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에서 허위 사실을 주장해 법원을 기망했다는 소송사기 혐의로 고발된 사건에서, 경찰이 피의자 조사도 하지 않고 각하 처분한 것을 검찰이 뒤집어 보완수사를 지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6월 20일 정천수씨와 이제일 변호사에 대한 사기미수 혐의 사건을 서울서초경찰서에 보완수사 요구했다고 형사사법포털을 통해 통지했다.
사건 배경: 1억원 손해배상소송이 발단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 정천수씨가 강진구 기자 등을 상대로 제기한 1억원 손해배상소송에서 시작됐다. 발단은 2023년 3월 열린공감티브이 이사회 중 발생한 충돌 사건이다. 당시 정천수씨는 강진구 기자 등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강진구 기자는 "신체적 접촉이 전혀 없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정천수씨는 민사소송에서 강진구 기자가 "다른 직원들과 폭행을 사전에 공모했다"며 공동 피고로 포함시켜 1억원을 청구했다. 강진구 기자는 이 같은 '공모'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닌데도 마치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소장에 기재해 법원을 속이려 했다며 소송사기로 고소했다.
앞서 서울서초경찰서는 지난 4월 14일 이 사건을 불송치(각하) 처분했다. 당시 경찰은 "소송상의 주장이 다소 과장된 표현에 해당할 뿐 사기의 범의가 없다"며 피의자 조사도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
소장엔 "확인된 바"... 방송에선 "추론일 뿐"
이 사건의 핵심은 피의자들이 민사소장에 기재한 표현의 진실성이다.
정천수씨 측은 폭행 관련 손해배상소송에서 "추후 확인된 바에 따르면, 피고들은 여성인 피고 안선화가 원고에게 도발하여 원고의 폭행 등을 유도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에서 강진구 기자도 공동 피고로 포함됐다.
그런데 정천수 측은 경찰의 각하 처분 직후인 4월 16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이사회 당일 상황을 보아 강진구 등이 사전에 모의해서 자신을 낚으려 한 것으로 추론했고, 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다. 추론일 뿐 증거는 없다"고 발언한 것이다.
소장에서는 마치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기재했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추론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대법원 판례는 명확하다
대법원은 소송사기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허위의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을 기망한다는 고의가 있는 경우, 반드시 허위의 증거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당사자의 주장이 법원을 기망하기에 충분한 것이라면 기망수단이 된다"는 것이다(대법원 2011도7262 판결).
또한 "소송상 주장 내용이 사실과 다름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거나 명백히 허위라는 인식을 하고 있음에도 이를 주장한 경우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핵심은 실제로 법원이 속았는지가 아니라, 피의자가 허위임을 알면서도 법원을 속이려 했는지다.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의 무게
이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문제가 된 민사소장을 변호사가 직접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제일 변호사는 정천수씨의 소송대리인으로 소장을 작성했다.
변호사라면 "확인된 바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이 어떤 법적 의미를 갖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나 의견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확인된 객관적 사실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조사도 없이 각하" 비판 현실화
고소인 강진구 기자는 지난 5월 경찰의 각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강 기자는 "소송사기의 성립 여부는 피의자가 허위임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법원을 오도할 의도로 주장했는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며 "피의자 조사를 통해 소장 작성 과정, 근거자료, 표현 선택의 동기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결국 이 같은 지적을 받아들여 보완수사를 지시했다.
성급한 승리 선언
지난 4월 각하 처분 직후 피의자들의 반응은 자신만만했다.

정천수씨는 당일 페이스북에 "강진구가 저와 소송대리인인 이제일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사기'라는 말도 안 되는 고소를 했는데, 경찰도 이게 말도 안 되는 고소로 보고 조사 한번 없이 오늘 '각하' 처리했다"며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소에 대해선 무고죄 고소로 대응하겠다"고 적었다. 다만 정천수씨가 실제로 무고죄 고소를 진행했다는 소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제일 변호사도 같은 날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달 전에 강진구씨가 민사소송에도 고소했다면서 고소증을 증거로 제출했길래, 오늘 저는 그에 대한 불송치(각하) 결정 통지를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ㅎㅎ"라는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두 달 뒤 검찰의 보완수사 지시로 사건이 다시 수사 테이블에 올랐다. 특히 정천수 측이 스스로 "증거가 없다"고 인정한 발언은 수사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보완수사 지시에 따라 서울서초경찰서는 이제 피의자들에 대한 소환조사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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