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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국내 소각분보다 많은 1779만주 미국서 발행
신주 전량 해외 기관에 배정, 국내 소액주주 118만명은 공모서 배제
2월 국내서 자사주 1530만주 소각, 5개월 만에 미국 상장에 신주 1779만주 발행
신주 전량 해외 예탁기관 배정, 국내 소액주주 118만명은 청약 참여 불가
순현금 100조원 목표 회사가 신주로 희석, 거버넌스포럼 "정당성 부족" 지적
SK하이닉스가 올해 2월 국내에서 자기 주식 1530만주를 소각했다. 다섯 달 뒤인 이번 달, 그보다 많은 1779만주를 미국 나스닥 상장을 위해 새로 발행한다. 국내에서 줄인 주식보다 더 많은 양을 미국에서 찍는 셈이다. 새 주식은 국내 주주가 아니라 해외 기관에 돌아간다.
국내서 소각한 것보다 미국서 더 많이 발행
하이닉스는 2월 9일 자기 주식 1530만주를 소각했다. 목적란에는 주주환원과 기업가치 제고라고 적혔다. 시장가로 약 12조원어치, 지난해 상장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주식을 없애 주주 몫을 키우는 조치였다.
그런데 이번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위해 1779만주를 새로 발행한다. 국내에서 소각한 것보다 249만주 많다. 방향이 정반대다. 국내에서는 주식을 줄여 주주 몫을 키우고, 다섯 달 뒤 미국에서는 그보다 많은 주식을 찍어 자금을 걷는 것이다.

왜 자사주가 아니라 신주였나
회사도 처음엔 갖고 있던 자기 주식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증권신고서를 보면, 2018년 사둔 자사주를 ADR 기초주식으로 쓰는 건 자사주 소각을 원칙으로 한 개정 상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자기 주식을 새로 사들이는 방안도 주주총회 특별결의 등 절차가 복잡해 상장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신주 발행을 택했다.
여기에 빈틈이 있다. 올해 3월 시행된 개정 상법은 회사가 자기 주식을 처분할 때 주주에게 고르게 나누거나 주총 승인을 받도록 했다. 특정한 곳에 몰아주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새 주식을 찍는 신주 발행에는 이 잣대가 없다. 하이닉스는 정관의 제3자 배정 조항을 근거로 신주 전량을 해외 예탁기관 한 곳에 배정한다. 위법이 아니다. 자기 주식에는 촘촘한 규율이 있지만, 새로 찍는 주식에는 그런 규율이 없다.

희석은 기존 주주 몫, 청약은 해외 기관 몫
신주를 찍으면 기존 주주 몫이 얇아진다. 이걸 희석이라고 한다. 증권신고서 기준 주당 이익은 약 2.5% 줄고, 기존 주주 지분도 그만큼 내려간다. 희석은 국내외 기존 주주 전체가 함께 떠안는다. 그런데 새 주식에 먼저 접근하는 쪽은 해외 기관이다. 증권신고서에는 "국내 거주자는 본건 ADR의 공모절차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하이닉스 소액주주는 118만6천명으로 1년 새 40만명 넘게 늘었다. 이들이 쥔 몫이 전체 지분의 63%를 넘는다. 이들은 희석은 떠안되 청약에는 낄 수 없다.


이 숫자가 멀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볼 수 있다. 회사가 낸 서류로 계산하면 지난해 기준 주당 이익이 6만2천원대에서 6만원대로 내려간다. 하이닉스 100주를 든 주주라면 원래 자기 몫이던 이익 일부가 새로 들어온 외국 기관 쪽으로 얇게 나뉘는 셈이다. 한 사람만 보면 작아도 118만명 몫을 합치면 작지 않다.
잉여현금 풍부한데 왜 신주인가
하이닉스는 돈이 급한 회사가 아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순현금 100조원 이상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호황으로 현금이 넘친다. 그런데도 주식을 새로 찍어 자금을 걷는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3월 논평에서 이 방식에 반대했다. 잉여현금흐름이 풍부한 상황에서 기존 주주 지분을 희석하는 신주 발행은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포럼은 보유 현금과 자사주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발행주식의 10~15%를 사들여 일부는 소각하고 나머지를 상장하라고 제안했다.
회사 설명은 다르다.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미국에서 제값을 받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다. 조달금은 전액 용인 클러스터와 청주 패키징 공장, EUV 노광장비에 넣는다고 했다. 발행 규모가 2.5%로 묶인 것은 최대주주 SK스퀘어가 지분 20%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KB증권은 희석은 제한적이고 재평가로 얻는 게 더 크다고 봤다.
재평가는 뉴욕에서, 비용은 여기서 먼저
이번 상장은 코리아 프리미엄이 국정 목표로 걸린 시점에 이뤄진다. 정부는 상법을 고치고 자사주 소각을 유도해 국내 증시 저평가를 풀려 했다. 올해 상장사 자사주 소각이 시장가로 20조원을 넘었고 그 1위가 하이닉스였다. 그런 대표 기업이 제값은 뉴욕에서 받겠다고 나섰다. 회사는 미국에서 재평가받으면 국내 본주도 함께 오를 수 있다고 본다. 그 기대가 맞더라도 순서는 분명하다. 새 주식으로 인한 희석은 지금 치러지고, 재평가는 나중에 온다.
확정 공모가와 원주 대비 프리미엄은 미국 현지시간 10일 상장에서 정해진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곽 사장 등 경영진은 뉴욕 상장식에 참석한다. 소각과 발행 사이 다섯 달, 그 순서를 지켜본 것은 지난 2월 소각에 박수를 보냈던 118만 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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