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17년부터 9년째 급여를 받지 않고 있다. 사업보고서 어디에도 이 회장의 보수 내역은 없다. 미등기임원 신분으로 '무보수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에 이 회장의 보통주 보유량이 적혀 있다. 9,741만4,196주. 2025년 주당 배당금 1,668원을 곱하면 약 1,625억원이다. 직원 평균 연봉 1억5,800만원의 1,028배다. 급여는 0원이지만, 삼성전자로부터 흘러가는 돈은 0원이 아니다. 게다가 배당은 급여보다 세 부담이 가볍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DART)에 공시된 제57기 사업보고서(2025년 실적)를 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특수관계자에게 배당금 1조7,413억원을 지급 결의했다.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계열사와 이 회장 일가가 보유한 지분에 대한 배당이다. 이 회장 개인의 배당금 1,625억원은 이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재용 '무보수'가 가리는 것들
배당은 주주의 권리다. 급여와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무보수'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인상은, 이 회장이 삼성전자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업보고서의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세금 구조도 다르다. 급여는 근로소득세 최고세율 45%(지방소득세 포함 49.5%)가 적용된다. 배당소득도 종합과세 대상이지만, 법인세를 이미 낸 이익에서 지급되므로 이중과세를 조정하는 배당세액공제가 붙는다. 같은 금액이라면 급여보다 배당으로 받는 쪽이 세 부담이 가볍다.
3년간 배당 추이를 보면 구조가 더 선명해진다. 삼성전자의 현금배당 총액은 2023년 9,809억원, 2024년 9,811억원, 2025년 1조1,108억원이다. 2023~2024년에는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2025년에 13.2% 늘었다. AI 반도체 호황으로 연결 당기순이익이 44조2,610억원(2025년)으로 뛰면서 배당 재원이 커진 결과다.
그런데 배당성향, 그러니까 번 돈 중 얼마를 배당으로 돌려주느냐의 비율은 오히려 줄었다. 2023년 67.8%에서 2024년 29.2%, 2025년 25.1%로 뚝 떨어졌다. 돈을 훨씬 많이 벌었는데 나눠주는 비율은 줄인 것이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연결 기준 지배기업 소유주지분 당기순이익은 44조2,610억원이다. 늘어난 이익은 어디로 갔을까. 같은 보고서에 답이 있다. 유·무형자산 취득에 52조1,531억원, 자사주 매입에 약 10조원이 쓰였다.
자사주 매입은 주주환원의 한 방법이다. 하지만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해야 유통 주식 수가 줄어 주당 가치가 올라간다. 소각하지 않고 쌓아두면 회사 금고에 의결권 없는 주식이 잠자는 것일 뿐이다. 삼성전자는 이 자사주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자사주 16조 소각, 그리고 남은 1,843만주
2026년 3월 6일,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 3차 상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새로 매입한 자사주는 1년 안에 소각해야 하고, 기존에 쌓아둔 자사주도 1년 6개월 안에 소각해야 한다. 시한은 2027년 9월 6일이다.
삼성전자는 시행 4일 만인 3월 10일 사업보고서를 통해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보유 자사주 1억543만주 중 8,700만주를 올해 상반기에 소각한다. 3월 10일 종가(18만7,900원) 기준 약 16조원 규모다. 보유분의 82.5%를 없앤다는 것이니, 얼핏 보면 파격적인 주주환원이다.
문제는 나머지 17.5%다. 1,843만주가 소각 대상에서 빠졌다. 이유는 '임직원 주식보상용'이다. 개정 상법은 임직원 보상 목적의 자사주 보유를 예외로 인정한다.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보유 계획을 승인받으면 된다. 삼성전자는 이 예외 조항을 활용해 1,843만주를 금고에 남겨두기로 했다.
1,843만주의 가치는 종가 기준 약 3조4,600억원이다. 적지 않은 규모다. 이 물량의 행방을 추적하려면, 2025년 10월 삼성전자가 도입한 새로운 보상 제도를 봐야 한다.
PSU, 도입 시점이 공교롭다
삼성전자는 2025년 10월 13일 성과연동 주식보상(PSU) 제도를 전 임직원 대상으로 도입했다. 향후 3년간 주가 상승률에 따라 자사주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사원·대리급(CL1~2)에게 200주, 과장·부장급(CL3~4)에게 300주를 약정하고, 주가가 100% 이상 오르면 직급에 따라 최대 400~600주까지 받을 수 있다.
도입 시점이 공교롭다. 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본격 논의되던 시기와 겹친다. PSU 발표 직후 일부 언론과 증권가에서 소각 의무 회피 수단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흘 뒤인 10월 16일, 삼성전자는 사내 공지를 통해 "PSU가 상법 개정에 따른 자사주 소각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제도 자체의 취지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임직원 보상을 주가와 연동하는 것은 해외 주요 기업에서 널리 쓰이는 방식이다. 문제는 규모의 배분이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PSU 약정량은 직급에 따라 크게 다르다. 일반 직원 평균 275주. 반면 전영현 대표이사와 노태문 대표이사는 각각 12만주를 약정받았다. 일반 직원의 436배다. 사외이사들도 각 1,000주를 약정받았다.
현재 주가(약 19만원)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주가가 100% 올라 최대 지급이 이루어질 경우 CL3~4 직원 1인이 받는 PSU 가치는 최대 약 1억1,400만원이다. CL1~2 직원은 최대 약 7,600만원이다. 대표이사는 같은 조건에서 최대 약 456억원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같은 성과의 과실이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가는지, 그 설계 자체에 구조적 쏠림이 있다.
그리고 이 PSU 지급에 쓰이는 재원이 바로 소각에서 빠진 1,843만주다.
한종희 퇴직금 86억, 산정 근거는 불투명
자사주와 배당만이 아니다. 사업보고서에는 경영진 보수의 구체적 내역이 기재되어 있는데, 여기서도 구조적 질문이 생긴다.
2025년 삼성전자에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사람은 고(故) 한종희 부회장이다. 총 134억700만원. 급여 4억6,500만원, 상여 43억5,300만원, 퇴직금 85억5,800만원이다. 한 부회장은 2025년 3월 19일 주주총회를 주재한 뒤 3월 25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37년간 삼성전자에 재직하며 TV 사업 20년 연속 세계 1위를 이끈 인물이다.
퇴직금 86억원은 직원 평균 연봉의 54배에 해당한다. 사업보고서에는 "임원퇴직금 지급규정(이사회 결의)에 의거하여 퇴직기준급여에 임원 근무기간과 지급배수(1~3.5)를 곱하여 산출"했다고만 적혀 있다. 퇴직기준급여가 정확히 얼마인지, 지급배수가 몇 배로 적용됐는지는 공시되지 않는다. 이사회가 정한 규정에 따랐다는 것 외에 주주가 검증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
같은 해 퇴직한 전경훈 고문의 퇴직금은 33억8,000만원, 전년(2024년)에 퇴직한 경계현 고문의 퇴직금은 52억7,200만원이었다. 경계현 고문의 경우 퇴직기준급여 9,900만원에 근무기간 16년, 지급배수를 곱해 산출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역산하면 지급배수는 약 3.3배다. 최대치(3.5배)에 가깝다. 이 지급배수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지는 사업보고서에 나와 있지 않다. 보상위원회가 관여하지만, 보상위원회 회의록은 공시 대상이 아니다.
두 번째로 많은 보수를 받은 사람은 이원진 사장으로 73억500만원이다. 미등기임원이다. 미등기임원 보수는 주주총회 승인 대상이 아니다. 이사회(경영위원회) 결의만으로 결정된다. 미등기임원 989명의 연간급여 총액은 7,055억원, 1인 평균 7억4,400만원이다.
미등기임원 7.4억 vs 직원 1.58억
미등기임원과 직원의 보수 격차도 3년 치로 볼 필요가 있다. 2023년 미등기임원 1인 평균은 7억2,600만원, 직원 평균은 1억2,000만원이었다. 배율은 6.1배. 2024년에는 미등기임원 6억7,100만원, 직원 1억3,000만원으로 5.2배. 2025년에는 미등기임원 7억4,400만원, 직원 1억5,800만원으로 4.7배다.
배율만 보면 격차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AI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성과급이 직원에게도 상당 부분 돌아간 결과다. 하지만 여기에 PSU와 자사주 보상까지 포함하면 계산이 달라진다. 2025년부터 임원급은 초과이익성과급(OPI)의 상당 부분을 자사주로 수령한다. 상무는 50% 이상, 부사장 70% 이상, 사장 80% 이상이다. 이 자사주는 지급 후 1~3년간 매도가 제한되지만, 주가가 오르면 현금 성과급보다 가치가 커진다. 사업보고서상 '연간급여 총액'에 이 자사주 지급분이 어떤 방식으로 반영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같은 보고서에서 남녀 임금격차도 확인된다. 2025년 남성 평균 급여 1억6,700만원, 여성 1억3,000만원. 여성은 남성의 77.8%를 받는다. 근속연수는 남성 14.0년, 여성 13.0년으로 1년 차이다. 3년 전(2023년)에는 남녀 급여 차이가 3,100만원이었는데 2025년에는 3,700만원으로 벌어졌다. 실적이 좋아질수록, 성과급 비중이 높은 직급에 남성이 집중된 구조가 격차를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물어야 할 것
삼성전자의 2026년 정기주주총회는 올해 처음으로 개정 상법이 적용되는 주총이다. 임직원 보상용 자사주 1,843만주의 보유 계획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이다. 소액주주가 실질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첫 기회다.
물어야 할 질문은 구체적이다. 1,843만주 중 경영진(등기이사+사장급 미등기임원)에게 배분되는 물량은 얼마인지, PSU 외에 양도제한주식(RSA) 등 다른 형태의 주식보상에 쓰이는 물량은 얼마인지, 보유 기한이 지난 뒤 잔여 물량은 소각할 것인지 아니면 추가 보상에 전용할 것인지. 사업보고서에는 "계속 보유하는 자기주식은 향후 임직원 주식보상용으로 처분할 예정"이라고만 되어 있다.
한편 이재용 회장의 무보수 경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변수다. 무보수는 2017년 이 회장의 구속 이후 시작됐다. 사법 리스크가 정리되고 경영 전면에 나설 경우, 보수 수령 재개 여부와 그 규모가 주총의 새로운 쟁점이 될 수 있다. 이 회장은 미등기임원이기 때문에 주주총회에서 승인한 등기이사 보수 한도(360억원)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사회 결의만으로 보수가 결정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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