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사
김활란 '필승각' 목격한 정규섭 제독 구술 영상 최초 공개…이대 졸업반 10여 명 동원 증언
김어준, 한준호 불러놓고 검찰개혁 '정부안' 프레임 고수…장인수 사태엔 "고민 중" 한발 물러서
19일 방송에서 한국전쟁 당시 김활란이 운영한 전시 접대 시설 '필승각(Victory House)'을 직접 목격한 정규섭 제독의 구술 인터뷰 영상을 최초로 공개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현대구술관에 보관된 이 영상은 그동안 어떤 방송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자료다. 방송 전반부인 1부에서는 김어준 씨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한준호 의원과의 검찰개혁 공방도 팩트체크했다.
김어준, '당정협의안'을 끝까지 '정부안'으로
1부에서는 한준호 의원의 뉴스공장 출연 내용을 다뤘다. 진행자 김어준 씨는 한준호 의원에게 "검찰개혁안이 숙의의 결과라고 했는데, 대통령 뜻을 잘못 읽은 거 아니냐"고 물었다. 한준호 의원은 정부안이 일방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당과 여섯 차례 의총을 거쳐 숙의한 결과물이라고 반박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숙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질타한 것은 정부안 발표 이전에 법사위 이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과정 관리 실패를 꼬집은 것이지, 발표 이후의 논의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었다.
쟁점은 명칭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여러 차례 "당정 협의안"이라고 못 박았는데도, 김어준 씨는 이를 계속 '정부안'이라 불렀다. 당정이 함께 만든 안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낸 안처럼 포장하면, 법사위 의원들과 시민단체가 이를 바로잡은 공은 고스란히 정청래 대표에게 돌아간다.
한준호 의원은 "입법 과정에서 대통령 이름을 자꾸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받아쳤다. 정청래 대표가 전날 뉴스공장에서 중수청 45조 삭제를 사실상 대통령 지시로 읽히게 발언한 데 대한 지적이었다. 장인수 사태에 대해서는 김어준 씨가 "오픈 플랫폼으로서 자체 윤리를 고민하고 있다"고 하면서 종전의 강경 태도에서 한발 물러섰지만, 직접 사과는 없었다.
정규섭 제독이 기억하는 '필승각'
2부 역사탐사에서는 김활란의 필승각에 대한 정규섭 제독의 구술 영상이 공개됐다. 정규섭 제독은 해군사관학교 1기 졸업생으로, 한국전쟁 당시 국방부 제3국 소속 소령급 장교였다.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받아 이화여대 명예총장 김활란을 1·4 후퇴 때 대구까지 피신시킨 인물이다.

정규섭 제독은 구술에서 "김활란 박사를 모시고 1·4 후퇴 때 대구까지 내려왔다"며 "내려와서 김활란 박사가 필승각이라는 걸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대구의 서씨 성을 가진 부잣집 한옥을 빌려 운영했다고 했다. 필승각의 목적에 대해서는 "여자들이 전쟁이 났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냐, 도움을 줘야겠다는 정신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유럽의 종군 기자들이 거기에 초미의 관심을 갖고 많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필승각에는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반 학생 10여 명이 내려와 있었다. 유엔군 장성, 외국 특파원, 외교관들에게 한국 브로셔를 만들어 주고, 한국차를 대접하고, 한국에 대해 설명하는 역할을 했다. 정규섭 제독은 "좋지 않은 면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종군 기자들의 한국 이해에 도움을 줬다고 평가하면서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한두 쌍이 프랑스 기자들과 결혼했다"고 덧붙였다. 전쟁 중 김활란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증인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미국 대학 논문과 CIC 보고서도 같은 그림
정규섭 제독의 구술 외에 미국 프랜시스 메리언 대학 역사학과 박해성 조교수가 2020년 발표한 논문도 함께 제시됐다. 논문에 따르면, 당시 사회부 장관 허정이 부산에서 낙랑클럽이 사용할 주택을 마련해 줬고, 국무총리 장면이 운영 비용을 부담했다. 허정은 김활란이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주선했으며, 김활란은 이곳에서 유엔군 장성들과 외국 특파원, 외교관들을 접대하고 '빅토리 하우스', 즉 필승각이라 명명했다고 기술돼 있다.
미국 CIC(방첩대) 첩보 보고서에도 낙랑클럽의 실체가 담겨 있었다. 보고서는 낙랑클럽을 "외국 귀빈, 한국 정부 고위 관리, 미군 장성, 주한 외교사절을 접대하기 위한 단체"로 기록했다. 회원은 "한국의 모 유명 여대를 졸업한 교육받은 여성들로 국한"됐다. 부산 피난 시절에도 미군 상대 접대를 계속했으며, 회원들이 "군 막사까지 들어왔다"는 미군 관리의 전언도 포함돼 있다.
24세 독립운동가에서 '황국 신민'으로
배기성 강사는 김활란이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다고 짚었다. 1926년 순종 황제 인산일(장례일)에 이화여전 학생들을 상복 입혀 데리고 가 통곡하다 종로경찰서에 투옥됐고, 6·10 만세운동을 사실상 주도했다. 1927년에는 신간회 창립대회에서 여성 대표 간사로 선출됐다. 찬송가 345장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일제 치하를 "캄캄한 밤"으로 묘사해 최초의 금지곡이 됐다.
변절은 193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1936년 조선총독부 사회교육과 위원회에 참석하고, 1938년 매일신보 신년 특집에 "지나사변(중일전쟁)은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본이 분기한 것"이라며 "조선인의 징병 의무도 실현되어야 할 것"이라고 썼다. 같은 해 친일 단체 경성기독교연합회 평의원으로 취임했고, 1939년 이화여전 7대 교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친일은 한층 노골적이었다. 1944년 이화여전에 여자청년연성소를 발족시키며 "황국 반도의 미교육 여성의 지도 양성 기관"이라 칭했다. 국민총동원총진회 이사, 조선언론보국회 이사, 조선국민의용대 참여위원까지 맡았다. 매일신보 사설만 해도 '지원병 모자에 송하는 서', '남자에 지지 않게 황국 여성으로서 사명을 완수하라' 등이 줄을 이었다. 배기성 강사는 김활란이 친일로 돌아선 배경 중 하나로, 언니 김신득의 남편이자 일제 밀정이었던 김달하가 상하이에서 의열단 총무 이종희에게 사살된 사건을 꼽았다.
76년 전 유권자보다 못할 뻔했다
방송에서는 2024년 총선 당시 김준혁 후보가 김활란의 성상납 의혹을 제기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던 일도 언급됐다. 배기성 강사는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독립운동가 김도연이 김활란을 '친일한 사람'이라며 꺾었다"며 "76년 전 서대문구 유권자들보다 우리가 더 수준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올 뻔했다"고 말했다. 김준혁 후보는 6,000표 차이로 당선됐다. 당시 김활란 측 유족을 자처하며 김준혁 후보를 고소했던 이들의 정체도 밝혀지지 않아 사건은 유야무야 종결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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