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사

배기성 강사 "이승만에 공은 없다"…이언주 역사관에 정면 반박

이재용 외가 홍진기, 조봉암 사법살인·4.19 발포 명령의 실무자…장인 김신석은 조선신궁 봉찬회 발기인

2026-03-06 09:05:17

뉴탐사 역사탐사가 3주 만에 돌아왔다. 5일 방송된 '친일파 추적' 다섯 번째 편에서 배기성 강사는 최근 논란이 된 이언주 의원의 역사관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동시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외할아버지 홍진기 전 법무부 장관과 그 장인 김신석의 친일 행적을 추적했다. 홍진기는 조봉암 사법살인과 4.19 유혈 진압의 실무 책임자였고, 김신석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 금융인이었다.


배기성 "이승만에 공은 없다, 농지개혁도 마찬가지"


배기성 강사는 이언주 의원이 매불쇼에 출연해 "이승만은 공과 과가 있다. 공은 농지개혁"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이승만에게 공이란 없으며 과만 있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배기성 강사에 따르면, 농지개혁법은 이승만이 아니라 죽산 조봉암 당시 농림부 장관이 주도했다. 조봉암이 1948년 8월 취임 후 국장·실장 여섯 명과 밤잠을 줄여가며 만든 법안이었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한민국 역사상 제1호 거부권을 행사해 이 법안을 막았다. 이후 이승만이 도입한 임시토지취득세는 농민들에게 수확량의 절반을 현물로 거둬들이는 악법이었고, 이렇게 거둔 자금은 국민방위군에게 돌아가지 않고 신성모 국방부 장관에 의해 약 140억원이 횡령됐다. 배기성 강사는 이런 경위를 들어 농지개혁을 이승만의 공적으로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이언주 의원에 대한 자신의 입장도 분명히 했다. 배기성 강사는 이언주 의원의 조국혁신당 합당 반대에는 동의했으나, 3일 뒤 2019년 프리덤칼리지 리박스쿨 강의 영상이 공개되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언주 의원이 국민의힘 입당 전 프리덤칼리지 리박스쿨에서 이승만 옹호 강의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배기성 강사 본인까지 '리박스쿨'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구독자 2천 명이 이탈했다. 그는 이언주 의원의 합당 반대론은 지지하지만, 이후 드러난 역사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신석, 조선신궁 봉찬회 발기인에서 중추원 주임까지


이날 방송의 본론은 이재용의 외가로 거슬러 올라갔다. 홍라희의 외할아버지이자 홍진기의 장인인 김신석(1896~1948)은 전라남도를 기반으로 한 친일 금융인이었다. 호남은행 전무, 조선은행 상무를 거쳤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평의원, 국민총력 조선연맹 이사,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대화동맹 심의원 등을 역임했다. 대화동맹은 '미영 격멸, 내선 단결, 성전 필승'을 내건 단체다. 중추원 참의 경력만으로도 친일 행적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게 배기성 강사의 설명이다.


특히 김신석은 조선신궁 봉찬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조선신궁은 야스쿠니 신사의 식민지 본부 격으로, 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남산의 산능선을 잘라내고 건설한 시설이다. 384개의 계단이 남대문에서 남산 꼭대기까지 이어졌고, 전국에서 학생들이 기차를 타고 경성역에 모여 신사참배를 하러 올라갔다. 배기성 강사는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조선신궁 건립에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 홍라희의 외할아버지라는 점을 짚었다. 김신석은 1948년 사망해 반민특위 기소를 면했다.


뉴탐사 취재팀은 남산 현장을 직접 찾았다. 조선신궁 배전터의 기둥 주춧돌, 한양도성 성곽을 허물고 신궁을 지은 흔적, 일제 시대 방공호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숭의여자대학교 자리에는 경성신사가 있었고, 리라초등학교 인근 남산원에는 러일전쟁의 노기 마레스케를 모신 노기신사가 있었다. 남산원 안에는 소화 9년(1934년) 명문이 새겨진 수반과 기증자 이름이 적힌 석축이 지금도 남아 있다.


홍진기, 조봉암 죽이고 4.19 때 발포 명령


김신석의 사위 홍진기는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전주에서 판사를 지냈다. 조선인 차별 정책으로 교수가 되지 못해 판사의 길을 택한 것이다. 해방 후 이승만 정부에서 1954년 제네바 회담 한국 대표를 지냈고, 법무부 장관(1958~1960)과 내무부 장관(1960.3.23~4.24)을 역임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홍진기의 가장 큰 악행은 조봉암 사법살인이다. 1958년 12월 24일 이른바 '2·4파동'으로 국가보안법이 날치기 통과됐는데, 이 법은 관련 범죄를 단심제로 처리하고 피의자의 변호인 조력권을 박탈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악법을 통해 조봉암은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1959년 7월 사형당했다. 배기성 강사에 따르면, 당시 장택상 전 국무총리가 홍진기를 세 차례나 찾아가 "조봉암은 용공 인사가 아니다"라고 만류했지만, 홍진기는 끝내 사형 집행을 밀어붙였다.


내무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4.19 혁명 당시 시위대를 향한 경찰 발포 명령의 책임자가 됐다. 배기성 강사는 김주열의 죽음도 반민특위 해체와 연결했다. 김주열을 고문한 경찰관이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됐다가 풀려난 바로 그 고문 경찰관이었다는 것이다. 홍진기는 윤보선 정부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5.16 군사쿠데타 이후 이병철의 요청으로 석방됐다. 이후 한국일보 사장을 거쳐 이병철이 만든 중앙일보 사장에 취임했고, 그의 딸 홍라희는 이병철의 셋째 아들 이건희와 결혼했다.


삼성 반도체 입국의 출발점, 그 뒤에 가려진 역사


배기성 강사는 이병철 회장과 스티브 잡스의 1982년 회담 사진을 소개하며, 그 자리에 홍진기가 동행했다고 밝혔다. 이 회담 이후 이병철은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삼성 반도체 입국의 출발점이 된 역사적 장면이다. 배기성 강사는 사업가로서의 이병철의 안목은 인정하면서도, 삼성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기업 활동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요 언론과 재벌가의 혼맥은 친일의 역사와 깊이 얽혀 있다. 중앙일보는 이병철이 경향신문 인수에 실패한 뒤 직접 창간한 신문이고, 그 초대 사장이 홍진기였다. 조선·중앙·동아 사주 일가의 혼맥도는 재벌·정관계와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배기성 강사는 6월 1일 이승만에 대한 단독 저서를 출간할 예정이며, 이번에 펴낸 신간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에는 동아시아 전역에 흩어진 일본 제국주의와 친일의 역사가 담겨 있다.

Copyright ⓒ 시민언론뉴탐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뉴스

주요 태그

시민언론 뉴탐사 회원이 되어주세요.
여러분의 회비는 권력감시와 사법정의, 그리고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취재 및 제작에 사용되며, 뉴탐사가 우리사회 기득권을 견제할 수 있는 언론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뉴탐사 회원가입
Image Descrip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