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원대 다단계 사기로 징역 15년을 받은 사람이 있다. 그는 감옥에서 나오려고 금품 로비를 벌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보자가 증거를 모아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관련자 전원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그런데 5년이 지나 검찰이 내린 결론은 뜻밖이었다. 로비를 벌인 사람들은 모두 풀어주고, 이를 제보한 사람만 사기죄로 기소한 것이다.
검찰은 어떻게 경찰 수사를 정반대로 뒤집었을까. 그 배후에는 공수처장 직무대행 출신 김선규 변호사를 비롯한 친윤 검찰 출신 전관들이 있었다.

감옥에서 시작된 로비
IDS홀딩스 대표 김성훈은 1조 2천억 원대 다단계 사기를 벌여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었다. 2017년 9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1심 징역 12년보다 형이 가중됐다. 처음에는 좌절했지만 한 달 만에 자신감을 되찾았다. 경찰이 분석한 면회 녹취록에 따르면, 그는 "형집행정지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교도소에서 만난 브로커 재소자 이모 씨에게서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고도 했다.
문제는 김성훈에게 돈이 있었다는 점이다. 파산 선고를 받은 사람이라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은 묶여 있었다. 그런데도 수억 원을 굴리며 로비를 시도했다. 범죄자금을 숨겨둔 것이다.
접견변호사가 메신저 역할
재소자들끼리는 직접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접견변호사 이지연을 이용했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이지연 변호사는 브로커 이 씨를 235회, 김성훈을 175회 접견했다. 같은 날 두 사람을 순차적으로 만나는 일이 잦았다. 아침에 이 씨를 만나고 오후에 김성훈을 만났다. 변호사가 둘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보자 김희석 씨가 끌려들었다. 김희석 씨는 과거 검사 뇌물 사건을 제보한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검찰 인맥이 넓다고 알려져 있었다. 브로커 이 씨는 김희석 씨에게 "김성훈의 형집행정지를 도와주면 3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증거 모아 자수한 제보자
김희석 씨는 김성훈이 누구인지 알아봤다. 그의 사기 피해자 중에는 딸과 어머니가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족도 있었다. 김희석 씨는 마음을 바꿨다. 협조하는 척하면서 증거를 모으기로 했다.
그는 선금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다. 이지연 변호사 계좌를 거쳐 4500만 원이 들어왔다. 3억 원짜리 수표 사본도 받았다. 나머지 2억 7천만 원에 대해서는 이지연 변호사가 "내가 보관하고 있다"는 확인서까지 써줬다. 충분한 증거가 모이자 김희석 씨는 2019년 7월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전원 기소 의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1년 반 동안 꼼꼼히 수사했다. 2020년 10월, 경찰은 김희석 씨를 포함해 브로커 이 씨, 이지연 변호사, 김성훈까지 관련자 전원을 검찰에 넘겼다. 알선수재와 범죄수익은닉 혐의였다.
브로커 이 씨가 김희석 씨에게 보낸 편지가 증거로 제출됐다. "길동이 건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여기서 '길동이'는 김성훈을 뜻하는 암호였다. "5월 말까지 형집행정지를 마무리하라"는 압박도 담겨 있었다. 이지연 변호사도 "일이 연기된 거라면 중단하지 말고 추진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로비 정황이 또렷이 드러나 있었다.
검찰, 5년 묵히다 제보자만 기소
검찰로 넘어간 사건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주임검사가 10명이나 바뀌었다. 아무도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2021년에는 "재판 중인 사건이 없어서 기소중지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김희석 씨는 당시 두 건의 재판을 받고 있었다. 허위 사실이었다.
5년이 지난 2024년 6월, 갑자기 수사가 재개됐다. 결론은 경악스러웠다. 검찰은 김희석 씨만 사기죄로 기소했다. 형집행정지를 해줄 생각이 없으면서 돈을 받았으니 사기라는 논리였다. 김성훈은 오히려 피해자가 됐다. 브로커 이 씨, 이지연 변호사는 모두 불기소됐다.
검찰은 이지연 변호사가 받은 돈이 김희석 씨의 다른 사건 수임료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자료를 보면 돈의 흐름이 전혀 다르다. 이지연 변호사에게 간 돈은 김희석 씨가 아니라 김성훈 측근들 계좌에서 나왔다.
친윤 전관들의 그림자
김성훈의 변호를 맡은 곳은 법무법인 단박과 다전이다. 윤석열 정권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검찰 출신 전관들이 모인 곳이다. 단박의 남기춘 변호사는 윤석열의 친구로 알려져 있다.
2024년 9월, 김성훈의 검찰 조사에 한 변호사가 동행했다. 김선규다. 그는 2024년 5월까지 공수처장 직무대행이었다. 공수처에서 나오자마자 다전의 대표변호사로 돌아와 김성훈 사건을 맡았다. 목포교도소까지 직접 내려가 조사에 배석했다.
김선규는 검사 시절 인천지검 특수부에서 일했다. 그 후임이 김영일 검사다. 김성훈 일당이 범죄자금 은닉을 모의할 때 이용했던 바로 그 검사다. 연결고리가 이어진다.
검찰 스스로 범죄자금 은닉 확인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이 작성한 조서에 결정적 내용이 담겨 있다. 김성훈은 "이지연 변호사를 통해 김희석에게 3천만 원을 줬다"고 인정했다. 그 돈이 자기 돈이냐는 질문에 "네, 제 돈입니다"라고 답했다. 파산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그런 돈이 있어서는 안 된다. 범죄자금을 숨겨뒀다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지연 변호사에게 맡겨둔 1억 5천만 원에 대해서도 "혹시 내가 언제 써야 될지 몰라서 맡겨놨다"고 했다. 은닉 목적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 부분을 묻지 않았다.
수사기록도 안 보여주는 검찰
김희석 씨는 지금 혼자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이 어떤 근거로 경찰 수사를 뒤집었는지 알고 싶어 수사기록 열람을 신청했다. 검찰은 거부했다. 이유는 "국가 안보와 증인 보호의 필요성, 증거 인멸 우려"였다.
김희석 씨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이 사건은 피고인 자수로 시작됐고, 경찰은 피고인을 포함한 관련자 전원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며 "그런데 검찰은 피고인만 기소했다. 수사 자료 열람이 꼭 필요한 사건인데, 거부 이유가 국가 안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수한 제보자에게 증거 인멸 우려라니. 검찰의 치부가 드러날까 봐 막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남는다.
보완수사권의 민낯
이 사건은 검찰 보완수사권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경찰이 열심히 수사해 넘겨도, 검찰이 마음먹으면 결론을 정반대로 바꿀 수 있다. 로비를 지시한 자, 돈을 전달한 자, 변호사까지 다 풀어주고 제보자만 처벌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 사이 김성훈의 범죄자금 은닉에 대한 공소시효는 거의 다 지나버렸다. 피해자들에게 돌아갔어야 할 돈은 사라졌다. 검찰이 사건을 묵히는 동안 범죄자만 이득을 본 셈이다.
지금 검찰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보완수사 요구권과 보완수사권은 다르다. 경찰 수사가 부족할 때 보충을 요청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통째로 뒤집을 권한을 검찰에 주면, 오늘 본 것 같은 일이 반복된다. 친윤 전관들이 후배 검사들을 움직여 원하는 결론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희석 씨는 말했다. "저를 보지 마시고 자료를 봐달라." 그가 모은 증거들은 검찰이 무엇을 덮으려 했는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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