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방시혁이 전환권 포기 대가로 돈 줬다" 녹음 있다…투자 피해자, 배임 고발 예고
시그널 엔터 60억 전환사채 포기 경위 의혹…넷마블 자회사 통해 300억 우회 보상·싱가포르 경유 코인 세탁 정황도 제기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자기 경영권을 지키려고 투자사(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에 당시 가치 660억원 현 가치 수조 원어치 주식을 포기하게 만든 뒤, 그 대가를 친족 회사인 넷마블을 통해 뒤로 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익명의 투자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열어 "방시혁 의장이 돈을 줬다는 녹음 파일을 갖고 있다"며 업무상 배임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은 'K-엔터 빅히트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발표자는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대리인 변호사는 "관련 회사의 투자자 중 한 명"이라고만 소개했다. 발표자는 과거 시그널 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증거를 남부지검과 금융감독원에 제보해 김준범 등 경영진 구속에 일조한 인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사건의 뼈대는 이렇다. 2015년 시그널 엔터테인먼트가 빅히트(현 하이브)에 전환사채 60억 원을 투자하면서 나중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BTS가 터지면서 그 주식 가치가 수조 원으로 뛰었다. 그런데 시그널은 주식 전환을 포기하고 원금 60억만 돌려받았다. 발표자는 "방시혁 의장이 경영권을 빼앗길까 봐 전환을 막았고, 그 대가를 넷마블 계열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방시혁 의장 측은 내용증명으로 "대가를 준 사실이 일절 없다"고 부인했다.
방시혁과 시그널은 어떻게 엮이게 됐나
이 의혹을 이해하려면 방시혁과 시그널의 관계부터 짚어야 한다. 시그널 엔터테인먼트 그룹은 원래 씨그널정보통신이라는 통신솔루션 업체였다. 이 회사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게 만든 인물이 김준범이다. 김준범은 2000년대 초중반 팬텀엔터테인먼트에서 주가조작에 가담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팬텀은 신동엽·유재석·김용만 등이 소속된 대형 엔터사였지만, 최대주주의 횡령·우회상장이 드러나 2009년 상장폐지됐다.
김준범은 전과 때문에 직접 대표를 맡지 못하고 씨그널의 실질적 지배자로 뒤에서 회사를 움직였다. 그 뒤에는 씨그널의 실소유주로 지목되는 홍석종이 있었다. 홍석종은 자기자본 없이 회사를 인수한 뒤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려 도주한 희대의 ‘기업사냥꾼’ 이다. 홍석종은 주가조작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드러나면서 남부지검이 체포조를 꾸렸지만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현재 프랑스에서 도피 중이다.
2024년 5월 주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김준범은 2015년 1월 19일 방시혁 의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시그널 사내이사가 돼달라고 부탁했다. 이메일에서 김준범은 자신의 전과 때문에 대주주 측이 차명 이사 선임을 싫어한다는 취지로 말하며 방시혁에게 사내이사를 권했다. 방시혁 의장은 2015년 2월 5일 주주총회에서 시그널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시그널이 씨그널정보통신에서 사명을 바꾸고 엔터 사업에 본격 진출하기 직전이었다.
시그널은 원래 빅히트에 11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빅히트의 광고 사업권을 넘겨받는 계약도 체결했다. 그러나 김준범이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실제 투자는 60억 원에 그쳤다. 방시혁 의장은 2015년 5월 김준범에게 이메일을 보내 "구주매입 계약금 15억 원과 빅히트 자금 30억 원이 씨그널 통장에 꽂히는 정확한 날짜를 알려달라"며 추가 투자를 독촉하기도 했다. 결국 김준범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2015년 12월부터 양측 관계가 틀어졌고, 빅히트는 투자금을 2016년 상반기에 조기 상환했다. 방시혁 의장은 2016년 6월 시그널 사내이사에서 사임했다.
하이브 측은 당시 주간조선 취재에 "2015년 빅히트에서 외부 투자자를 찾던 중 대기업 인사를 통해 씨그널엔터를 소개받았다. 이상한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씨그널엔터 측의 과도한 홍보가 부정적 영향을 줘 관계를 끊었다"고도 했다. 기자회견 발표자의 주장과 하이브 측 해명은 정반대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2015년 5월 시그널 엔터테인먼트 그룹은 빅히트에 60억 원을 빌려주면서 전환사채를 받았다. 전환사채란 빌려준 돈을 나중에 그 회사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주식으로 바꾸면 빅히트 지분 31.58%를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가치로 660억 원, 지금 가치로 수조 원에 해당한다.
앞서 살펴본 대로 방시혁 의장은 빅히트 대표이사이면서 동시에 시그널의 사내이사였다. 시그널이 주식을 가져가면 방시혁 의장은 최대 주주 자리를 위협받는 처지였다.
2016년은 BTS가 세계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해다. 유튜브 조회수 5000만 회를 돌파했고, 빅히트 매출은 355억 원, 영업이익은 100억 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시그널은 주식 전환을 하지 않고 원금 60억만 돌려받았다. 이자도 한 푼도 없었다. 발표자는 "BTS가 대박 나고 있는데 왜 수조 원을 포기하고 60억만 받겠느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 결정은 시그널 이사회도 거치지 않았다. 발표자는 "시그널 이사회 회의록에 이 건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전환사채 계약서에도 중도에 돈으로 돌려주는 조항이 없었는데 상환이 이루어졌다. 대리인 변호사는 "방시혁이 빅히트를 위해 시그널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상환 자금은 홍콩 법인에서 나왔다
시그널에 돌려준 60억 원은 어디서 나왔을까. 방시혁 의장 측이 내용증명으로 직접 답변했다. 2016년 5월 26일 홍콩에 있는 웰블링크 리미티드(Well Blink Limited)라는 특수목적법인에서 75억 원을 투자받았고, 그중 50억 원으로 시그널에 갚았다는 것이다. 투자 방식은 상환전환우선주(RCPS) 발행이었다. 나중에 주식으로 바꾸거나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특수한 주식을 발행해 투자를 끌어온 것이다.
발표자는 투자 조건이 빅히트에 일방적으로 불리했다고 지적했다. 연 8%짜리 복리 이자를 보장해야 했다. BTS 멤버 중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투자금을 즉시 돌려줘야 하는 조항까지 들어 있었다. 발표자는 "빅히트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이런 불리한 조건으로 투자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시그널에 빨리 돈을 갚아야 할 만큼 급한 사정이 있었다는 뜻이다.
웰블링크 리미티드는 조세피난처에 주소를 두고 있어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발표자는 밝혔다. 이 법인의 출자자 중 방시혁, 김준범, 또는 프랑스에서 도피 중인 홍석종과 관련된 인물이 끼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웰블링크 리미티드는 빅히트의 지정감사 계약 체결 후 보유 지분 절반을 보통주로 전환했고, 그 일부가 사모펀드 쪽으로 넘어간 사실이 확인됐다고 했다. 발표자는 방시혁 의장이 기존 투자자들에게는 "상장 계획이 없다"고 거짓말을 해서 지분을 헐값에 팔게 만들면서, 웰블링크 리미티드에는 지정감사 계약 사실을 미리 알려줬다고도 주장했다.
"400억에 사서 80억에 팔고, 300억은 빌려주고 한 푼도 안 받았다"
기자회견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제기된 의혹은 넷마블을 통한 우회 보상이다. 쉽게 말해, 시그널이 주식 전환을 포기해준 대가를 직접 주면 걸리니까 다른 회사를 여러 번 거쳐서 뒷돈을 챙겨줬다는 것이다.
넷마블 방준혁 의장은 방시혁 의장과 친족 관계다. 넷마블은 하이브의 2대 주주이기도 하다. 발표자에 따르면 넷마블의 비상장 자회사 넷마블 FNC가 2022년 에이스팩토리라는 회사를 약 400억 원에 인수했다. 지분 51%를 400억 원에 샀으니 회사 전체 가치를 800억 원으로 친 셈이다. 그런데 1년 만에 영업권 285억 원을 전액 손실 처리했다. 3년 뒤에는 코스닥 상장사 캐리소프트에 80억 원에 되팔았다. 400억에 사서 80억에 판 것이다. 넷마블이 2025년 3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확인하면, 에이스팩토리 인수 당시 인식한 영업권 285억 원이 전액 손상차손 처리된 사실이 나온다. 인수 때 285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봤던 것이 0원이 됐다는 뜻이다. 발표자는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라 처음부터 김준범 측에 돈을 건네주기 위해 기획된 거래"라고 주장했다.

에이스팩토리 대표 이성진은 발표자가 김준범의 최측근이라고 지목한 인물이다. 에이스팩토리는 시그널이 상장폐지된 직후인 2018년 11월에 설립됐고, 시그널의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인적 구성도 유사하다. 발표자는 "검찰 조사에서도 이성진이 김준범 측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했다.
더 수상한 건 대여금이다. 넷마블 FNC는 이성진에게 총 300억 원을 빌려줬다. 담보로 잡은 구의동 소재 건물은 이미 빚이 가득 차 있었고, 국세청 가압류까지 걸려 있었다. 사실상 담보 가치가 없는 건물이다. 그런데 넷마블 FNC는 아직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300억 중 120억 원은 넷마블의 싱가포르 법인을 통해 스테이블코인(USDC)으로 지급됐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가치에 연동된 가상자산으로, 현금보다 자금 추적이 훨씬 어렵다. 발표자는 "120억 원을 왜 하필 싱가포르 법인을 거쳐 코인으로 줘야 했는지, 외환 당국에 신고는 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발표자는 한 달 전 서울경찰청에 방준혁 의장, 넷마블 FNC 경영진, 이성진 대표에 대한 배임 혐의 고발장을 이미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방시혁 의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에 배당됐다.
"녹음 파일 있다"…방시혁 측은 전면 부인
기자회견의 핵심은 녹음 파일이다. 발표자는 "방시혁 의장이 김준범 측에 전환사채 전환권을 포기한 대가로 돈을 줬다는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녹음에는 방시혁, 김준범 양측 모두와 친분이 있는 인물의 육성이 담겨 있다고 했다. 파일 확인 시점은 "3개월 이내"라고만 말했다.
대리인 변호사는 "증거 능력 문제는 없고, 혐의를 직접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공개 시점과 방식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방시혁 의장 측은 내용증명으로 "전환권 포기 대가로 김준범 측에 제공한 혜택이나 계약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한 상태다. 발표자는 "방시혁 측은 부인했고, 우리 의뢰인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며 "수사기관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배임 혐의 공소시효가 10년이면 곧 만료된다. 다만 법률 자문 결과 15년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고발장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방시혁 의장과 김준범에 대한 배임 및 자본시장법 위반 고발장은 녹음 파일과 함께 수사기관에 제출할 예정이다.
발표자는 기자회견을 마치며 "BTS 컴백 공연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다"면서도 "방시혁 의장의 혐의는 그것과 별개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방시혁 의장이 너무 큰 산이 되어버렸다. 고발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기자들도 나서주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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