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보도

가거도 방파제 수리모형실험 조작 폭로..."해수부가 지시했다"

100년 태풍도 막는다던 약속, 조작된 실험 위에 세운 사상누각

2025-09-11 08:37:47

전남 신안군 가거도. 우리나라 최서남단 이 섬의 방파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2011년 태풍 무이파가 휩쓸고 간 자리에 '100년 태풍도 견딘다'며 세운 슈퍼방파제. 하지만 이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처음부터 거짓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었다.


뉴탐사가 입수한 2012년 관동대 수리모형실험 원본 영상은 충격 그 자체다. 50년 빈도 파도(12m)만으로도 100톤짜리 근고블록이 마치 종이처럼 날아갔다. 22톤 트라이포드는 절반 이상 이탈했고, 66톤 TTP도 제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70년 빈도(13m) 파도에선 방파제를 보호해야 할 구조물들이 완전히 붕괴됐다.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혜인E&C가 해수부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는 "근고블록, 트라이포드, TTP 모두 이탈 발생하지 않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12가지 실험 케이스 모두에서 "안정"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이 뻔뻔한 거짓말이 3000억 원이 넘는 국민 혈세를 바다에 수장시킨 시작점이었다.

▲혜인E&C가 해수부에 제출한 가거도 '슈퍼방파제' 수리모형실험보고서. 관동대 실험결과를 조작해서 기재했다.


조작 사실 확인한 삼성물산, 공법 변경 요구했지만 기각


2014년 8월 5일, 목포의 한 회의실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해수부, 삼성물산, 혜인E&C 관계자들이 마주 앉았다. 삼성물산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50년 빈도 설계파고 12m에서도 트라이포드가 거의 50% 이탈됐습니다. 70년 빈도 13m에선 대부분이 날아갔고, 100년 빈도에선 케이슨 전 구간에서 충격쇄파압이 발생합니다."


삼성은 관동대 원본 영상을 화면에 띄우며 조작을 하나하나 입증했다. 더 나아가 대안까지 제시했다. 케이슨 공법 대신 사석경사식으로 변경하면 공사비 435억 원을 절감할 수 있고, 구조적으로도 훨씬 안전하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전남대에 재검증을 의뢰한 결과도 똑같이 나왔다.


하지만 해수부 오운열 국장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착공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케이슨 하나도 안 세웠어요? 빨리 진행하세요." 안전보다 속도가 우선이었다.


물갈이된 삼성 임원들, 그리고 435억 증액의 비밀


삼성의 공법 변경 제안은 결국 기각됐다. 2015년 3월, 해수부는 "지역 주민들이 케이슨 공법을 원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들었다. 실제로 주민 공청회에서는 "박사님들이 좋은 공법으로 알아서 해달라"는 의견만 나왔을 뿐이었다.

▲해수부(목포지방해양수산청)가 시공사인 삼성의 제안을 기각하면서 보낸 공문(2016.7.31)


기묘한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공법 변경을 주장했던 삼성물산 임원들이 줄줄이 퇴사했다. 새로 부임한 고경환 상무 체제에서 케이슨 공법이 그대로 진행됐고, 연약지반 보강 명목으로 435억 원이 증액됐다.


이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삼성 관계자는 "해수부 오운열 국장이 삼성 최치훈 부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고 증언했다. 이후 삼성은 공법 변경 주장을 철회했고, 대신 435억 원 증액분에서 100억~200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고경환 상무 등이 재판을 받게 된다.


연약지반 위의 시한폭탄, 충격쇄파압이 때리는 케이슨


가거도 방파제가 위태로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B, C구간 지하는 점토층, 즉 갯벌과 다름없는 연약지반이다. 여기에 1만톤짜리 케이슨 15개를 올렸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하다.


관동대 김규한 교수(현 부총장)는 뉴탐사와의 통화에서 실험 조작 사실을 명확히 확인했다. "내가 제출한 보고서는 '부적합' 판정이었다. 혜인E&C가 이를 '적합'으로 바꿔 놓은 걸 확인하고 목포 서해사업단까지 찾아가 항의했다."


김 교수는 "연약지반에 케이슨 같은 중량물을 올리면 부등침하로 균열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며 "서해안에는 사석경사식이 맞는데, 내가 반대 의견을 낸 후부터 해수부 자문위원회에서 제외됐다"고 털어놨다.


현재 방파제는 케이슨 사이가 20cm 이상 벌어져 있다. 바닷물이 아래서 위까지 그대로 보일 정도다. 평상시에도 이곳엔 '충격쇄파압'이라는 특수한 파도가 계속 구조물을 강타한다. 케이슨을 보호해야 할 근고블록들은 이미 상당수 유실됐다. 민간 잠수부의 증언에 따르면 "케이슨 앞이 텅 비어있는 구간이 여러 곳"이라고 한다.


박덕흠은 추궁했는데... 서삼석 의원 7년째 '이상한 침묵'


2020년 국정감사장. 뜻밖의 인물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이었다.


"지반조사도 안 하고 발주했잖아요. 설계하고 감리를 같은 회사가 하면 고양이한테 생선 맡긴 거 아닙니까? 감리단장이 뇌물로 구속됐는데도요."


그런데 정작 지역구 의원인 민주당 서삼석 의원의 태도는 달랐다. 그는 "완공이 되길 바라지만, 태풍이 점점 세지니 대체항 개발도 고려해야 한다"며 에둘러 표현했다. 문제의 본질인 설계 조작과 예산 낭비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서 의원은 2018년 보궐선거 직전, 공익제보자 정정재 대표로부터 방파제 부실 관련 자료를 두 박스나 받았다. 모의실험 조작부터 해수부와 삼성의 유착까지, 모든 증거가 담겨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진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선 후 가거도를 방문했을 때 그의 옆엔 나중에 구속된 윤모 감리단장이 있었다.


"해수부가 처음부터 알고 지시했다" 삼성 직원의 폭로


뉴탐사가 접촉한 삼성물산 본사 관계자의 증언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혜인E&C가 단독으로 조작한 게 아닙니다. 관동대 실험에서 NG(부적합)가 나오자 해수부가 '긴급공사니까 그냥 누르고 가자'고 했어요. 해수부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삼성 기술진은 조작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혜인E&C 보고서에 첨부된 DVD 영상이 50초에서 끊겨 있었다. 원본은 15분짜리인데 말이다. 보고서 사진을 확대해보니 '실험 후'라고 적힌 사진에 근고블록이 다 날아가 있더라."


이런 명백한 조작에도 해수부는 왜 케이슨을 고집했을까. 케이슨 공법은 매년 수백억 원의 보강공사가 필수다. 일회성 공사로 끝나는 사석경사식과 달리, 케이슨은 해수부와 건설사에게 끊임없는 예산을 보장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셈이다. 매년 반복되는 보강공사는 관련 업계에겐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고, 예산을 집행하는 관료들에겐 영향력을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


3000억 국고손실 앞에서도 "처음 듣는다"는 해수부


뉴탐사는 현재 해수부 담당 사무관에게 직접 물었다. "수리모형실험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그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답했다. 2014년 대책회의 때 삼성이 조작 증거를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남대 재검증까지 진행한 사실이 공식 회의록에 기록돼 있는데도 모른다는 것이다.


혜인E&C 관계자는 한술 더 떴다. "논란은 이미 종식됐다. 해경 수사도 끝났다"며 여유를 부렸다. 설계와 감리를 동시에 맡아 윤모 감리단장 등이 구속됐지만, 회사는 여전히 정부 발주 공사를 따내고 있다. 수리모형실험 조작에 대해선 "움직임이 있었을 뿐 이탈은 아니다"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진실을 덮으려는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


2011년 태풍 피해 복구엔 1180억 원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조작된 설계와 잘못된 공법 선택으로 현재까지 3000억 원 이상이 투입됐다. 앞으로도 매년 수백억 원의 보강공사비가 들어간다. 이 돈이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가는지는 명백하다.


공익제보자 정정재 대표는 6년간 이 사실을 알리려 동분서주했다. 검찰에 고발했지만 무혐의 처분이 났다. 열심히 수사하던 해경 모금원 팀장은 느닷없이 3000톤급 경비함으로 좌천됐다.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은 하나둘 제거됐고, 거짓을 만든 이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가거도 주민 300여 명은 오늘도 불안에 떨고 있다. 100년 태풍을 막는다던 슈퍼방파제는 10년도 못 돼 20cm씩 벌어지는 금 간 성채가 됐다. 설계 조작을 알고도 묵인한 해수부, 7년째 침묵으로 일관하는 지역 국회의원, 국민 안전보다 돈을 택한 기업들이 만든 합작품이다.


가거도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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