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시가 소요산 관광지 확대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시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성병관리소 부지를 철거하려는 움직임이 논란이 되고 있다. 동두천시는 철거 찬성 여론 조작과 일방적인 철거 시도, 관제 시위 동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성병관리소 부지 철거를 강행하려 했다. 시민단체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성병관리소를 보존해 역사·문화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대하고 있다.
동두천시의 소요산 확대 개발 계획과 성병관리소
지난해 8월 14일 동두천시는 소요산 관광지 확대 개발 사업 준공식을 개최했다. 경기도의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춘 소요산을 활용해 관광 활성화와 지역 경제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개발 사업 부지 내에 한국전쟁 이후 미군 주둔지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했던 성병관리소가 위치해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소요산 확대 개발 사업은 44,000제곱미터 규모의 부지에 진행되며, 그 파급 영향력은 50만 제곱미터에 달한다고 용역 보고서는 명시하고 있다. 이 넓은 부지 내 성병관리소 부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현재 동두천 시민 사회의 큰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편향된 설문조사로 철거 여론 조작
동두천시는 성병관리소 부지 처리 방안을 결정하기 위해 두 차례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차 설문조사는 2023년 5월에 소요산역 일원의 지역 주민 10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89.2%가 철거를 지지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효 표본수가 너무 적어 의미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동두천시는 3개월 뒤 2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번에는 20세 이상 동두천 시민 500명을 거주지별, 인구 비례 할당을 두어 조사했고, 조사 기관도 전문 설문조사 업체인 '(주) 사람과 사회'에 맡겼다. 결과는 철거 60.4%, 존치 39.6%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설문조사 과정에서 동두천시의 의도적인 설문 조작 정황이 드러났다.
의도적으로 선택된 흉물스러운 사진
설문조사 업체가 작성한 초안에는 성병관리소의 일반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이 포함됐다. 그러나 동두천시는 이를 훨씬 더 낡고 흉물스럽게 보이는 사진으로 바꿔치기했다. 초안의 사진은 평범한 2층 건물 모습이었으나, 최종 설문지에 사용된 사진은 마치 '귀신의 집' 같이 검은 나뭇가지와 덩굴이 얽혀 있어 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철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편향된 설문 문항 구성
설문지 문항 순서도 의도적으로 배치됐다. 초안에서는 성병관리소 관련 질문이 첫 번째였으나, 최종 설문지에서는 소요산 확대 개발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이 먼저 제시됐다. 또한 성병관리소 부지를 "소요산 확대 개발 사업의 핵심적인 공간"이라고 표현했으나, 실제 개발 계획에서는 이 부지는 10년 이상의 장기 계획에 불과했다.
더 문제가 됐던 것은 철거와 존치 의견을 묻는 문항이었다. 철거 후 개발에 대해서는 "동두천 이미지가 제고돼 60년간 기지촌, 양색시, 미군 주둔지역의 어두운 이미지를 가족, 자연, 즐거운 상상, 추억 등의 밝은 이미지로 전환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반면 존치에 대해서는 "미군 위안부 통제 시설로 역사적 의미가 있어 존치가 필요하다"는 정도로 간략하게 기술했다.
시민단체가 요청한 내용, 특히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된 "기지촌 성병관리소를 운영한 것이 정부 주도의 국가 폭력이었다"는 내용이나 보존 시 "역사문화공원, 문화예술 공간, 박물관 클러스터를 조성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유인한다"는 내용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비판
이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메타보이스의 전문가는 "두 가지 방안에 대해 공정하게 묻는다면 철거 후 개발과 존치 후 개발로 구성하고, 존치 후 개발에서도 소요산, 별의숲 테마파크, 유아숲 체험, 어린이 박물관 연계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공통사항으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정치여론연구소도 "동두천시가 여론조사 기관에 맡기면서 시가 알고 싶은 것을 설명했을 것이고, 어떤 방향이 나오게끔 설계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잘 모르겠음" 또는 "의견 없음" 같은 선택지가 없는 것은 "심각한 의견의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관제 데모 동원으로 철거 찬성 여론 조성
동두천시는 설문조사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철거를 지지하는 시민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는 움직임도 보였다. 박형덕 시장이 주최한 동장 차담회 다음 날인 2024년 10월 22일, 각 행정복지센터는 "성병관리소 철거를 저지하는 단체 시위에 대항하기 위해 소요산 방문 예정이니 동별로 명단 제출이 긴급하게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공문에서는 "성병관리소 철거를 지지하는 집회를 할 예정이니 각 동별로 50~80명 정도의 인원을 동원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명시했다. 대한적십자 동두천지구협의회 단체톡방, 상패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 단체톡방 등에도 유사한 메시지가 올라왔다. 공무원들이 직접 나서 철거 찬성 집회에 참여할 인원을 모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두천시는 공식 체육행사나 보건소 산하기관 등에 '철거 동의 서명부'를 비치하기도 했다. 문화체육과장은 이에 대해 "우리 시 입장에서는 정책을 홍보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정당화했지만, 이는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관권개입처럼 공권력을 남용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기습 철거 시도
동두천시는 설문조사와 관제 데모에도 불구하고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이 계속되자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새벽, 굴삭기를 동원해 기습 철거를 시도했다. 하지만 성병관리소를 지키기 위해 천막을 치고 있던 시민단체가 이를 막아서면서 시도는 좌절됐다. 이 과정에서 공원 보도블록과 나무가 훼손됐고, 철거 공사에 필요한 펜스나 분진 가림막도 없이 진행돼 안전수칙도 무시됐다.
역사적 가치와 존치의 필요성
그렇다면 왜 많은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성병관리소의 존치를 주장하는 것일까?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최근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이곳만은 지키자'로 선정됐다. 이 선정에 참여한 건국대 안창모 교수는 "성병관리소는 당대의 사회와 우리 현대사를 진정성 있게 담고 있다"며 "지금 딱 하나 남았기 때문에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안김정애 대표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국가는 포주였다"며 "국가 이익이라는,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미군을 주둔시키고, 미군들을 위해 위안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인신매매가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졌고, 성병관리소에서 보건소 공무원들이 여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며 "이는 국가 범죄의 현장"이라고 지적했다.
2022년 9월 대법원은 "기지촌 성병관리소를 운영한 것이 정부 주도의 국가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성병관리소는 단순한 낡은 건물이 아니라 국가 범죄의 증거물이자, 다시는 이러한 인권 침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기 위한 중요한 장소라는 것이다.
철거 찬성 측의 입장
반면, 철거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성병관리소가 동두천의 이미지를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철거추진위원회 위원장은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하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했던 곳"이라며 "그런 역사보다는 동두천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두천은 인구가 10만에서 8만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개발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철거 찬성 측은 아픈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가능성: 역사 문화 공간으로서의 활용
그러나 존치를 주장하는 측은 단순히 성병관리소를 그대로 두자는 것이 아니라, 이를 역사문화공원, 문화예술 공간, 박물관 클러스터로 조성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면서도 미래를 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자랑스러운 역사만이 아니라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성병관리소는 한국의 분단사와 연결된 국가 폭력의 현장으로, 이를 보존하는 것이 미래 세대에게 인권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 의식의 승리
이렇게 편향된 설문조사, 관제 데모 동원, 기습 철거 시도 등 동두천시의 다양한 방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9.6%의 시민이 성병관리소 존치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동두천 시민들의 높은 역사 의식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현재 성병관리소 부지 앞에는 시민단체가 천막을 치고 150일 이상 교대로 지키고 있다. 이들은 동두천시의 또 다른 철거 시도를 막기 위해 밤낮으로 경계를 서고 있다.
인간다움의 회복을 위한 선택
동두천 성병관리소 문제는 단순한 개발과 보존의 대립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역사와 인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개발을 통해 관광객이 늘어나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다움이 사라진다면 그것이 진정한 발전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 아크로비스타가 들어서고, 국회에 군인을 투입한 역사 등 우리는 수많은 아픈 역사를 망각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를 잊는다면 비인간적인 역사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동두천 시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키고 회복하고자 하는 모든 시민이 함께 고민하고 지켜가야 할 역사 현장이다. 우리가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배울 때, 비로소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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