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8시 30분, 서울 마포구 공덕동 민들레 사무실에 서울지방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 소속 경찰관 30여 명이 들이닥쳤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지난해 11월 공개한 민들레에 대한 압수수색이었다. 김호경 에디터는 집 앞 엘리베이터에서 경찰을 만났다. 이명재 대표는 평소보다 늦게 출근하다 건물 1층에서 경찰과 마주쳤다.
경찰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혐의는 두 가지였다. 성명불상의 공무원이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혐의, 그리고 민들레가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공개한 혐의. 압수수색은 오후 2시 30분까지 6시간 동안 진행됐다. 복도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찰은 컴퓨터와 휴대폰, 각종 저장매체를 압수해갔다.
피의자는 '성명불상', 압수 범위는 '모든 것'
압수수색 영장의 첫 페이지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피의자란에 '성명불상'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공무원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은 채 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김호경 에디터만 유일하게 피의자로 이름이 올랐다. 기사 작성자라는 이유였다. 이명재 대표는 참고인으로 분류됐다.
영장 발부일은 1월 20일 금요일, 설 연휴 직전이었다. 유효기간은 무려 27일. 통상 10일 정도인 압수수색 영장 유효기간을 거의 한 달로 설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경찰은 "장소가 다수고 원거리로 거리가 멀며, 압수수색 대상자들과 집행 시점 조율을 위해 필요하다"고 적었다. 야간 압수수색도 가능하도록 했다. "기자는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압수할 물건의 범위는 더욱 광범위했다. "민들레의 현재 업무를 담당하는 자들이 소지, 사용, 관리하고 있는 데스크탑 PC, 노트북, 태블릿 PC, USB, CD, 외장하드, 저장매체, 대표이사, 직원 등이 소지하고 관리하고 있는 휴대폰 기기, SD카드, 유심." 민들레 사무실의 모든 전자기기를 압수하겠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데이터가 암호화되어 있는 경우 암호 해제 자료"까지 포함됐다.
"휴대폰 비밀번호 몰라도 유심으로 열 수 있다"
영장에는 기술적으로도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휴대전화가 암호 설정되어 해제되지 않는 경우, 휴대전화 유심을 다른 휴대전화 기기에 설치하여 전화번호 인증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도 유심만 있으면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와 클라우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의 휴대폰을 열지 못했던 경찰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셈이다.
압수수색 필요성을 설명하는 부분은 더욱 문제적이었다. 경찰은 "언론사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취재원 보호 등 이유로 임의 제출 요구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적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취재원 보호를 오히려 압수수색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증거 인멸 우려"도 함께 명시했다.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정당화하기 위해 언론의 특수성을 거꾸로 이용한 논리였다.
영장에는 압수수색이 필요한 이유 9가지가 나열됐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공무상 비밀 누설, 명단 입수 사실 미공표, 공공기관 확보 정보와 일치, 외국인 사망자의 항의, 명단 공개로 인한 유족 피해 정황, 유족 동의 없는 공개,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정당화하기 어려운 사유들이었다.
유족 조롱한 김상진이 고발, "내가 고발했지"
압수수색의 발단은 김상진의 고발이었다. 자유연대를 이끌며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유족들을 조롱해온 인물이다. 그는 "정치 선동꾼들 물러나라"며 확성기를 들고 다녔다. 유족들은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 "힘이 있지 않느냐, 제발 이 사람만은 여기서 철수시켜달라"고 울부짖으며 호소했던 바 있다.
강진구 기자는 방송 직전 김상진과 11분간 통화했다. 김상진은 "그렇지, 내가 고발했지"라며 자신이 고발인임을 시인했다. "민들레 압수수색 당했지? 우리 강진구 기자님 핸드폰은 어떻게 되어 있어? 왜 핸드폰 압수수색은 안 당했어?"라고 물었다. 강진구 기자가 "핸드폰 압수수색 당했으면 하는 거냐"고 묻자 김상진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라고 답했다.
김상진은 "영리 목적이 있지, 당연히"라며 민들레가 상업적 목적으로 명단을 공개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김건희 두 사람을 잘 지켜 가지고 대통령 지금 만들어 놓고 보니까, 어떻게 보람을 느껴요?"라는 질문에는 "대한민국 정상화가 착착돼 가고 있으니까 참 기쁘지"라고 답했다. 통화 말미에 강진구 기자는 "마지막 당부, 인간이 되세요"라고 말했다.
"명단 은폐가 폐륜, 잊지 말고 불러달라"
정작 유족들의 반응은 달랐다. 한 유족은 민들레에 "명단 공개가 왜 폐륜이냐, 명단을 비공개한 게 은폐다, 은폐가 더 문제다"라고 말했다. 다른 유족은 "우리 유가족 모임 사람들은 전부 희생자 명단 공개 찬성을 한다. 우리 단톡방에 있는 분들은 전부 찬성이다"라고 밝혔다. "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그런 분향소를 만드느냐, 그런 것들이 더 저희 아들이 아프다"는 절절한 호소도 있었다.
12월 13일 시민들이 주관한 추모제에는 100여 명이 넘는 유족들이 참여해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개하고 사진을 함께 나눴다. 한 유족은 "사람은 외로워서 죽는 게 아니라 위로 받지 못해서 죽는다. 잊지 말고 계속 불러달라"고 호소했다. 처음에는 명단 공개에 화를 냈던 일부 유족들도 나중에는 "고맙다, 유족 찾을 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일본 기자는 "한국 기자들이 정말 이상하다, 정말 창피하더라"고 말했다. 유족들에게 취재를 하지 않는 한국 기자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정작 명단 공개에 반대하며 고발한 사람들은 서울시청 팬카페, 사진작가, 자유연대 등 유족들을 조롱해온 일베 성향의 인물들이었다.
16번째 압수수색, "법이 아닌 폭력이 지배"
더탐사는 지난 8월 25일부터 1월 26일까지 5개월간 16차례 압수수색을 당했다. 11월 3차례, 12월 3차례, 1월에만 벌써 2차례. 민들레를 포함하면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경찰은 "압수수색 과정이 라이브로 나가는 것을 이제는 오히려 자신들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부당한 명령에 시달리는 자신들의 모습을 윗선에 보여주고 싶다는 속내였다.
이명재 대표는 "형사소송법의 정신은 '피고인의 이익으로'다. 참고인에게 영장 사본을 교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참고인을 피의자로 전환하기 전에는 영장을 보여주지 않고, 나중에 피의자로 바꿔 권리를 침해하는 수법이 가능해진다는 우려다. 판사가 이런 영장을 발부했다는 것 자체가 사법부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비판도 나왔다.
강진구 기자는 "윤석열, 한동훈은 법을 기초로 지배하는 정권이 아니라 이미 폭력 정권이다. 경찰관들도 폭력에 굴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재 대표는 "머지않은 시기에 오늘 민들레를 덮쳤던 경찰관들이 거꾸로 윤석열, 한동훈을 잡으러 아크로비스타나 타워팰리스로 가는 그날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압수수색 현장에는 시민들이 몰려와 5시간 넘게 복도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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