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이 지난 11월 26일 선고한 이른바 '양복사건'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판결에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소지가 있다. 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범죄사실을 법원이 스스로 인정해 유죄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공소장엔 없는 '영수증 조작 공모'
공소장과 판결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결정적 차이가 드러난다.
검찰 공소장은 피고인들의 행위를 이렇게 기재했다. "정천수로부터 '독지가가 맞춤 양복을 선물해준다고 한다. 양복 대금은 독지가가 이미 모두 지불하였으니 양복점에 가서 양복을 맞추면 된다'라는 말을 전해듣고 양복을 받았다." 대표의 말을 믿고 양복을 수령했다는, 이른바 '단순 수수' 구조다.
그런데 판결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평소 지출에 인색한 피고인 정천수가 인당 200만 원씩이나 되는 초과비용을 지급하는지 따로 모두 사비로 부담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기보다는, '피고인 임필순이 주문한대로 고급 원단으로 양복을 받되 양복점주 김천희와 100만 원을 초과하지 않게 영수증 처리하기로 해결했다'는 의미를 간파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여기서 법리적 쟁점이 발생한다. 법원이 '고의'를 인정하기 위해 간접사실을 추론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재판부의 판단은 단순한 고의 추론을 넘어선다. 공소장은 "독지가가 냈다는 말을 듣고 받았다"는 구조인데, 판결문은 "영수증 조작을 간파하고 공모했다"는 전혀 다른 행위 태양을 인정했다. '속아서 받은 것'과 '알면서 공모한 것'은 피고인의 행위 자체가 다르다.
| 구분 | 공소장 (검찰) | 판결문 (법원) |
|---|---|---|
| 피고인의 인식 | "독지가가 대금을 모두 지불했다"는 말을 들음 | 영수증 조작 사실을 "간파"함 |
| 피고인의 행위 | 대표의 말을 믿고 양복 수령 | 영수증 조작에 "공모"하고 양복 수령 |
| 행위의 성격 | 단순 수수 (속아서 받음) | 적극적 가담 (알면서 받음) |
우리 형사소송법은 '공소장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를 채택하고 있다.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한 범죄사실만이 심판 대상이 되고, 법원은 그 범위 안에서만 판단해야 한다. 피고인이 무엇에 대해 재판받는지 명확히 알고, 그에 대해서만 방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원칙이다.
물론 법원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공소장변경 없이도 다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영수증 조작 공모'는 검찰이 단 한 번도 주장하지 않은 사실이다. 검사조차 기소하지 않은 행위를 법원이 독자적으로 창설하여 유죄의 핵심 근거로 삼은 것이다.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이 쟁점에 대해 심문받거나 반박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방어권 보장이라는 공소장일본주의의 취지가 형해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색한 정천수' 논리의 허점
재판부 논증의 핵심 축은 "평소 지출에 인색한 피고인 정천수"라는 전제다. 인색한 사람이 거액을 부담하겠다고 했으니 피고인들이 이를 진심으로 믿었을 리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추론은 기록상 증거와 충돌한다.
흥미로운 것은 김두일의 진술이다. 김두일은 이번 재판의 공동피고인이자, 경영권 분쟁에서 정천수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난 2024년 10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오버된 금액은 회사에서 지불해 준다고 했기에 더더욱 부담 없이 받았다."
강진구 기자 등을 비난하는 맥락에서 쓴 글이다. 그런데도 핵심 사실관계만큼은 강진구 측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정천수와 한편인 사람조차 '회사가 내준다는 말을 믿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피고인들이 정천수의 약속을 진심으로 믿지 않았을 것"이라는 1심의 전제는 이 한 문장으로 무너진다.
'인색함' 논리에는 또 다른 허점이 있다. 2022년 당시 열린공감TV는 '윤석열 X파일' 책 출판으로 약 1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정천수는 이 중 1억 3,700만 원을 가져갔다. 피고인들 입장에서 정천수의 사비 지출 약속은 '수익 독식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이었다.
고발인 한원섭 진술의 모순
이 사건 판결의 출발점인 고발 자체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고발인 한원섭의 경찰 진술과 법정 증언이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한원섭은 지난 7월 9일 법정에서 "정천수 씨와 잘 아는 사이입니까?"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모릅니다. 잘 알지 못합니다"라고 답변했다. 고발 경위에 대해서도 "저는 그 당시에 이분들하고 전혀 관계없는 일반인이었고요. 방송을 보다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어서 직접 취재를 해서 고발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지난 2022년 10월 7일 남양주북부경찰서에서 작성된 한원섭의 진술조서에는 정반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열린공감TV 대표인 정천수가 제보자 김유재를 소개했고, 녹취록과 증거자료를 모두 전달해줘서 경찰에 고발접수를 했습니다." 경찰이 "제보자가 직접 고발하지 않고 고발인이 대신 고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한원섭은 "제가 고발을 많이 해봐서 조사받는 데 익숙하여 제가 대신 고발을 한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정천수를 모른다'는 법정 증언과 '정천수가 제보자를 소개했다'는 경찰 진술은 양립할 수 없다. 둘 중 하나는 거짓이다. 지난 2024년 2월 녹취된 한원섭의 사적 통화에서도 "정천수는 나아요. 내가 겪어본. 그래서 정천수 편들어준 거예요", "제가 하나에서 열까지 다 관여했기 때문에"라는 발언이 확인된다.
한원섭의 경찰 조서에 등장하는 '제보자'는 김유재다. 김유재는 2023년 10월부터 12월까지 열린공감TV 대표이사를 지냈고, 현재도 사내이사인 인물로, 정천수가 방송에서 "제 일을 돕는 가장 가까운 분"이라고 소개한 측근이다. 고발의 구조는 명확하다. 정천수가 김유재를 한원섭에게 소개했고, 김유재가 증거를 전달했고, 한원섭이 "대신" 고발장을 냈다.
선택적 고발의 의미
고발의 선택성도 이상하다. 2022년 같은 시기에 양복을 받은 사람은 5명이다. 정천수, 김두일, 강진구, 박대용, 최영민. 그런데 한원섭은 강진구, 박대용, 최영민 3명만 고발했다.
한원섭은 법정에서 "정천수 피디는 이태리 저가 원단 100만 원 이하로 받았던 걸로 취재됐다. 그래서 고발을 안 했다"고 증언했다. 김두일은 "외부 작가"라서 뺐다고 했다.
그러나 판결문은 다른 사실을 인정한다. "소공양복점은 150만 원 이하의 원단은 취급하지 않는 고급 양복점으로, 피고인 정천수가 선택한 '모헤어' 원단 역시 300만 원 이상의 고가 원단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또한 정천수가 "청탁금지법 때문에 마치 99만 원에 제공받은 것처럼 가격을 가장하기 위해 양복점 주인에게 99만 원짜리 허위 영수증을 발급해 줄 것을 요구하였던 점"을 인정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150만 원 이하 원단을 취급하지도 않는 양복점에서, 300만 원짜리 원단으로 양복을 맞추고, 허위 영수증 발급까지 직접 요구한 정천수만 고발에서 빠졌다. 5명 중 정천수를 대표이사에서 해임한 3명만 골라서 고발한 것이다. '일반 시민의 정의감'이라는 한원섭의 설명과 이 선택적 고발은 양립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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