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시 향산지구에 우뚝 선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리버시티. 11만8000평 규모의 이 대단지 아파트 뒤에는 27년간 이어진 중소기업의 절규가 숨어 있다. 유진종합건설은 현대건설이 사문서 위조와 인감 도용, 소송 사기를 통해 2100억 원 상당의 사업 수익을 강탈했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이 홀로 다진 사업 기반
1997년, 유진종합건설은 김포 향산지구 도시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수도권 서부의 김포는 제1순환고속도로와 연계된 교통 중심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진종합건설 심주섭 대표는 "취락지역을 도시 지역으로 변경해 민간 사업 중 가장 큰 규모의 사업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유진종합건설은 3년에 걸쳐 518필지의 토지 소유주 중 85%로부터 매도 동의를 받아냈다. 인허가 비용만 95억 원, 토지 매입 비용 62억 원 등 총 158억 원을 단독으로 부담했다. 국토이용계획 변경 허가를 위한 환경영향평가에 34억 원, 부지 내 군부대 이전 동의 비용 37억 원, 도로점용 허가 비용 15억 원이 모두 유진종합건설의 주머니에서 나갔다.2001년 서울지방국토관리청으로부터 받은 도로연결점용 허가증에는 유진종합건설 명의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심 대표는 "아파트를 짓기 위해선 교통 인프라가 가장 중요하다"며 "IC를 신청해 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공동사업에서 단독사업으로 둔갑
처음 시공사로 접촉한 동아건설이 부도나자, 유진종합건설은 지인 소개로 현대건설과 손잡았다. 1999년 11월 공사도급약정서와 용역계약서를 체결했고, 2000년 3월엔 금전소비대차계약서를 맺으며 공동사업 구조를 확립했다.현대건설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점이 공동사업의 발단이었다. 심 대표는 "현대건설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공동사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유진종합건설이 어음을 발행하고 현대건설이 배서하는 방식으로 153억 원을 조달했다. 은행은 "공동사업이 아니면 어음 발행을 안 해주겠다"며 압박했다.이미 매입한 토지는 두 회사가 절반씩 공동 등기했다. 2000년 5월 접수된 등기부등본에는 '지분 2분의 1 현대건설, 지분 2분의 1 유진종합건설'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시적 명의 변경, 영구 강탈로 이어져
2001년 현대건설은 "일시적으로 사업자 명의를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유진종합건설이 2000년 6월 사업승인 신청을 했다가 토지 확보가 완료되지 않아 취하한 상태였다. 주택건설촉진법상 1년이 경과해야 재신청이 가능했지만, 사업자를 바꾸면 즉시 신청할 수 있었다.심 대표는 "빨리 사업을 진행하자는 현대건설의 요청에 김포시와 현대건설에 사업자 변경 승인을 해줬다"며 "전체 사업의 공동사업 구조가 포기된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하지만 명의 변경 이후 현대건설은 본색을 드러냈다.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위조하고 인감증명서를 도용해 공동 소유 토지를 단독 명의로 전환했다.
위조된 매매계약서의 결정적 증거들
현대건설이 제출한 부동산 매매계약서의 날짜는 2000년 6월 15일이다. 매도인은 유진종합건설 대표 심주섭으로 기재됐고, 법인 인감 두 개가 찍혀 있다. 하지만 이 계약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위조였다.첫째, 심주섭 대표가 유진종합건설 대표로 취임한 날짜는 2000년 11월이다. 계약서 작성일보다 5개월이나 늦다. 존재하지도 않던 대표이사의 명의로 계약서가 작성된 것이다.둘째, 계약서에 찍힌 두 개의 인감 중 하나는 이미 사망한 전임 공동대표의 것이다. 심 대표 취임 이전 유진종합건설은 두 명의 공동대표 체제였는데, 그중 한 명이 계약서 작성 당시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셋째, 같은 날짜로 작성된 위임장에는 유진종합건설 대표가 전임 공동대표 두 명(정모씨, 김모씨)으로 기재돼 있다. 같은 날 작성된 서류인데 한쪽은 심주섭, 다른 쪽은 정모씨·김모씨가 대표로 나와 있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넷째, 위임장에 첨부된 인감증명서는 실제로는 인감증명 신청서였고, 날짜는 1999년 12월 1일로 계약일로부터 6개월 이상 지나 효력을 상실한 상태였다.심 대표는 "사업승인 신청할 때는 공동 등기가 돼 있었는데, 부동산을 넘길 이유가 전혀 없다"며 "단독 대표인데 왜 인감 도장이 두 개나 찍혀 있느냐"고 반문했다.
도로점용 허가증까지 불법 승계
현대건설은 유진종합건설 명의로 발급된 도로점용 허가증마저 불법으로 승계했다. 권리의무 승계 신고서에는 '2번' 도장과 '11번' 인감이 사용됐다. 하지만 이런 번호가 매겨진 도장은 중요 서류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업계 상식이다.심 대표는 "사업자 변경을 위해 인감을 떼줄 때 김포시청과 국토관리청에 각각 제출해야 하는데, 한 장만 떼줬다"며 "그 인감을 김포시청엔 제출하지 않고 국토관리청에만 사용했다"고 폭로했다.현대건설 내부 결재 문서에도 유진종합건설 인감이 찍혀 있지만, 정식 인감이 아닌 '2번' 도장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2심 승소 직전, 회유와 배신
2005년 인천지법 1심은 공동 등기를 명의신탁으로 간주해 유진종합건설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달랐다. "원고와 피고는 공동사업이 맞다"며 합의를 권고했다.재판이 불리해지자 현대건설 주택건설과 이모 부장이 직접 나섰다. 당시 유진종합건설 대표였던 이모씨를 찾아가 "소송을 취하하면 향산지구 토목공사를 전부 주겠다"고 제안했다.이모 전 대표는 증언했다. "이 부장이 형님처럼 잘해줘서 믿었다. 토목공사를 다 준다고 해서 돈 한 푼 안 받고 소송을 취하해줬다. 그런데 나중에는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자기들끼리 해버렸다."더 큰 문제는 인감 도용이었다. 이모 전 대표는 "가처분만 취하하기로 하고 도장을 줬는데, 나도 모르게 모든 소송 건에 다 찍어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6가지 불리한 확인서에 날인
현대건설이 받아간 인감으로 작성된 확인서에는 6가지 항목이 담겼다. △항소 취하 △두 건의 소송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기로 함 △부동산 명도 △명도 불이행 시 현대건설의 철거 처분 인정 △향산지구 사업 관련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 제기 및 관여 금지 등이다.심 대표는 "2023년 소송 때 처음 이 확인서를 봤다"고 말했다. 이모 전 대표가 증인으로 나서 "가처분만 취하하기로 약속했다"고 증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이모 전 대표는 "현대건설이라는 대그룹이 조그만 회사 하나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생을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와버렸다"고 토로했다.
현대차 인수 후 완공, 유진은 배제
2011년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서 전환점이 찾아왔다. 워크아웃에서 벗어난 현대건설은 강력한 자본력을 확보했고, 멈춰 있던 향산지구 사업이 다시 움직였다. 2020년 11만8000평 대단지가 완공됐다.하지만 처음 사업을 시작한 유진종합건설은 이 성공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받은 돈은 용역비 15억 원뿐이었다.현대건설 출신 30년 경력의 전직 임원은 증언했다. "당시 4700억 규모의 한강 이남 최대 현장이었다. 이 정도 프로젝트는 사장부터 본부장, 임원, 간부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입만 닫고 있을 뿐이다. 문제가 터지면 사장도 감방 갈 정도다."그는 "땅값을 싸게 사서 가짜 매각서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이익이 많이 나오는 사업이 됐겠느냐"며 "지불할 건 지불하고 먹어야지 통째로 먹어버리는데 그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20년 법적 공방, 번번이 패소
유진종합건설은 2005년부터 법정 투쟁을 이어왔다. 토지이전등기 말소 소송 1심은 패소했고, 유리하게 진행되던 2심은 현대건설의 회유로 취하됐다. 2023년 재소송을 제기했지만 2024년 10월 행정소송, 2025년 11월 항소심 모두 패소했다.심 대표는 "1심에서 매매계약서가 가짜라고 밝혔는데도 조사도 안 하고 현대 편을 들어줬다"며 "공동사업 계약도 있고 증인 신청도 했는데 전부 묵살했다"고 항변했다.항소심은 단 두 번의 심리로 끝났다. 전임 대표이사와 현대건설 이모 부장에 대한 증인 신청은 모두 기각됐다.
1100억 원대 조세포탈 의혹
유진종합건설은 현대건설의 조세포탈 의혹도 제기했다. 김포시 승인 분양 면적은 11만2000평인데, 지방세 신고 건축 연면적은 4300평에 불과했다. 10만 평 이상을 축소 신고한 것이다.심 대표는 "계산하면 세금을 약 1100억 원 내야 하는데 11억 원 정도밖에 안 냈다"고 주장했다. 현대건설의 전체 매출 대비 비율로 따져봐도 3% 수준으로 동일하게 축소 신고됐다는 것이다.2024년 12월 현대건설은 서울국세청 조사4국으로부터 특별 세무조사를 받았다. 조사4국은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의혹이 명확할 때만 투입되는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 전담 부서다. 다만 이번 조사가 향산지구 사건과 직접 관련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유진종합건설이 종로세무서에 제출한 고발장에 대해서는 "자료가 미미하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현재 재신청해 검찰로 넘어간 상태다.
"근거 없는 허위 사실" 현대건설 반박
현대건설 홍보실은 6가지 질의에 대해 간략히 답변했다. "본 사업은 현대건설의 민사소송 승소와 유진종합건설 측의 권리포기 확인서 제출을 통해 사업 관련 권리 관계가 정리 완료됐고, 현대건설이 단독 시행 및 시공한 사업이다. 유진종합건설의 공동사업권 주장 및 수익금 배분 요구는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이다."심 대표는 "정산을 했으면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밝혀야 한다"며 "권리를 포기하면 대가가 있어야 하는데 지불도 안 하고 포기 확인서를 받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그는 "우리 사건과 같은 유사 사건이 여러 건 있다"며 "자유항공 탈취 사건도 계약금만 주고 다 뺏어먹은 경우"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주영 회장, 정몽구 회장 등이 연루된 사건도 있었다고 주장했다.심 대표는 "2017년 정몽구 회장이 직접 '심주섭에게 넘겨주라'고 지시하고 금액까지 정해줬는데, 후임 대표가 바뀌면서 묵살됐다"고 밝혔다.27년간 이어진 싸움. 현대건설은 수천억 원의 이익을 챙겼고, 유진종합건설은 파산으로 내몰렸다. 심 대표와 지지자들은 매주 현대건설 사옥, 국회, 국세청 앞에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최신뉴스
여러분의 회비는 권력감시와 사법정의, 그리고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취재 및 제작에 사용되며, 뉴탐사가 우리사회 기득권을 견제할 수 있는 언론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뉴탐사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