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뉴탐사
OECD가 지운 0.3%p, 한국만 모르는 진짜 위험
성장률 1.7% 뒤에 숨은 '석유 말고 헬륨·브롬' 공급망 경고
OECD, 2월까지 세계 성장률 상향 예정이었으나 중동 전쟁이 통째로 지웠다
한국, 헬륨 65%·브롬 98%를 중동에서 수입…숫자는 보도됐지만 왜 위험한지는 아무도 안 썼다
2022년식 보조금 반복 경고…한국 전기요금·유류세 정책에 정면 해당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월 25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1.7%로 내렸다. 석 달 전 전망인 2.1%에서 0.4%p 깎은 것이다. 국내 언론은 이 숫자를 일제히 보도했다.
그런데 보고서 본문에는 이 숫자보다 훨씬 중요한 경고가 있다. 국내 매체도 일부 언급했지만, 왜 위험하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까지 분석한 보도는 없다.
전쟁만 아니었으면 세계 경제가 좋아질 참이었다

보고서 한가운데 눈에 띄는 그래프가 있다. OECD가 올해 2월 말까지 들어온 경제 데이터를 점검했더니, 세계 성장률 전망을 0.3%p 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이 아니라 세계 전체 이야기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좋아지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도 덩달아 좋아진다.
왜 전망이 밝아지고 있었나. 미국과 아시아에서 인공지능(AI) 관련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비상경제권한법(IEEPA) 관세에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실질 관세율이 14%에서 9.9%로 떨어졌다. 무역 장벽이 낮아진 것이다.
한국도 이 흐름 안에 있었다. 반도체 수출이 잘 나갔고, 미국 관세 부담이 줄면서 무역 환경이 나아지는 중이었다. 정부가 올해 성장률 목표를 2.0%로 잡은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였다.
그런데 2월 말 중동 전쟁이 터졌다. OECD의 표현대로라면, 좋아지던 전망이 "분쟁으로 완전히 상쇄됐다." 결국 세계 성장률 전망은 12월과 같은 2.9%에 묶였고, 한국은 오히려 0.4%p 떨어졌다. 전쟁이 없었다면 한국 성장률도 2.1%보다 높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 목표 2.0%는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가능한 숫자였다.
같은 중동 의존국인데 일본은 멀쩡하다

한국의 하향 폭 0.4%p는 G20 나라 중 영국(0.5%p) 다음으로 크다. 비슷하게 중동 원유에 크게 의존하는 일본은 OECD가 성장률 전망을 0.9%로 유지했다. 하향 폭이 0이다. 왜 한국만 이렇게 크게 깎였을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석유를 유난히 많이 쓰는 경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GDP 대비 석유 소비량은 OECD 38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름값 충격이 와도 한국 경제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다른 선진국보다 크다는 뜻이다.
일본에는 또 다른 완충장치가 있다. 올해 대규모 확장 재정을 편성해 에너지 비용 상승분을 상쇄할 여력이 있다. OECD 보고서도 일본에 대해 "확장 재정에 따른 수요 확대가 에너지 수입 비용 상승을 상쇄한다"고 적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이런 상쇄 요인 언급이 없다.
기름값이 오르면 누가 먼저 타격을 받을까. 택시 기사, 화물 운전자, 자영업자처럼 연료비를 직접 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OECD 보고서는 소득이 낮은 가구일수록 생활비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도 짚었다. 유가 충격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오지 않는다.
석유만 걱정하면 안 된다 - 반도체 소재도 중동에 묶여 있다
국내 언론도 헬륨·브롬 수급 우려를 언급하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 "공급 차질 우려"라는 한 줄에 그쳤다. OECD가 이 품목들을 원유·가스와 같은 무게로 경고한 이유, 그리고 실제로 공급이 끊기는 메커니즘은 분석되지 않았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중동 지역이 세계 헬륨의 3분의 1 이상, 브롬의 3분의 2 이상을 생산한다. 헬륨은 주로 카타르에서, 브롬은 주로 이스라엘에서 나온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둘 다 반도체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헬륨은 반도체 칩을 깎고 다듬는 과정에서 열을 식히는 데 쓰인다.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이 사실상 없다. 브롬은 칩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는 공정에 쓰인다.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헬륨 수입의 64.7%를 카타르에서 가져온다. 브롬은 97.5%가 이스라엘산이다.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의존도다. 중동 전쟁 이후 카타르의 에너지 기업 카타르에너지는 LNG 시설이 공격받으면서 기존 계약에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헬륨은 LNG를 만들 때 함께 나오는 부산물이라, LNG 공장이 멈추면 헬륨도 같이 멈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개월치 헬륨 재고를 확보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첨단 공정에서는 한번 쓴 헬륨의 90%를 회수해서 다시 쓸 수 있다. 그래서 당장 공장이 멈추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급이 6주 넘게 끊기면 상황이 달라진다. 헬륨을 실어 나르는 물류망 자체를 다시 짜야 하는데, 그 복구에만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OECD 보고서가 짚은 품목은 이뿐만이 아니다. 걸프 국가들은 비료의 핵심 원료인 요소의 세계 수출 34%를 차지한다. 요소 가격은 2월 중순 대비 40% 이상 올랐다. 비료가 비싸지면 농작물 생산비가 올라가고, 결국 식품 가격이 뛴다. 이 영향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 정부의 중동 사태 대응은 유류세 인하, 전기요금 관리 같은 에너지 가격 중심이다. 산업부가 헬륨·브롬 등 14개 품목의 수급 점검에 착수하긴 했지만, OECD가 에너지 가격과 비에너지 소재를 같은 비중으로 경고한 것에 비하면 대응의 무게가 다르다. 기름값은 시간이 지나면 내릴 수 있지만, 헬륨이나 브롬 공급망이 끊기면 복구하는 데 훨씬 오래 걸린다.
2022년 보조금 실수를 또 반복할 것인가
OECD 보고서는 에너지 보조금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평가했다. 2022~23년 우크라이나 전쟁 때 각국이 에너지 보조금을 대규모로 풀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나. 보조금이 정작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층보다 전체 국민에게 고르게 퍼졌다. 에너지 가격이 이미 내려간 뒤에도 보조금을 오래 유지했다. 그 결과 재정 부담만 커졌고, 사람들이 에너지를 아껴 쓸 이유도 사라졌다.
OECD는 이번에는 세 가지를 지키라고 권고한다. 보조금은 가장 어려운 가구와 기업에만 집중할 것. 에너지를 절약할 유인을 없애지 말 것. 보조금을 언제 끝낼지 미리 정해둘 것.
한국의 2022년을 떠올려 보자. 한국전력은 전기요금을 원가보다 낮게 유지하면서 수십조 원의 적자를 냈다. 그 뒤 산업용 전기요금을 여러 차례에 걸쳐 큰 폭으로 올렸다. 최근 유가가 안정되면서 요금을 내려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던 참에, 중동 전쟁이 다시 터졌다. 또 한 번 전기요금 재인상 논란이 시작될 수 있는 상황이다.
유류세 한시 인하도 마찬가지다. 모든 차량에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대형차를 모는 고소득자가 경차를 모는 저소득자보다 더 큰 혜택을 받는다. 차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 혜택이 없다. OECD가 말하는 "표적이 빗나간 보조금"의 전형적인 사례다.
유가 135달러 시나리오에서 한국이 가장 아프다

OECD는 보고서에서 "만약 상황이 더 나빠지면 어떻게 되나"를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봤다. 유가가 2분기에 배럴당 135달러까지 치솟고, 금융시장까지 불안해지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 세계 경제는 2년 뒤 기준 0.5% 추가 하락한다. 지역별로 보면 OECD 아시아·태평양 나라들이 가장 크게 맞는다. 한국, 일본처럼 에너지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사오는 나라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지금 OECD의 기본 전망은 "올해 중반부터 유가가 서서히 내려간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이 휴전 협상을 하면서도 지상전을 준비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 가정이 맞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반대로 전쟁이 빨리 끝나면 유가가 급락하고, 한국 같은 에너지 수입국이 가장 큰 혜택을 본다. 결국 한국 경제의 2026년은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 정부 정책으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좁은 것은 사실이지만, OECD가 권고한 표적 보조금·에너지 절약 유인 유지·출구 전략 사전 설정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영역이다. 지금 한국의 유류세 인하와 전기요금 정책은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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