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의 12.3 내란과 국정농단 의혹이 수사되는 가운데, 김충식이라는 인물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열린공감TV를 중심으로 확산된 이 주장들은 특검법에까지 반영되며 국가 예산이 투입될 상황에 이르렀다. 뉴탐사는 8월 28일 김충식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8월 31일과 9월 1일 이틀에 걸쳐 그 내용을 방송하며 제기된 의혹들을 검증했다. 언론의 기본은 당사자의 해명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일방적 주장만으로는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
최혁진 의원이 공개한 '이어령 손녀' 녹취, 알고 보니 신원 불명
9월 1일 매불쇼에 출연한 최혁진 의원은 김충식 측근 이재성 씨와 '유명 인사 집안' 여성의 통화 녹취를 공개했다. "이름만 대면 전 국민이 다 아는" 인물의 가족이라며 제보의 신빙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그 이름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왜일까?
뉴탐사 취재 결과, 이 여성(A씨)은 자신을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손녀라고 소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충식과 측근들은 이를 믿었고, A씨는 김충식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신변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A씨의 나이가 50대로 추정되는데, 이어령 전 장관의 자녀들(이민아 59년생, 이승무 63년생, 이강무 66년생)이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인 점을 고려하면 50대 손녀는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실제 손녀들의 이름과 A씨가 카카오페이에 등록한 이름의 끝자가 일치하지 않았다.
녹취 내용도 의도적으로 왜곡됐다. 김충식이 특검에 체포됐을 때, 열린공감TV는 연일 '세계로교회 메모'를 떠들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충식 측근들도 세계로교회 메모 때문에 체포됐다고 믿었다. 측근 이재성 씨는 A씨와 통화하며 "동거녀를 불러서 해명을 시켜야 하는데 연락이 안 된다"며 "이걸 덮어야 하는데"라고 했다. 여기서 '덮어야 한다'는 표현이 마치 증거 인멸처럼 해석됐지만, 실상은 달랐다. 김충식이 귀가 후 밝힌 특검 조사 내용은 양평 공흥지구와 고속도로 종점 변경이었고, 세계로교회는 언급조차 없었다. 측근이 '덮어야 한다'고 한 것은 동거녀의 허위 발언으로 인한 파문을 수습해야 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더 의심스러운 것은 녹취 제공 후 A씨가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했다는 점이다. 진짜 이어령 전 장관의 손녀라면 왜 숨어야 했을까? 최혁진 의원이 이어령이라는 이름을 끝까지 밝히지 않은 것도, 구글 검색만 해도 금방 들통날 것을 알았기 때문은 아닐까.
"독재"를 "권총"으로... 자막 조작으로 만든 테러 배후설
정천수는 지난 5월 김충식이 "권총으로 쏠 수밖에 없잖아"라고 말했다며 이재명 테러 배후설의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김건희 오빠 김진우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권총이 있었다는 점까지 들며 신빙성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원본 녹취를 들어보니 실제 발언은 "독재를 쓸 수밖에 없잖아"였다.
뉴탐사가 김충식에게 해당 녹취를 들려주자 그는 "조작을 했구먼"이라며 어이없어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실제 음성은 '독재'라고 말하는데 자막으로 '권총'이라고 표시해 시청자들이 착각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런 조작된 내용이 국회 특검법 논의의 근거가 되고, 국가 예산이 투입될 수사 대상이 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김충식은 이에 대해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김예성의 위조 문서... "혼내줬다"는 김충식의 증언
도촌동 땅 사기 사건의 핵심 인물 김예성과의 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김충식은 2013년경 박근혜 정부 시절, 김예성이 누군가와 함께 찾아와 위조 잔고증명서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증언했다. "너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왜 잔고도 없는 걸 끊어줘서 사람을 어렵게 만드냐"며 크게 혼을 냈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의미심장하다. 2013년은 도촌동 땅 사기가 시작된 해이자, 최은순의 재산 관리 역할이 김충식에서 김예성으로 넘어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김충식은 "최 회장(최은순)한테도 왜 돈 몇 푼 받으려고 그런 가짜 증명서를 만들어 주냐고 혼냈다"고 덧붙였다. 이는 김충식이 여전히 윤석열-김건희의 배후 실세라는 열린공감TV의 주장과 모순된다. 실세라면 왜 김예성에게 자리를 빼앗겼겠는가.
DMZ 8천평 특혜의 진실... 전화 한 통이면 확인 가능했던 사실
최혁진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김충식이 윤석열 정권으로부터 DMZ 인근 8000평 사용 허가를 받아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오보였다. 뉴탐사가 나라사랑무궁화봉사회 백일환 회장과 통화한 결과, 실제 사용 허가를 받은 사람은 장동희 씨였다. 장 씨는 2002년 철도청으로부터 무궁화공원 조성을 위한 부지 사용을 양해받았고, 2014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백일환 회장 등이 사업을 이어받았다.
백 회장은 "김충식은 공원 조성 사업에 함께 하기로 했지만, 사용 허가를 받아내는 데는 관여한 바 없다"고 명확히 밝혔다. 전화 한 통이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왜 확인하지 않았을까? 최 의원은 원주시장 출마를 준비하며 페이스북을 원주 소식으로 도배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국회에서 발표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문선명과의 만남... 도자기 작가의 영업 활동이었다
논란이 된 문선명과의 사진은 김충식이 통일교 핵심 인물이라는 증거로 제시됐다. 사진 속 김충식이 문선명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모습은 확실히 의미심장해 보였다. 그러나 김충식의 설명은 달랐다. "최재욱 전 의원(자민련)이 문선명 교주에게 도자기 작품을 선물하자고 제안해서 제주 별장에 갔다"는 것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문선명이 들고 있는 것은 도자기 작품 브로슈어다. 도자기 작가인 김충식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며 판매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김충식은 "그때 딱 한 번 봤고, 한학자도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다"고 했다. 물론 통일교가 윤석열 정권에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장의 사진만으로 김충식을 통일교 한국지부장으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310K 마약 밀수? 특검법에 명시된 '필로폰 300kg'의 근거는 어디에
열린공감TV는 김충식 메모의 '310K 말레이시아'를 마약 310kg 밀수의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정천수는 "말레이시아 310K, 1차 55K"라고 적힌 메모를 보여주며 "K는 분명히 kg"이라고 단정했다. 더 나아가 메모에 적힌 전화번호가 백해룡 전 경정이 마약 수사 중 추적했던 번호와 일치한다며 신빙성을 높였다.

열린공감TV는 김충식 창고를 재방문해 '추가 증거'도 제시했다. 창고 바닥에 널브러진 향신료와 하얀 가루 샘플들을 촬영해 "최은순 일가가 평택항에서 각종 향신료, 고춧가루 등에 수상한 하얀 가루를 섞어서 들여왔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100g짜리 샘플 봉지를 들며 "93kg을 맞추려면 이런 게 1,000개가 있어야 한다"는 식의 추측도 덧붙였다. 평택 자유무역항의 농산물 수입 과정에서 마약을 밀반입했을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메모 어디에도 '마약'이라는 단어는 없다. 김충식은 이 메모에 대해 전혀 다른 설명을 내놨다. "서 교수가 말레이시아에서 금 310kg을 필리핀 경유로 들여오려다가 필리핀 공항에서 못 가져왔다는 얘기를 적은 것"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1차로 55kg을 가져왔다고 했다가, 그것도 못 가져왔다고 정정했다.
뉴탐사가 메모에 언급된 서 모 교수와 통화한 결과, 그는 실제로 자원 광물 개발 사업가였다. 리튬을 주로 다루며 전 세계에 리튬 공장 9개를 운영하고 있고, 대학 특임교수도 겸하고 있었다. 서 교수는 "김충식 사무실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금 거래를 논의한 기억은 없다"고 밝혔다.
결국 310K가 금인지, 리튬 같은 다른 광물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창고의 향신료 샘플도 마약과 연결 짓는 것은 순전한 추측일 뿐이다. 그런데도 김충식 특검법에는 "김충식이 연루된 약 300kg 규모의 필로폰 밀반입 사건"이라고 명시돼 있다. 검증되지 않은 메모 한 장과 창고의 향신료 샘플만으로 필로폰 밀수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검증의 부재가 만든 공론장 오염
이번 사태의 본질은 검증 없는 음모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열린공감TV는 제보를 받으면 당사자 확인도 없이 그대로 방송한다. 음성과 다른 자막을 달아 시청자를 속이고, 신원 불명의 제보자를 '유명 인사 가족'으로 포장하며, 메모 한 장으로 필로폰 밀수를 단정한다.
문제는 이런 검증되지 않은 주장들이 국회의원들을 통해 정치권으로 확산되고, 특검법에까지 반영된다는 점이다. 12.3 내란의 주범인 윤석열과 김건희에게 집중해야 할 수사력이 엉뚱한 곳으로 분산되고 있다. 김충식이 어떤 잘못을 했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독재를 권총으로 바꾸고, 금을 필로폰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언론의 역할은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해명을 듣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검증 없는 일방적 주장은 비방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흥미로운 음모론이 아니라 철저한 사실 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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