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이 '반드시 죽여라' 명단에 올렸던 인물이 있다. 1948년 임시정부가 귀국해 처단해야 할 친일파로 꼽았던 김순흥이다. 그가 남긴 재산은 지금도 후손들 손에 있다. 안양 석수동에 있는 350억 원 상당의 땅이 대표적이다. 시세로 따지면 1000억 원에 달한다.
김순흥은 배우 이지아의 조부다. 이지아가 연예계에 데뷔하면서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다.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이지아는 조부의 친일 행적에 대해 "반성하고 있고 재산은 환수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 재산은 여전히 환수되지 않았다.
일제에 10억 바친 김순흥, 어떤 인물인가
김순흥의 친일 행적은 1937년부터 본격화됐다. 그해 7월 22일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그는 국방헌금 1만 원을 종로경찰서에 헌납했다. 1만 원은 현재 시세로 10억 원에 해당한다. 기사에는 "나라에 대한 봉사의 뜻을 표현하고자 하니 적은 돈이나마 바치오니 받아주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종로경찰서는 상징적인 곳이다.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던 기관이었다. 그런 곳에 거액을 헌납한 것이다.
같은 해 조선군사후원연맹 사업비로 2500원을 냈다. 현재 가치 2억 5000만 원이다. 9월에는 군용 비행기 헌납 기성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해 비행기 대금 500원을 냈다. 5000만 원에 해당한다. 당시 군용기 한 대 가격이 7만 5000원, 현재 시세 75억 원이었다.
1937년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해다. 미국이 일본의 충칭 폭격에 항의하며 비행기 관련 물자에 무역 제재를 가했다. 일본은 조선의 부자들을 동원해 군용기를 만들었다. 김순흥은 그 선봉에 섰다.
1939년에는 쇼와직물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이사장을 지냈다. 쇼와는 일왕 히로히토의 연호다. 천황의 이름을 회사명에 붙인 것이다. 같은 해 조선유도연합회 참사를 맡았다. 이 단체는 조선총독부가 황민화를 위해 유림을 동원한 조직이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가입을 거부하다 손톱이 다 빠지는 고문을 당했다. 김순흥은 순응했다.
1943년 8월에는 징병제 실시에 감격해 국방헌금 3000원을 냈다. 현재 가치 3억 원이다. 1944년 4월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감수포장을 받았다. 창씨개명도 했다. 가네모토 준쿄. 김본순흥(金本淳興)이라는 뜻이다.
김활란과 손잡고 이화학원 이사가 되다
김순흥이 사망한 것은 1981년이다. 그의 장례는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이화학원장으로 치러졌다. 김순흥과 이화학원은 어떤 인연이 있을까.
김순흥의 어머니 송은석은 1950년 4월 자하문 외곽 1만 3645평을 이화여자대학교에 기부했다. 이 기부를 받은 사람이 김활란이다. 김활란의 본명은 김기득이다. 1948년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한 뒤 가족들과 함께 개명했다. 언니는 김신득에서 김아이린으로, 본인은 김기득에서 김활란으로 바꿨다.
김활란의 언니 김신득 남편은 조선총독부 고용 밀정 김달하다. 김활란은 악질 친일파로 유명하다.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예원중학교는 김순흥이 만들었다. 친일 행적으로 얻은 땅에 세운 학교다. 이 학교들을 이화학원에 편입시킨 대가로 그는 이사 자리를 얻었다. 1949년 6월 반민특위가 폭력적으로 해산된 직후였다. 친일파 청산이 물거품이 된 상황에서 이뤄진 거래였다.
안양 석수동 350억 땅의 비밀
김순흥이 남긴 재산 중 눈에 띄는 것이 안양 석수동 토지다. 이 땅은 원래 군부대가 사용했다. 1950년대 육군 167연대에 징발됐다가 2013년 부대가 이전하면서 원소유자의 상속인들에게 환매권이 부여됐다.
김순흥의 자녀 12명이 2016년 38억 3000만 원에 이 땅을 환매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지아의 아버지가 형제들의 인감을 사용해 169억 원 규모의 근저당권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형제들은 이 계약이 위조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이 땅은 경매를 통해 제3자에게 넘어갔다. 형제들은 원인무효 소송을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땅의 위치는 좋다. 관악역과 가깝고 제2경인고속도로 진입로가 바로 옆이다. 월곶-판교 복선전철 건설사업 노선에도 일부 포함됐다. 새로운 만안역이 인근에 들어설 예정이다. 더블 역세권이 되는 셈이다.

2018년 한 블로그에는 이 땅이 '아파트 부지'로 광고됐다. 매매 가격 1000억 원. 기부채납을 하면 개발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왜 환수되지 않았나
2005년 친일재산환수특별법이 제정됐다. 이후 168명의 친일파 재산 2300여 필지, 2100억 원어치가 환수됐다. 그러나 2010년 법무부로 업무가 이관된 뒤 환수 실적은 전무하다.
김순흥의 재산은 당시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군부대가 이전한 것이 2013년이었기 때문이다. 친일파 재산인 줄 알았다면 환수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
현장을 찾아가 옛 김순흥 자택 터의 관리인을 만났다. 그는 "옛날에 여기 기와집 12채가 있었다"고 말했다. 99칸짜리 대저택이었다. 서울 4대문 안에 99칸 집은 두 채뿐이었다. 한 채가 윤보선 전 대통령 집이고, 다른 한 채가 김순흥 집이었다.
관리인은 또 "전국에서 김순흥을 찾아온 사람이 열댓명쯤 됐다"고 했다. 김순흥의 땅에 살고 있는데 연락이 안 돼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파악되지 않은 김순흥의 토지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에 "친일파 재산 환수 끝까지 간다"고 밝혔다. 대통령에게 보고된 미환수 친일파 재산은 1500억 원이다. 여기에 김순흥의 재산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1000억 원 규모의 덩어리가 빠져 있는 셈이다.
뉴탐사는 강득구 의원실에 이 사실을 전달했다. 의원실은 "관심 갖고 지켜보겠다"고 답했다. 김용만 의원실에도 알렸다. 김용만 의원은 김구 선생의 후손이다.
이지아의 선택
배우 이지아는 2011년 조부 김순흥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라는 보도가 나왔을 때 "조부가 대지주이자 육영사업을 한 사람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며 친일 행적은 몰랐다고 밝혔다. 2025년 2월에는 공식 입장문을 냈다. "조부의 친일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후손으로서 사죄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취득된 재산이라면 국가에 환수돼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이지아의 아버지는 여전히 석수동 토지의 소유 지분을 갖고 있었다. 주소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하브라로 되어 있다.
이지아의 전 남편은 가수 서태지, 본명 정현철이다. 정현철의 외증조부는 고종황제의 군악대 대장이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뒤에는 독립운동을 했다.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있는 동의단지회 비석 건립 비용을 정현철이 기부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친일파의 후손과 독립운동가의 후손. 두 사람의 결혼과 이혼은 당시 '독립투사의 후예와 친일파의 이별'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친일파 재산,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김순흥은 김구 선생이 척살 명단 맨 위에 올렸던 인물이다. 반민특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체포됐을 것이다. 무기징역이나 사형 선고를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폭력적으로 해산됐다. 김순흥은 재산을 지켰다. 그 재산은 3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석수동 토지를 둘러싼 형제들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형제들이 승소해 소유권을 회복하면 국가가 환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보훈부 산하에 친일 귀속 재산 후손 재매각 방지를 위한 심의 기구가 신설됐다. 진천군은 군 내 700여 필지에 대한 정밀 조사를 시작했다.
김순흥의 재산도 이 조사에 포함돼야 한다. 파악되지 않은 전국의 토지까지 모두. 친일파 청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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