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정권 바뀌어도 꿈쩍 않는 '법복 귀족'들"…미국식 '강제 증거조사' 도입이 해법

대법원장 1인이 3천 명 판사 인사 장악…이 고리를 끊어야 사법개혁 완성

2026-01-10 20:04:34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무너진 국가 시스템이 하나둘씩 정상화되고 있지만, 유독 사법개혁만은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민주당에서 여러 방안이 나오지만 법원의 반대와 '위헌 울렁증'에 번번이 막히는 상황이다. 뉴탐사는 지난 8일 '주권자가 사법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제로 신년특별대담을 진행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김은진 촛불행동 공동대표(원광대 법학과 교수), 정철승 변호사, 그리고 미국에서 18년간 변호사로 활동해온 김원근 변호사가 참석해 현행 사법제도의 문제점과 개혁 방향을 논의했다.


"커피 800원에 해고 정당, 내란 수괴는 석방…이게 재판인가"


곽노현 전 교육감은 현행 사법제도가 '갈라파고스화'됐다고 진단했다. 마땅히 이뤄져야 할 진화와 발전이 멈춰 있다는 것이다. 그는 "커피 800원어치 동전을 빼서 마셨다고 해고가 정당하다니, 내란 수괴를 기상천외한 법 왜곡으로 풀어주다니, 이게 어떻게 판결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선 승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이재명 후보를 열흘 만에 상고심을 끝내 선거판에서 아웃시키려 한 것도 언급했다. 곽 전 교육감은 "누가 봐도 판을 흔드는 고도의 정치 개입인데, 대법관이 감히 이런 걸 꿈꿀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도 거론됐다. 청와대와 강제징용 판결, 전교조 판결을 놓고 밀거래한 사실이 드러났고, 법원행정처에서 판사들 뒷조사까지 했던 복마전이 세상에 알려졌다. 곽 전 교육감은 "대한민국 3200명 법관 중 제일 똑똑하다고 뽑히고 또 뽑힌 사람들이 가는 데가 법원행정처인데, 그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3분 공판, 서면 제출…집중심리 없는 재판"


곽 전 교육감은 일반 시민들이 겪는 사법 불만족을 '오체불만족'에 비유했다. 판사를 빼놓고는 검사, 변호사, 원고, 피고 모두가 불만족이라는 것이다. "재판을 받아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집중심리가 없다. 3분에서 5분 정도 공판이 열리고는 '다음번에 서면으로 제출하십시오' 하고 끝난다. 한 달 있다 두 달 있다 날짜 잡는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배심제에서는 이런 방식이 불가능하다. 배심원을 붙잡아 놓고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씩 재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집중심리로 사실관계가 다 드러나면 그 자리에서 결론이 난다. 곽 전 교육감은 "우리는 그러질 않으니까 그 사이사이에 무슨 일이 오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법원 재판 실태도 도마에 올랐다. 4명의 대법관이 신중하게 심리하는 줄 알았더니, 실상은 주심 대법관 1인에 의한 단독 재판이었다. 곽 전 교육감은 "보통 1분이고 길어야 5분인데 그것도 10%가 안 된다. 평균 2분 30초 정도에 해결하지 않으면 그 많은 건수를 처리할 도리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상대방 증거 다 요구할 수 있다"


미국에서 18년간 변호사 생활을 해온 김원근 변호사는 한국에서 10년간 변호사를 하면서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가 해답을 찾았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미국 제도를 따라서 하면 그게 다 답"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다. 미국에서는 재판 전에 상대방에게 관련 증거를 모두 요구할 수 있다. 상대방을 직접 불러서 질문할 수도 있다. 김 변호사는 "태블릿PC에 대해 의문이 있으면 상대방한테 그걸 내달라고 할 수 있고, 상대방을 불러서 물어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증거조사법에 의해 다 보장돼 있다"고 설명했다.


강진구 기자가 자신이 겪은 민사 재판 경험을 소개했다. 청담동 술자리 사건 관련 재판에서 한동훈 장관에게 그날 행적을 공개하라고 1년 넘게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보도의 진실성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패소 판결을 받았다. 김원근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한동훈을 내 변호사 사무실에 불러서 물어볼 수 있다. 휴대전화 기록을 다 달라고 해서 바로바로 체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심원이 복잡한 사건 판단할 수 있을까?"


일반 시민이 복잡한 사안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해 김원근 변호사는 "실제로는 정반대"라고 답했다. 미국에서는 법률 판단과 사실 판단을 구별한다. 법률적으로 재판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판사가 먼저 판단한다. 이 단계에서 걸러지는 사건이 많아서 실제 배심원 재판으로 가는 비율은 전체 사건의 10~15% 정도다.


김 변호사는 정철승 변호사의 사건을 예로 들었다. "성폭력 자칭 피해자의 과거 직장을 공개한 것이 재판 대상이 되느냐 안 되느냐, 이건 판사가 판단한다. 미국처럼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문제 안 되는 법체계에서는 거기서 끝난다. 배심원 재판까지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곽노현 전 교육감 사건도 언급됐다. 김 변호사는 "이 케이스는 고소·고발인이 곽 교육감을 모함한 것이고, 검사들이 편을 들어준 것"이라며 "미국에서는 고소인이 공개 법정에 나와서 증언해야 한다. 안 나오면 검사가 기소하지 않는다"고 했다. 배심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절차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헌법 어디에 '사법부 독립'이 있나"


김은진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헌법을 제대로 읽어봤다고 했다. "헌법에 사법부 독립이라는 말이 없다. 있는 건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독립하여 재판한다'는 것뿐이다. 이걸 마치 사법부 전체가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된 것처럼 왜곡해서 가르치고 배워왔다"고 지적했다.


입법부는 법안을 만들 때 국민 의견 수렴을 거친다. 행정부도 새 정책을 만들 때 여론 수렴 절차를 밟고, 영향 평가까지 받는다. 그런데 사법부만 국민 참여가 전무했다. 김 대표는 "사법부도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기관일 뿐이라는 걸 많은 분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왕적 대법원장이 제왕적 대통령을 뒷받침한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대법원장 1인에게 법관 인사권이 집중된 구조를 비판했다. 매년 2월, 4월 정기 인사 때 3200명 법관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700~800명이 재판부를 옮긴다. 곽 전 교육감은 "직접 공판에서 당사자 얘기를 못 들은 사람이 어떻게 재판을 하느냐. 원래는 다시 다 해야 하는데 그냥 간다"고 했다.


대법관이 되고 싶으면, 헌법재판관이 되고 싶으면,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가 되고 싶으면 대법원장에게 잘 보여야 한다. 곽 전 교육감은 "이건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며 "사법행정권을 대법원장한테 준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 우리만 그렇다"고 강조했다.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맞물려 있다. 곽 전 교육감은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쥐고 있으니까 정권의 결정적 이익을 판사들이 알아서 덮어준다. 둘은 짬짜미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통치하는 사법이 아니라 봉사하는 사법으로"


정철승 변호사는 민주공화국의 사법은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제도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법은 법률 관료가 국가 공권력을 국민에게 행사하는 제도가 돼버렸다. 정 변호사는 "판사와 검사의 의식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봉사한다는 게 아니라, 국가 공권력의 일원으로서 시민을 통치한다는 마인드"라고 꼬집었다.


그는 사법개혁의 핵심을 분명히 했다. "통치하고 군림하는 법률 관료에 의한 사법을, 주권자가 직접 행사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사법 질서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대법관 수를 늘리고, 대법원장 권한을 줄이고, 헌법소원 제도를 도입하는 건 다 지엽적이다. 사법개혁의 본질을 비껴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법의 지배가 원칙과 상식의 지배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 명이 지배하는 것도, 소수 전문가가 지배하는 것도, 다수조차도 따라야 할 규범이 있다는 뜻이다. 법관과 검사는 개인적 사심과 욕망 없이 보편 지성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곽 전 교육감은 "사법개혁 문제는 전문가에게만 맡길 수 없다. 시민의회 같은 곳에서 추첨된 시민들, 입법 배심원이나 정책 배심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진구 기자는 대담을 마무리하며 "사법개혁의 출발점은 주권자인 국민이 판사와 사법부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직업 관료들이 통치하듯 재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미 시행 중인 시민 법관 제도를 우리나라에서 못할 이유가 없다. 대법원이나 민주당 내에서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이날 대담에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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