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기름값 2천원의 구조, 정유사 정제마진 평시의 10배
정유사 손실 보전에 세금 4.2조 투입, 같은 시기 수출 금액은 54.9% 증가
전국 보통휘발유 평균 1,997원, 국제유가 반영 시 경유 2,787원
최고가격제로 800원을 세금으로 눌러놓은 구조, 보전금 산식은 미공개
정제마진 58.3달러, 수출 비중 59.5%인데 국내 손실만 세금으로 보전
국내 기름값이 2천원에 도달했다. 4월 15일 오전 9시 기준 오피넷 전국 보통휘발유 평균 1,997원 56전. 서울은 이미 2,026원을 넘었다. 경유도 1,991원. 전쟁 전인 2월 28일 보통휘발유가 1,693원, 경유가 1,598원이었다. 44일 만에 303원이 올랐다.
그런데 이 2천원은 진짜 가격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4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이 가격이 정상적인 가격은 아니다. 국민 세금으로 누르고 있는 것"이라고 직접 말했다.
에너지시장감시단이 4월 첫째 주 기준으로 추산한 경유 실제 가격은 2,787원이다. 국제유가를 그대로 반영하면 지금 경유가 2,800원에 가깝다. 정부가 최고가격제로 약 800원을 눌러놓은 것이다. 그 800원은 세금이다.
800원은 어디로 가나
구조는 이렇다.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2천원을 낸다. 주유소는 정유사에 도매가 상한 1,934원에 기름을 사온다. 주유소 운영비가 얹어져서 2천원이 된다. 정유사 입장에서 1,934원은 원가보다 낮다. 국제 경유가격 기준으로 리터당 190원 정도를 손해 보고 있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이 차이를 정부가 메운다. 전쟁추경 10조1천억원 중 4조2천억원이 정유사 손실 보전 예산이다. 정유사가 원가를 신고하고, 공인 회계법인이 검증하고, 정산위원회가 확인한 뒤 분기별로 지급한다. 1차 정산은 6월 4일까지의 손실분을 접수한 뒤 원가산정위원회 심사를 거치며, 지급은 이르면 8월이다.
보전금 산식은 미공개
보전금의 출발점은 정유사 자체 신고 원가다. 원유 도입원가 기준인지,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 기준인지, 구체적 산식이 공개되지 않았다. 파이낸셜뉴스는 3월 12일 "산정 방식이 더 명확해야 한다"고 보도했고, 국회예산정책처도 같은 지적을 했다. 4조2천억원을 어떤 산식으로 배분할지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이 보전금은 국내 최고가격제 손실에 한정된다. 수출에서 생긴 이익과는 별도다. 수출에서 이익이 나고 있다면 그 이익으로 국내 손실을 메우는 교차 보전이 가능한데, 정부가 이 구조를 왜 쓰지 않는지 설명한 적이 없다.
정제마진 58달러, 평시의 10배
정유사가 정말 손해를 보고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정제마진을 봐야 한다. 정제마진은 원유를 사서 정제한 뒤 석유제품으로 팔 때 남는 마진이다. 정유사 수익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평시 평균은 배럴당 5.8달러다. 손익분기점이 4~5달러이니 평소에는 겨우 버는 업종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이 마진이 연간 평균 13.87달러까지 올라갔다. 정유 4사 합산 영업이익 14조6,890억원. 사상 최대였다.
4월 10일 기준 정제마진은 배럴당 58.3달러다. 평시의 10배가 넘는다. 다만 이 58달러는 4월 둘째 주 수치이고 2022년 13.87달러는 연간 평균이라 같은 기간 단위가 아니다. 단순히 "4배"라고 하면 통계 왜곡이 된다. 그러나 손익분기 4~5달러인 업종에서 58달러가 찍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정상이다.
물량은 줄었다, 금액은 54.9% 늘었다
정유사는 재고평가 착시, 실제 현금 적자, 2분기 역전 가능성을 근거로 "장부상 이익일 뿐 실제로 번 돈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삼성증권도 "재고평가 이익과 실질 영업의 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최고가격제로 국내에서 리터당 190원씩 손해를 보고 있다는 점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런데 수출을 봐야 한다. 산업부 3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정부가 수출을 전년 동기 물량의 100% 이내로 제한했고, 실제로 물량은 줄었다. 휘발유 -5%, 경유 -11%, 등유 -12%. 그런데 금액은 54.9% 늘었다. 3월 석유제품 수출 51억달러. 수출 단가가 톤당 33.3%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한한 것은 물량이지 금액이 아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한국 정유사의 수출 비중은 2025년 기준 59.5%로 역대 최고다.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수출이다. 국내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과 전체 사업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은 다른 질문이다.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 기준 1분기 영업이익은 에쓰오일 5,619억원, SK이노베이션 4,49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배다.
담합 의심, 배짱 주유소 200곳
최고가격제 효과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1차 시행(3월 13일) 이후 2주간 88원이 빠졌지만, 이후 19일간 177원이 올랐다. 깎은 것보다 올라간 게 2배다. 최고가격제에도 오히려 가격을 올린 주유소가 200곳이 넘고, 휘발유 최고 400원, 경유 최고 500원을 올린 곳이 확인됐다.
4월 15일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CBS 라디오에서 "부산, 경북, 제주 일부 주유소에서 인근 지역 간 가격 변동이 유사한 담합 의심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징금 수준에 대해서도 "선진국 대비 지나치게 낮다"며 상한 상향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시행 전후 휘발유 판매량이 24.7%, 경유가 약 16% 늘었다. 가격을 눌러놓자 소비가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횡재세, 영국의 양면
2022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정유 4사가 14조원을 벌었고 횡재세 법안 3건이 제출됐지만 전부 폐기됐다. 명분 하락, 기준 모호, 여야 이견이 이유였다.
영국은 2022년에 횡재세를 도입했다. 에너지 기업 이익의 78%를 세금으로 걷는 구조다. 실제로 한국 돈 약 6조원을 걷었다. 그런데 부작용이 있었다. 북해 탐사 시추가 제로로 떨어졌고, 기업 철수가 이어졌다. 영국 재무부가 조기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돈은 걷었지만 투자는 멈춘 것이다.
한국은 자국 유전이 없어 영국과 구조가 다르다. 초과이익을 정의하기가 더 복잡하다. 그러나 정부가 실시간으로 정유사 원가를 모니터링하고 있어 데이터가 없는 상황은 아니다. 2026년 3월 장철민 민주당 의원이 초과이익에 법인세 20%를 추가하는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4월 21일 휴전 만료까지 6일
기름값의 근본 원인은 전쟁이다. 두바이유가 전쟁 전 81달러에서 3월 23일 170달러까지 올랐다. 4월 12일 이슬라마바드 협상이 결렬된 뒤 미국이 이란 항구를 봉쇄했다. 4월 15일 현재 107달러. 협상이 되면 80달러대, 결렬되면 120~130달러 방향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한국 국적 선박 26척이 페르시아만에서 대기 중이다. 선원 169명. 정부가 이란 측에 선박 정보를 전달하고 통항 절차를 협의하고 있지만, 선사들은 정부의 사인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휴전 만료까지 6일. 1분기 정유사 실적은 5월에 공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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