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뉴탐사

5·18 마지막 시민군 나명관 "5·18 단체, 신천지에 점령당했다"

들불야학 출신 도청 최후 항쟁 시민군이 밝힌 신천지 잠식 10년

2016년 활동가 개별 포섭에서 2019년 구속부상자회장 선거 조직적 개입으로

황일봉 전 부상자회장, 2017년·2023년 신천지 행사에 단체장 명의 축사

조규연 전 회장 신천지 홍보이사 명함 논란, 반론 요청에 응답 없어

2026-07-27 08:55:20

1980년 5월 27일 아침 9시 40분. 광주 YWCA 1층에 숨어 있던 스무 살 용접공이 계엄군에 붙잡혔다. 도청 일대 최후 항쟁의 비공식 마지막 체포자다. 46년이 지난 지금 그는 5·18 관련 단체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무명열사기념사업회 하나만 붙들고 있다. 나명관 5·18민중항쟁무명열사기념사업회 회장이 뉴탐사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5·18 단체는 신천지에 점령당했다."

▲5·18 당시 시민군 나명관 회장이 뉴탐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천지 문제를 증언하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광주에서 1시간 40분 동안 진행됐다.


새벽 4시까지 투사회보, 아침 9시 40분에 체포


나 회장은 들불야학 1기 졸업생이다. 야학을 마치고 노동운동을 준비하던 중 5·18을 맞았다. 5월 19일부터 전남대 앞의 참상을 문건으로 만들어 시내에 뿌렸다. 규모가 커지자 윤상원·박기순 등 들불 열사들과 손을 잡고 투사회보를 찍어냈다. 24일부터는 도청 앞 분수대 집회 준비까지 떠맡았다. 저녁 5시부터 새벽 4시까지 회보를 만들고, 오전 9시부터 집회를 준비하는 일과가 열흘간 이어졌다.


"26일 저녁 11시에 투사회보 마지막 11호를 만들고 나니까 도청에서 비상이 떨어졌습니다." 도청 민원실에서 총을 받아 YWCA로 돌아온 그는 27일 아침 6시까지 총격전을 벌였다. 2층 동지들이 먼저 잡혀 나간 뒤 1층에 숨어 9시 40분까지 버텼다.


도청에서 함께 싸운 동지가 첫 이름으로 올라왔다


신천지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10년 전쯤이다. 5·18 관련자들 사이에서만 도는 구전 정보망, 이른바 '5월 통신'을 통해서였다. 지목된 사람은 도청 앞에서 함께 싸운 여성 동지였다.


나 회장은 믿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배척해야 될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동지들이오. 혹여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다시 정상적인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우리들 임무요." 그는 주위에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마찬가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소문은 결국 사실로 확인됐다. 당사자가 굳이 부인하지 않으면서 회원들 사이에 다 퍼졌다.


선거 사무실 채운 30여명, 회비로는 감당 못 할 인건비


나 회장이 신천지를 눈으로 마주쳤다고 말한 건 5·18구속부상자회 회장 선거 때다. 12년간 회장을 지낸 양희승씨가 2019년 5월 총회에서 해임된 뒤 치러진 선거다. 조직 폭력배로 소문난 문흥식씨가 후보로 나서자 그는 등록 이틀을 남기고 혼자 출마했다.


선거 준비 과정에서 낯선 얼굴들이 쏟아졌다. "젊은 여자들하고 젊은 청년들이 한 30여명이 사무실을 관리하면서 선거 준비를 해요. 쟤들 뭐냐, 그랬더니 우리 회원들이 늙어서 돈을 주고 모시고 왔다 그래요." 5·18 관련 단체에 젊은 여성 회원은 거의 없다. 당시 구속부상자회 재정으로는 30명을 고용할 여력도 없었다.


투표는 2019년 12월 7일 임시총회에서 이뤄졌다. 463명이 투표해 문흥식씨가 336표, 나 회장이 125표를 얻었다. 그리고 1년 반 뒤인 2021년 6월 9일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건물이 무너져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문씨는 철거업체 선정 이권 개입 의혹으로 해외 도피했다가 검거됐다.


나 회장은 그때 30여명이 신천지 지원 인력이었다고 본다. 오랫동안 5·18 단체에서 활동해 온 다른 활동가도 이 지적에 동의했다. 이 활동가는 그중 핵심 역할을 한 여성의 이름까지 특정했으나, 실명 공개는 추가 취재 뒤로 미뤘다.


장로설엔 말끝 흐리고, 홍보이사 명함은 인정


문흥식 체제를 무너뜨리고 공법단체 초대 회장에 오른 사람이 황일봉 전 광주 남구청장이다. 나 회장은 5월 동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직접 물었다. "일봉이 형, 해명하시오." 돌아온 답은 이랬다. "교회 장로여. 나는 그쪽하고 상관이 없어." 그러고는 말끝을 흐리고 자리를 떴다.


황씨의 신천지 행사 참석은 기록에 남아 있다. 2017년 남구청장 시절 신천지 자원봉사단이 주최한 나라사랑 평화나눔 페스티벌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2023년에는 5·18부상자회장 명의로 신천지 신학 수료식에 축하 영상을 보냈다. 영상에서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신천지가 대세임을 다시금 증명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상자회장을 지낸 조규연씨에 대해서는 더 구체적인 증언이 나왔다. 나 회장이 신천지 홍보이사 명함 이야기를 꺼내자 조씨가 이렇게 답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고 그냥 그쪽에서 홍보이사 하라고 그래서, 내가 뭐 교회 나가는 것도 아니고." 뉴탐사는 조씨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 조씨는 지난해 6월 허위 학력 등을 이유로 불신임됐다.


두 사람 위에 이정호씨가 있었다는 게 나 회장의 주장이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직후 정상화추진위원회에 자금이 돌기 시작했고, 백운동에 사무실이 생겼다고 했다. 이씨는 뉴탐사 통화에서 3억5000만원가량을 쓴 사실은 인정하되, 경기 하남 아파트를 담보로 받은 대출금이라고 반박했다. 사업본부장은 직책만 맡았을 뿐이라고도 했다.


묘비 닦는 신천지 조끼, 그리고 5만원


가장 말하기 어려웠던 대목을 그는 끝에 꺼냈다.


"5·18에 대한 신념이고 5월 정신이고 나발이고 상관이 없어 버리잖아요. 그냥 누가 쥐어주는 5만원, 10만원이 더 중요해. 이게 현실인데 어떡할 거예요."


처음에는 강하게 나무랐다고 했다. 45년 전 목숨 걸고 싸운 게 5만원, 10만원 때문이었냐고. 몇 해 지나면서 그 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하느님의 생각을 포교하는 종교 단체에서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는가."


신천지 자원봉사단 광주지부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묘비 닦기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단체 이름이 새겨진 조끼 차림이다. 나 회장은 이 장면을 잠식의 증거로 읽는다. "국립묘지는 그렇게 허락한 데가 아니거든요. 이단으로 지탄받는 단체가 봉사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누가 해줘요."


그는 5·18 3단체 회원 5800여명 가운데 3분의 1이 이미 넘어갔다는 말이 돈다고 전했다. 그리고 6개월 안에 현 부상자회 지도부가 무너지고 황일봉·조규연 체제가 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 그가 맡은 직책은 두 개뿐이다. 무명열사기념사업회와 5·18기념재단 설립동지회. 사업회는 7년째 광주시에 보조금을 신청한 적이 없다. 회원들 사비로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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