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의 문화예술계 인사 개입 의혹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김건희 씨가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언이 미술계 안팎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김성희 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고위공직자 필수 역량평가를 면제받고 임명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한편 청담동 술자리 의혹 수사에서는 경찰이 네비게이션 파일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취재 결과 김성희 관장은 2023년 9월 14일 임명됐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사임 의사를 밝힌 다음날이었다. 당시 유인촌 후임 장관이 지명된 직후 전격적으로 임명이 이뤄졌다. 문체부 장관이 사실상 공석인 상황에서 진행된 인사였다. 미술계 관계자는 "박보균 장관이 생각한 사람은 김성희가 아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고위공직자 역량평가 생략...영어시험도 면제
김성희 관장 임명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절차상 하자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차관보급 고위공직자로 분류된다.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서류심사 통과 후 행정 조직 관리 능력을 평가하는 역량평가를 거쳐야 한다. 이 시험은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하루 종일 진행되는 이 평가에서는 부하 직원과의 갈등 상황 등 실제 행정 환경을 가정한 문제가 출제된다. 공직 경험이 없는 사람은 통과하기 어렵다.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경우 이 시험에 떨어졌다. 당시 문체부는 그를 임명하기 위해 재시험을 실시했다. 논란이 일자 결국 합격 처리했다. 그런데 김성희 관장은 아예 이 시험을 보지 않았다. 서류심사가 끝났는데도 시험 일정이 잡히지 않다가, 임명 직전 갑자기 시험을 면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영어시험도 포함된 역량평가를 통과하지 않고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시험 준비를 해야 되고 경우에 따라서 학원에 다녀야 되고 쪽집게 과외도 받아야 되는 게 불문율"이라며 "김성희 관장 같은 경우는 공직 경험이 없기 때문에 통과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화예술 쪽 기관장들은 굳이 그런 시험을 볼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을 만들어서 생략하고 넘어갔다"고 덧붙였다.
"이미 내정 후 공모...김건희와 점심 자주 먹는 사이"
미술계에서는 김성희 관장 임명 전부터 소문이 무성했다. 복수의 미술계 관계자들은 "공모가 나기 전에 이미 내정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소문대로 될까 의심했는데 소문대로 되더라"며 "내정이 어느 정도 된 다음에 공모가 나고, 나머지는 들러리를 서는 셈"이라고 증언했다. 당시 김찬동 전 수원미술관장, 심상용 서울대 교수와 3파전이었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김성희 관장과 김건희 씨의 친분설은 미술계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한 관계자는 "김성희 관장과 대통령 부인은 점심 때 자주 먹고 그런 사이였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 부인이 인사에 개입한다는 소문이 있었고, 사전에 누구는 나이가 너무 많고 누구는 어떻고 하는 얘기들이 흘러나왔다"고 전했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의 입김도 거론된다. 김성희 관장은 이대 출신으로 이배용 위원장의 대학 후배다. 예술계 전문매체 뉴스아트는 2023년 9월 "김성희 신임 관장은 윤석열 대통령 측근인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의 대학 후배이자 지인"이라고 보도했다. 이배용 위원장은 현재 김건희 씨를 통한 매관매직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이배용 위원장이 영향력을 많이 행사했고, 결정적으로는 대통령 부인이 결정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동양화 전공에 서미갤러리 경력...부적절 지적
김성희 관장의 경력도 논란이다. 그는 이화여대 동양화 전공 출신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자리는 현대미술 분야의 최고 권위를 상징한다. 그런데 동양화 전공자가 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된 것이다.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경력도 정규 교수직이 아닌 특수대학원 교수로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서미갤러리 큐레이터 경력이다. 서미갤러리는 재계에서 미술품을 통한 자금세탁 통로로 자주 거론되는 곳이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국립미술관장이 되려면 커머셜한 백그라운드가 있으면 안 된다"며 "갤러리 등 상업적 인맥이 있으면 소장품 구입 과정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 원칙이 무시됐다"고 덧붙였다.
김성희 관장은 코바나콘텐츠에 자주 드나들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재산신고 내역을 보면 100억 원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건물이 60%, 부동산이 25억 원, 주식이 12억 원이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어떻게 김성희가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특검 수사 의식하며 연락 차단..."이배용 위원장 연락 못 받으셨나"
김성희 관장은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휴대전화는 받지 않고, 텔레그램 메시지에도 반응이 없다가 "이배용 위원장 연락 못 받으셨는지요"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자 "누구세요"라고 화들짝 반응했다. 이후 신원 확인 요청에 "대체 누구십니까"라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 텔레그램을 차단했다.
취재진이 김성희 관장 임명에 김건희 씨와 이배용 위원장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변은 없다. 통상 사실이 아닌 의혹에 대해서는 즉각 반박하거나 법적 조치를 예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김성희 관장은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이배용 위원장 역시 전화기를 꺼둔 상태로 연락이 닿지 않는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미술계를 대표하는 중요한 자리인데, 정부에서는 티 안 나게 자기 사람을 앉힐 수 있는 자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이제는 좀 달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7시29분 한 통의 전화...첼리스트는 왜 30분 지각했나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서 첼리스트의 실제 동선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첼리스트는 2022년 11월 23일 첫 경찰 조사에서 "주점에 8시 30분경 도착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네비게이션 파일을 근거로 주장한 "8시 9분 도착"과 20분 이상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첼리스트는 왜 술자리에 30분 가까이 지각했을까.
결정적 단서는 통신사 기지국 기록이다. 첼리스트는 당일 7시 29분 광주시 장지동에서 통화했다. 이는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장지동에서 티케까지는 정상적으로 이동하면 46분이 걸린다. 7시 29분에 출발했다면 8시 15분쯤 도착한다. 그런데 첼리스트는 8시 30분에 도착했다고 진술했다. 15분의 갭이 발생한다.
이 15분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뜻밖에도 이제일 변호사가 제공했다. 이제일 변호사는 첼리스트가 구룡터널에서 P턴해 염곡사거리 방향으로 우회했다고 주장했다. 이 루트는 경찰이 주장한 직진 루트보다 18분 더 걸린다. 실제로 시뮬레이션 결과 직진 루트는 14분, 우회 루트는 32분이 소요됐다.
P턴 우회 시나리오를 대입하면 퍼즐이 맞춰진다. 7시 29분 장지동 통화 후 출발, 구룡터널에서 P턴, 염곡사거리 경유 시 약 1시간 소요된다. 이동 중 신호 대기와 교통 상황을 감안하면 8시 30분 도착이 설명된다. 첼리스트의 최초 진술이 정확했던 것이다.
경찰 시나리오의 치명적 모순...염곡사거리 파일은 어떻게 생성됐나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경찰의 주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경찰은 네비게이션 파일을 근거로 7시 25분 출발, 8시 9분 도착, 총 44분 소요를 주장했다. 그런데 경찰이 제출한 네비게이션 파일에는 염곡사거리 이미지가 포함돼 있다. 경찰 주장대로 직진했다면 염곡사거리를 지날 이유가 없다. 염곡사거리 파일이 생성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제일 변호사의 P턴 주장은 염곡사거리 파일의 존재를 설명한다. 그러나 경찰의 44분 주장을 무너뜨린다. 반대로 경찰의 44분 주장을 받아들이면 염곡사거리 파일이 설명되지 않는다. 두 주장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이 거짓이거나, 네비게이션 파일 자체가 조작됐다는 결론에 이른다.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경찰의 조사 방식이다. 2022년 11월 23일 첫 조사에서 첼리스트는 고깃집이나 티케 이름을 먼저 언급하지 않았다. 경찰이 먼저 티케를 언급하면서 질문을 하면 첼리스트가 맞다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첼리스트는 직접 티케라는 표현 대신 주점이라는 표현을 썼다. "주점에 20시 30분경 도착했다"고만 진술했다. 12월 8일 조사에서는 경찰이 "디지털 포렌식 결과를 보면 청호골프연습장을 검색한 사실이 확인된다"며 먼저 답을 알려줬다. 첼리스트는 그제야 골프연습장 방문을 확인했다.
경찰은 질문에서 모든 답을 제시했다. "20시경 청호골프연습장 인근 식당에서 이세창 등과 만난 후 20시 30분경 티케로 이동했다"는 식이었다. 피의자에게 답을 알려주고 확인받는 조사 방식은 정상적인 수사 절차가 아니다.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자유로운 진술을 청취해야 하며, 특정 답변을 유도하거나 암시해서는 안 된다.
"8시1분 출발이 왜 압구정로 경유하나"...이제일도 답변 중단
이제일 변호사는 최근 청담동 술자리 관련 반박을 중단했다. 과거에는 텔레그램으로 수시로 반박 메시지를 보냈지만, 네비게이션 조작 의혹이 제기된 이후로는 내용에 대한 반박 없이 인신공격만 반복하고 있다. "8시 1분 언주로 출발이 왜 압구정로를 거쳐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고 있다.
7시 29분 장지동 통화 기록과 첼리스트의 최초 진술 "8시 30분"은 객관적 사실이다. 이 두 사실을 연결하면 P턴 우회 시나리오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경찰의 44분 주장과 양립할 수 없다. 경찰과 이제일 변호사 모두 더 이상 자신들의 주장을 방어하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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