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뉴탐사

민주당 공천 없이 이긴 당선자들 "받았으면 오히려 떨어졌다"

'민주당 공천=당선' 공식 깨진 호남…신안·장흥·완도 군수와 목포시의원

민주당 텃밭 전남 22곳 중 5곳서 비민주당 단체장 당선

당선자들 "정당공천이 오히려 독"…공천제 폐지 한목소리

홍형식 소장 "한 달 새 20%포인트 역전, 33년 만에 처음"

2026-07-19 09:40:31

호남에서 민주당 공천은 곧 당선을 뜻한다. 경선이 본선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공천 경쟁이 치열하다. 공천에서 밀리면 당선은 어렵다는 게 오랜 상식이었다. 그런데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그 공식이 흔들렸다. 전남 22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5곳에서 민주당 후보가 졌다. 조국혁신당이 신안·장흥을, 무소속이 광양·강진·완도를 가져갔다.


이 가운데 세 곳의 당선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조국혁신당 김태성 신안군수와 사순문 장흥군수, 무소속 김신 완도군수다. 여기에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시의원에 당선된 손혜원 전 국회의원도 함께했다. 지난 18일 광주 오룡관에서 열린 호남뉴탐사 '불의고리' 출판기념회 자리에서다.


넷의 출마 경위는 제각각이다. 손혜원 의원은 민주당 공천을 신청조차 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나섰다. 사순문 군수도 공천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다. 김태성 군수는 당원 자격정지 처분을 받고 탈당했다. 김신 군수는 경선에서 두 번 미끄러진 뒤 무소속으로 돌아섰다. 그런 이들이 텃밭에서 이겼다. 그리고 입을 모아 말했다. 공천을 받았다면 오히려 당선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불의고리'는 지난 1년간 호남 지방정치를 훑은 취재 기록을 묶은 책이다. 고리는 모두 다섯 개다. 재난 수준의 공천, 그렇게 당선된 탐관오리, 언론 관리, 신천지 같은 조직의 경선 개입, 그리고 지방의회 견제 기능의 붕괴다. 환태평양 화산대를 뜻하는 '불의 고리'에 빗댄 제목이다. 오래 눌려 있던 호남 민심이 이번 선거에서 마그마처럼 분출했다는 의미를 담았다. 목포와 신안, 장흥, 완도, 진도로 이어지는 남해안 벨트가 그 진앙이었다.


"발품으로 이겼다"…당이 아니라 사람


사순문 장흥군수는 이번 결과를 당 대 당 구도로 보는 시선부터 밀어냈다. "언론이 자꾸 지방정치를 당의 구도로 끌어가려고 하는 것은 달갑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정치 20년의 비결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발품이다." 5년 넘게 논두렁 밭두렁과 시장 골목을 훑었다. 거기서 들은 말이 표가 됐다고 했다. 장흥은 지방선거가 시작된 뒤 아홉 번의 선거에서 다섯 번이나 민주당 후보를 떨어뜨린 지역이다. 선거 막판 정청래 전 대표가 장흥에 대규모 지원 유세를 왔다. 관광버스로 실려 온 인파가 다리 근처를 가득 메웠다. 그 시각 사 군수는 시장 바깥에서 혼자 지나가는 주민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현직 김성 군수를 248표 차로 눌렀다. 개표함을 열고서야 그는 놀랐다고 했다. "이렇게나 이길 줄 알았는데 요것밖에 못 이겼다"는 것이다. 오히려 금권과 관권, 공천 비리가 자신에게 도움이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태성 신안군수는 아예 민주당을 시야에서 지웠다. "신안에는 신안당만 있다"고 했다. 그는 신안 주민들이 5년에 걸친 사법 투쟁을 벌였다고 했다. 지난해 3월 대법원 유죄 판결이 나왔지만, 같은 해 8월 15일 복권됐다는 설명이다. 김 군수는 이번 선거를 "사면 복권 세력과의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전국 최초로 지자체장 5선에 도전한 박우량 전 군수를 꺾었다. 김 군수 자신도 공천 과정에서 밀려났다. 그는 유령 당원 논란 속에 전남도당에서 당원 자격정지 2년 처분을 받았다. 중앙당 윤리심판원 재심에서는 '혐의 없음' 판단이 나왔지만, 이후 당 지도부의 비상징계로 자격정지가 유지됐다는 게 김 군수 측 주장이다. 그는 불법 당원 모집이나 불법 전입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결국 김 군수는 탈당해 조국혁신당으로 옮겼다. 신안 주민들은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민주당에 그대로 있었으면 공천 과정에서 작살났을 텐데, 공천 배제가 천운"이라는 것이다.


"당 대표가 왜 군수를 뽑나"…정당공천제 폐지 요구


사 군수와 김 군수는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를 정면으로 겨눴다. 사 군수는 이번 선거에서 500명 넘는 무투표 당선이 나온 점을 짚었다. "무투표 당선은 유권자의 선거권을 빼앗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목소리를 높였다. "왜 당 대표가 장흥 군수를 뽑고 신안 군수를 뽑나." 그는 기초자치단체장만큼은 공천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김신 완도군수도 같은 자리에 섰다. 그는 기초의원 두 차례를 모두 무소속으로 지냈다고 했다. 완도는 정당 지지율이 90%에 육박하는 특수한 지역이다. 박지원 의원이 93%를 얻은 곳이기도 하다. 그런 땅에서 무소속을 택했다. 김 군수는 지방자치 30년을 두고 "오히려 퇴보했다"고 진단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공천제 아래에서 지방자치는 기득권 세력의 잔치판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공천 폐단을 넘어설 유일한 길로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을 꼽았다.


김 군수의 승리는 네 번 떨어진 끝에 나왔다. 그는 2014년과 2022년 민주당 경선에서 1% 안팎의 차이로 낙선했다고 했다. "본선에 나가 보지도 못하고 근소한 차이로 떨어지는 걸 두 번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섰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민들에게 직접 심판을 받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우홍섭 민주당 후보를 790표 차로 눌렀다. 다섯 번째 도전 만의 승리였다.


"한 달 새 20%포인트 역전"…여론조사 의혹


당선자들의 승리를 두고 여론조사 전문가는 33년 경력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이다. 그는 투표 기준을 분석하면 소속 정당이 70%, 인물과 정책이 30%쯤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호남에서 민주당은 대체로 50%를 넘고 조국혁신당은 10%를 겨우 넘긴다. 산술적으로는 40%포인트 격차가 벌어져야 한다. 공약은 막판이면 서로 베껴 비슷해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컨닝"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결국 표를 가르는 것은 소속 정당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결과가 뒤집혔다.


홍 소장은 신안의 두 차례 조사를 근거로 들었다. 4월 조사에서는 박우량 45.8%, 김태성 24.1%였다. 5월 조사에서는 박우량 41.2%, 김태성 46.1%로 뒤바뀌었다. 한 달 사이 20%포인트 넘게 뒤집힌 셈이다. "33년 여론조사를 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그는 말했다. 10%포인트 이내의 변화는 가능해도, 20%포인트 역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태성 군수는 여론조사 자체를 겨눴다. 그는 밴드왜건 효과를 언급했다. 선거 직전 누군가 앞서 있다고 발표하면 표가 그쪽으로 쏠린다는 얘기다. 김 군수는 신안에서 선거 직전마다 상대가 15%씩 앞서는 조사가 반복됐다고 했다. "신안에 명태균이 몇 명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법인 명의로 개설한 휴대전화를 쓰면 한 사람이 여론조사에 여러 번 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요일 오전 교회에 간 시간대를 노려 조사가 몰린다고도 했다. 뉴탐사가 제보받아 보도한 사진에는 방바닥에 놓인 휴대전화 17대가 담겨 있다. 한 사람이 17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손혜원 "목포 민주당, 국힘과 똑같다"


손혜원 목포시의원은 목포 민주당의 실태를 꺼냈다. "정치권에서 우리가 바라봤던 국민의힘의 역할을 지금 민주당이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시의회 원 구성을 근거로 들었다. 무소속 세 명에 진보당, 정의당, 조국혁신당 비례까지 일곱 명이 당선됐고, 비례를 빼고도 2만2000표를 받았다. 그런데 여섯 자리 가운데 한 자리도 이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걸 15대 7로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손 의원은 부산을 예로 들었다. 그곳에서는 국민의힘도 민주당에 자리를 내준다고 했다. 목포 민주당은 그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손 의원은 신천지 문제를 정면으로 짚었다. 그는 목포에 신천지 신도가 1만5000명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들이 시장을 언제나 뜻대로 만들 수 있다고 자랑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목포의 신천지 베드로지파 건물 규모를 언급하며, 최근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길거리 포교에 동원되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목포로 이사 온 자신의 오빠가 젊은 여성들의 권유로 따라간 곳도 신천지였다고 전했다.


손 의원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당원 조작도 지적했다. 한 사람이 여러 대를 가지면 당락을 좌우하는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 이상 가져서는 안 된다. 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신천지를 압도하기 위해 목포에 진성 당원 1만 명을 만드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다음 목표도 내놨다. "총선에서 목포에 무소속 국회의원을 만드는 것"이다.


이날 자리에는 민주당 지방선거 평가위원회 위원인 최종호씨도 참석했다. 그는 책에 기고문을 실었다. 송영길 전 대표와 민병덕 의원, 김문수 의원은 영상으로 축하 인사를 보냈다. 김문수 의원은 순천에서 무소속 시장을 이기는 데 뉴탐사 보도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민병덕 의원은 "뉴탐사 같은 곳이 저희가 무서워하면서 존중해야 할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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