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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는 고환율, 윤석열 때와 다른 이유

흑자국인데 원화만 약세… 1500원대 체류, 2009년보다 길어

수출 사상 최대·36개월 흑자에도 원화만 유독 약세

벌어들인 달러, 해외투자로 다시 유출… 유가·한미 금리차·계엄 충격 겹쳐

1500원대 체류 15거래일, 2009년 11거래일보다 길어… 수입물가가 소비자물가로 전가

2026-06-11 15:31:48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머물고 있다. 한국은 수출이 사상 최대고, 36개월 연속 흑자국이다. 그런데 원화만 유독 약하다. 곳간은 차 있는데 원화 값은 떨어진다.


유가는 내렸는데 기름값은 그대로


전국 평균 휘발유값은 리터당 2010원쯤이다. 경유도 2000원대다. 50리터를 채우면 한 번에 10만원이 넘는다. 그런데 이상한 대목이 있다. 국제 유가는 3월 고점에서 많이 내렸다. 중동산 두바이유는 지금 90달러 안팎이다.

▲2026년 1~6월 두바이유와 원·달러 환율 추이. 두바이유는 3월 고점 뒤 90달러 안팎으로 내렸지만, 환율은 1500원대에 올라선 뒤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자료=한국석유공사·한국은행


유가가 내렸으면 기름값도 가벼워질 법한데 체감은 그대로다. 기름값을 처음 밀어 올린 건 유가였다. 하지만 유가가 내려오는 지금, 가격이 내려올 길목을 환율이 붙잡고 있다. 기름 한 배럴을 원화로 환산한 값은 1년 새 60% 넘게 올랐다. 오른 값의 4분의 3은 유가, 4분의 1은 환율 몫이다.

▲기름 한 배럴을 원화로 환산한 값. 1년 새 8만8059원에서 14만4199원으로 60% 넘게 올랐다. 오른 값의 4분의 3은 유가, 4분의 1은 환율 몫이다. 자료=두바이유·원달러 환율 자체 계산


달러는 제자리, 원화만 약세


달러가 세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달러가 다른 통화에 견줘 얼마나 센지 보는 지표는 올해 거의 제자리다. 반면 원화는 주요 통화 가운데서도 약세가 유달리 두드러진다. 위안화에도, 엔화에도 더 떨어졌다.


강달러가 아니라 원화 약세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달러가 세서 다 같이 약해졌다면 원인은 바깥에 있다. 그런데 달러는 제자리인데 원화만 빠졌다면, 원인은 우리 안에 있다는 신호다.


달러 벌어도 빠져나가는 구조


한국은 달러를 못 버는 나라가 아니다. 경상수지는 36개월 연속 흑자다. 5월 수출은 877억달러로 월간 사상 최대였다. 외환보유액도 4270억달러로 세계 12위다. 미국 재무부도 올해 1월 환율 보고서에서 원화 약세가 한국의 탄탄한 경제 기초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들어온 달러가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김종화 위원은 지난해 말 그 이유를 짚었다. 환율 상승의 큰 부분이 국민연금과 개인의 해외투자 같은 수급 요인이라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미국 주식만 지난 한 해 40조원 넘게 사들였다. 국민연금도 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해외에 굴린다.


해외 자산을 사려면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야 한다. 원화를 내다 파는 힘이 커지니 원화 값이 떨어진다. 무역으로 번 달러가 한쪽 문으로 들어와도, 해외투자라는 다른 문으로 더 크게 빠져나가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 때와 다른 고환율


고환율이 이번 정부 들어 갑자기 생긴 일은 아니다. 환율은 윤석열 정부 때 이미 1400원을 넘었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직후엔 70원 가까이 뛰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그 상승분 중 30원쯤이 정치적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 월평균 추이. 윤석열 정부 때 1276원에서 출발해 1400원을 넘었고, 2024년 12월 계엄 직후 뛰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무렵 1370원대로 내렸다가 2026년 다시 1500원을 넘었다. 자료=한국은행 ECOS


다만 성격은 다르다. 그때는 미국이 금리를 빠르게 올리던 강달러 국면이었다. 전 세계 통화가 같이 밀렸고, 거기에 계엄 충격이 얹혀 한 번 튀었다. 지금은 달러가 제자리인데 원화만 약하다. 한 번 오른 자리에서 잘 내려오지도 않는다. 문제가 높이에서 길이로 옮겨갔다.


높이가 아니라 길이


이번 고환율의 핵심은 사상 최고치 여부가 아니다. 1500원대에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다. 1500원대 연속 거래일수는 2009년 금융위기 때 11거래일이었다. 지금은 15거래일을 넘겼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연속으로 머문 거래일수. 2009년 금융위기 때는 11거래일 만에 내려왔지만, 이번에는 15거래일을 넘기고도 이어지고 있다. 자료=한국은행 매매기준율


짧은 충격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같은 환율이 오래가면 기업은 원가에 반영하고, 가게는 가격표에 반영한다. 소비자는 그 값을 매달 치른다. 이 부담은 시차를 두고 영수증으로 번진다. 한국은행 수입물가는 3월 한 달 만에 16% 넘게 올랐다. 원유와 가스가 들어가는 광산품은 40% 넘게 뛰었다. 두세 달 뒤 5월 석유류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4% 올랐다.


해열제는 있고 체질 개선은 없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외환시장 구두 개입과 국민연금 외환스와프, 유류세 인하와 최고가격제, 10조원대 지원이 동원됐다. 다만 최고가격제는 주유소 판매가를 직접 묶는 게 아니라 정유사 공급가격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여덟 번 연속 2.5%로 묶었다. 미국은 3.5%대다. 한미 금리차는 상단 기준 1.25%포인트다. 금리가 높은 쪽으로 돈이 흐르니 이 격차도 원화엔 부담이다. 지원금은 한 번이지만 고환율은 매달 돌아온다. 단기 처방은 보이지만, 에너지 수입처와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는 체질 개선은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하루의 환율은 뉴스로 지나간다. 오래 머무는 환율은 물가가 된다. 지금 환율은 15거래일 넘게 1500원대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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