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천수는 그때 왜 미국으로 도피했나

5억 인출 시도, 18만 달러 모금, 그리고 3년간의 강진구 죽이기 프로젝트

2025-11-23 12:45:18

윤석열 당선 다음날 예고된 도피


지난 2022년 3월 10일 밤. 윤석열 당선이 확정된 날이었다. 정천수는 강진구, 최영민, 박대용, 김두일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정천수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미국으로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검찰이 자신을 내사 중이라는 정보를 검찰 내부 "빨대"(정보원)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동석했던 이들은 당황했다. 대선이 끝난 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열린공감TV는 대선 정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강진구 등이 작성한 방송 원고를 기초로 정천수가 출간한 '윤석열X파일'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약 10억 원을 벌어들였다. 회사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왜 갑자기 미국행이었을까.


며칠 후인 3월 22일, 결정적 단서가 나왔다. 최진숙 경리 담당자가 박대용에게 급히 연락했다. 정천수가 미국으로 갈 때 5억 원을 가지고 가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일은 곧 최영민을 거쳐 강진구에게 전달됐다. 강진구는 회의 시간에 자신이 회사 감사가 되어야겠다고 말했다. 정천수의 5억 인출 시도를 저지한 핵심 인물이 강진구였다.


3월 30일, 제주도 워크숍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정천수는 박대용을 사내이사로 임명하겠다고 밝혔지만, 강진구는 추천하지 않았다. 강진구는 경향신문 탐사전문기자 출신으로 열린공감TV의 실질적 성장을 이끈 핵심 인물이었다. 정천수가 의도적으로 강진구를 배제했다는 의심이 들었다. 같은 날, 강진구는 경향신문 인사위원회에서 해임이 결정됐다. 2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정천수에게는 시간이 촉박했다. 강진구에게 주식을 일정 부분 나눠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51% 지분을 잃으면 경영권을 잃게 된다.


18만 달러 모금과 현직 검사의 망명 제안


5월 2일, 정천수는 본인 말대로 "백지 한장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마디로 계획 없이 미국으로 간 것이다. 미국에서 정천수는 시민포털 사업을 명분으로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모금 행사를 열었다. 한 달 만에 18만 달러가 모였다. 정천수는 노무현 대통령과 18번 독대했고, 과천 신도시 조감도를 자신이 그렸다고 자랑했다. 한 교민은 평생 모은 돈 5만 달러를 내놓았다.(관련영상)


돈이 보이자 정천수는 장기 체류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정천수 미국 투어를 돕던 권혁은 멕시코행을, 이혁진은 망명을 제안했다. 5월 28일경, 박대용이 사외이사 자격으로 미국으로 날아갔다. 정천수의 모금 활동이 수상하다는 제보가 여러 건 접수됐기 때문이었다. 오하이오에서 원격 이사회가 열렸다. 강진구, 최영민 이사는 모금 중단을 요구했다. 정천수는 거부했다. "이사들이 반대하면 회사를 떠나겠다"고 맞섰다.

▲2022년 6월 10일 당시 시민언론 열린공감(이후 더탐사로 변경) 방송


6월 7일, 이사회는 정천수를 해임했다. 해임 직후 정천수는 필라델피아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18만 달러를 기습 인출하려 했다. 계좌 공동명의자가 막았다. 바로 다음날 정천수는 한국에서 열린공감TV 유튜브 채널 비밀번호를 바꾸고 기존 제작진 접근을 막았다. 정천수는 결국 업무방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현직 검사 진혜원이 정천수에게 직접 망명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진혜원 검사는 강진구 기자와의 통화에서 "후배 검사가 정천수를 내사하고 있어서 망명을 권유했다"고 직접 털어놨다. 현직 검사가 형사사건 피의자의 도피를 적극 도운 것이다. 진혜원이 평소 정천수에게 우호적인 글을 올렸던 이유가 드러났다.


1심 승소와 인사동 찻집 모임


정천수는 강진구 없이 독자적 자립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반대로 강진구는 정천수 없이도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 경쟁이 안 되니 쓰러뜨리기로 한 것이다. 정천수의 전략은 명확했다. 강진구와 대립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와 손을 잡는 것이었다.


2023년 5월 4일, 정천수가 제기한 신주발행 무효소송 1심에서 정천수가 승소했다. 정천수는 자신감을 얻었다. 법원이 자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때부터 정천수는 본격적으로 강진구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두 달 후인 2023년 7월 중순 어느 날이 결정적이었다. 김용민과 김두일은 인사동 모 찻집에서 만났다. 서정필은 1년 후인 2024년 7월 1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지난해 7월 중순 어느 날, 막 말레이시아에서 귀국한 김두일 작가님을 인사동 모 찻집에서 만나, 아무래도 유싸의 끝엔 강진구가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강진구 세력이 총선을 망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바로 그날 '안주값어치' 방송이, 그다음 주부터 '두진서'가 시작됐다."

▲서정필(열린공감TV 기자)이 2024년 7월 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안주값어치' 방송은 2023년 7월 14일에 시작됐고, '두진서'는 2주 뒤인 7월 28일부터 시작했다.


7월 14일, 김용민이 '안주값어치' 방송을 시작했다. 2주 후인 7월 28일부터 김두일, 김용민, 서정필, 최진숙은 '두진서' 방송을 시작했다. 총 24회에 걸쳐 "상법상 도둑놈들", "회사를 강탈하고 점령했다"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을 퍼뜨렸다. 특히 회계담당자 최진숙을 고정 출연시켜 신빙성을 높이는 전략을 썼다. 2023년 10월 20일 정천수가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할 무렵까지 이어졌다.


1심 승소로 자신감을 얻은 정천수가, 인사동 찻집에서의 밀약을 통해 조직적 공격을 본격화한 것이다.


검찰·언론·유튜버 총동원한 포위망


정천수는 포위망을 더 넓혔다. 2022년 10월 청담동 술자리 보도 이후 윤석열은 공격해도 한동훈에게는 각을 세우지 않았다. 청담동 술자리 첼리스트에게 직접 연락해 인터뷰했다. 가짜뉴스 낙인찍기에 앞장선 가로세로연구소 김세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강진구는 한동훈 재임 기간 중 두 번이나 구속될 뻔했다. 압수수색도 수없이 당했다.

▲2023년 8월 25일 열린공감TV 방송 영상(2022년 12월 18일 녹취라고 밝힘)


한원섭, 김상민 같은 전문 고발꾼도 동원됐다. 한원섭은 강진구를 상대로 10건을 고발했다고 자랑했다. 양복 사건은 정천수가 회사 대표로서 직접 "선물하라"고 지시해놓고, 나중에 그것을 "범죄"라며 한원섭 명의로 동료들을 고발한 것이다. 폭행 사건은 2년 넘게 "조직적 폭행"이라며 음해하는 소재로 활용했다. 강진구를 사방에서 죽이려는 치밀한 계획이었다.


김충식 음모론과 최혁진 의원 활용


2024년 정치 지형이 바뀌었다. 1월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 4월 총선 민주당 압승, 7월 한동훈 당대표 취임. 정천수는 민주당 밀착 방송을 하면서 새로운 표적을 세웠다. 김충식이었다. 김충식은 최은순의 내연남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정천수는 김충식 메모를 근거로 온갖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재명 피습 사건 배후도 김충식, 조희대 사법 쿠데타도 김충식이 배후인 것처럼 몰아갔다. 민주연구원 부원장이던 최혁진이 의원이 되자 정천수는 이를 활용했다. 최혁진은 자신을 추천한 기본소득당을 배신하면서까지 비례 순번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정천수의 김충식 음모론은 최혁진 의원을 통해 국회에서까지 공론화됐다. 그러나 근거 없는 주장임이 드러나면서 정천수의 신뢰는 급격히 추락했다.


무너지는 정천수, 살아남은 강진구


정천수의 강진구 죽이기 플랜은 먹히지 않았다. 3년간의 조직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강진구는 여전히 뉴탐사를 운영하며 탐사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오히려 무너진 것은 정천수였다.


법원은 정천수가 주식 주기로 해놓고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은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경영권 분쟁의 책임이 정천수에게 있다고 못박았다. 지난 4월 29일에는 정천수가 2년 넘게 주장해온 '공동폭행' 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박대용 기자는 혐의 전체에 대해 무죄, 강진구 기자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제 정천수와 서정필 앞에는 불리한 것만 남았다. 두 사람은 강진구, 박대용을 상대로 저지른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의견 송치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경찰은 정천수와 서정필의 명예훼손 행위가 상습적이고 심각하다고 판단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11월 26일에는 양복 사건 1심 재판 결과가 나온다. 정천수도 300만 원 이상의 모헤어 원단 양복 수수 사실이 드러나 함께 기소됐다. 양복점 주인은 정천수 원단이 가장 비싼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혼자 빠져나가려던 시도마저 실패한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정천수가 직원 9명을 해고한 것에 대해 부당해고로 판정했다. 행정소송 1심 결과가 나왔음에도 정천수는 복직과 체불임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붕괴는 정천수에게도 잠재적 우호세력의 붕괴를 의미한다. 진혜원 검사가 망명을 제안할 만큼 밀접했던 검찰 권력과의 관계도 이제 무용지물이 됐다. 한동훈을 사실상 비호하며 강진구를 치려던 이이제이 전략은 완전히 실패했다. 김충식 음모론으로 민주당에 밀착하려던 시도도 신뢰 추락으로 끝났다.


정천수는 왜 그때 미국으로 갔을까. 검찰 수사 회피라는 명분도, 시민포털 사업이라는 명분도 모두 거짓이었다. 진짜 이유는 강진구, 최영민과의 결별이었다. 주식 증여 약속을 회피하고,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5억 원 인출 시도를 저지당한 순간부터 정천수의 도피 계획은 시작됐다. 18만 달러 모금도, 망명 계획도 모두 그 연장선이었다.


그리고 지금, 정천수는 쫓기고 있다. 앞으로 남은 재판들에서 정천수에게 유리한 것은 없다. 3년간 강진구를 죽이려 했던 정천수의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정천수가 죽이려 했던 강진구는 여전히 살아 있고, 정천수 자신이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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