 입수한 서울고시원 쪽방주민 명단에 따르면, 매달 최대 35명이 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명단에는 구치소 수감, 병원 입원, 이사 등으로 실제로는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2023년 12월 확인 결과, 김모씨와 한모씨는 '교정시설(구치소)'에 수감 중이었고, 다른 주민들도 병원에 입원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들 명의로 동행식당과 목욕탕 이용권이 계속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동행 식당의 경우 한 사람당 하루 8,000원, 한 달이면 24만 원의 식사비가 지원된다. 이런 방식으로 허위 기재된 명단을 통해 상당한 보조금이 부정하게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내부 고발 후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 해고
비리를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한 사회복지사는 상담소 측으로부터 갖은 괴롭힘을 당했다. 남대문 쪽방상담소 측은 해당 사회복지사가 서울고시원 원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고 주장하며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상담소 측이 제시한 증거에는 사회복지사가 카메라, 갤럭시 워치, 휴대폰, 운동화 등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해당 카메라는 상담소 행사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것이었고, 휴대폰과 운동화는 쪽방 주민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확인됐다. 상품권과 침향환은 받은 적이 없는 허위 기재였다.
결국 해당 사회복지사는 "삼성 노트북을 인권 교육 시 개인적 사용", "사무실 카메라 승인 없이 반출", "시설장 승인 없이 각종 서류 및 물품 반출", "삼성 노트북 파손" 등의 이유로 해고됐다.
형식적인 서울시 감사, 비리 확인했지만 "교육하겠다"
해고된 사회복지사는 지방 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제기해 인정을 받고 원직 복직했다. 그러나 복직한 첫날, 상담소 소장은 "서울시와도 다 소통을 했고" "다시 징계할 수도 있다"며 자진 사직을 종용했다.
사회복지사가 서울시 감사위원회에 감사 청구를 한 결과, 서울시 감사과는 "남대문 쪽방상담소가 임의적으로 사무처리한 점은 적절하지 않으나, 확인된 내용만으로 사업 운영 비리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후원금 관리 등에 있어 관련 직원에 대한 후원금 관리 규정을 준수시키고 교육·지도감독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는 형식적인 결론을 내렸다.
서울시 감사과 답변에 따르면 "수감되어 있는 사람이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는 건 맞는데,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어려운 사람이 썼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누가 혜택을 받았는지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정한 약자와의 동행은 구호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부당 해고와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사회복지사는 "15년 동안 열심히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돌아온 열매가 결국 이런 거였나"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힘없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당해야 하나, 힘 있는 사람은 떵떵거리면서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회가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해당 사회복지사가 떠난 후에도 쪽방 주민들은 "과장님 빨리 오셔야 돼", "이 과장님 때보다 아주 못해줘 말도 못해" 등의 메시지를 보내며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오세훈 시장이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 철학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약자를 보호하려던 이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남대문 쪽방상담소에서 공익 제보로 인해 한 사회복지사가 부당해고와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음에도 서울시는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방관했다.
진정한 약자와의 동행은 구호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서울 시장은 최고 책임자로서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낸 이들이 오히려 희생되는 이런 모순적 상황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바로 나갈 것인지 밝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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