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약속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에서 성희롱 사실이 인정된 고위 공무원에 대해 어떠한 직위해제나 징계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요직에 배치한 사실이 확인됐다.
"성희롱·성폭력, 절대 용납 않겠다" 공언한 오세훈 시장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1년 4월 보궐선거 당선 후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전임시장 재직 시절 있었던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해 서울특별시를 대표하는 현직 서울시장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즉시 도입할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당시 오 시장은 "성희롱 피해자 보호를 위해 2차 피해가 가해질 경우에도 한 치의 관용도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는 서울시 공무원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저지를 경우 한 번에 퇴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성희롱 가해 간부 법원서 패소에도 서울시는 '직위해제 불가' 주장
그러나 이러한 약속은 실제 성희롱 사건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2021년 서울 소재 모 구청의 부구청장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8급 여성 공무원에게 반복적으로 성적 언동을 일삼았다. 피해자는 20대 초반의 8급 공무원이었고, 가해자는 50대의 3급 부구청장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상당한 지위 차이가 있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네일아트를 언급하며 여러 차례 손과 손톱을 만지고, 식사자리에서 피해자와 밀착하여 다리가 닿도록 하고 팔을 치는 등의 신체접촉을 했다. 또한 성적인 신체가 강조되는 영상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여러 차례 보여주었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여자도 많이 만나보고 섹스도 많이 해볼 거야", "섹스 많이 못해봐서 후회돼" 등의 발언을 했다.
이에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2022년 11월 인권위는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고 가해자에게 손해배상금 1천만 원 지급과 특별 인권교육 수강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가해자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일부 인권위 결정을 취소했으나, 2025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성희롱 사실이 명확하다"고 판결하며 인권위 결정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여전히 '현행법상 직위해제가 불가하다'는 이유로 가해자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 매뉴얼에도 명시"...지켜지지 않는 규정
서울시 자체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에는 "신고 접수 시 사실관계가 명확한 경우 행위자에 즉시 직무배제 또는 직위해제"를 하도록 명시돼 있다. 또한 "중대한 성범죄 가해자일 경우 원스트라이크 아웃(해임·파면)이 적용"되고 "업무상 위력이 있을 경우 중징계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3급 이상 관리자일 경우 중징계 및 사실상 퇴직 시까지 승진 배제"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모든 규정을 무시한 채 가해자를 계속 요직에 배치하고 있다.
직위해제 대신 요직 발령... "특수한 상황"이라는 서울시
서울시는 2024년 7월 1일 인사발령을 통해 해당 가해자를 서울시 교통운영관으로 발령했으며, 2025년 1월에는 상수도사업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시 인사과 담당자는 "지방공무원법상 직위해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행정안전부와 내외부 변호사들의 자문을 받아 직위해제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감사위원회에서 중징계 의결 요구가 있으면 그때 직위해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지방공무원법 제65조의 3에는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크게 손상하여 현저히 불성실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직위해제가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피해자 "서울시장 약속 믿고 싸웠는데" 좌절
피해자는 사건 이후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힘겹게 투쟁을 이어왔다.
피해자는 "오세훈 시장의 원스트라이크 아웃 방침이 굉장히 크게 슬로건으로 내걸렸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저는 신뢰를 많이 했다"면서도 "결국에는 뭐 저 같은 사람을 만나주나요"라며 좌절감을 드러냈다.
특히 가해자의 복직을 막기 위해 강철원 전 정무부시장을 찾아가 "무릎 꿇고 빌었다"는 피해자의 증언은 충격을 주고 있다. 피해자는 어머니와 함께 찾아가 "이 사건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끝날 때까지만 지켜봐 달라"며 "직위해제 기간을 6개월만 유예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른 공무원들에게 본보기 보여야"
피해자는 "강 부구청장에게 직접 얘기할 기회는 없을지라도 본인이 한 짓에 대해서 본인이 책임을 지셨으면 좋겠다"며 "서울시에서도 이 사람을 그냥 내보내서는 안 된다. 당연히 처벌을 해야 되고 그래서 다른 공무원들한테 그렇게 딱 본보기를 보여야 이 공직에서 그런 것들이 좀 사라질 수 있다"고 호소했다.
피해자는 "스스로 약속하신 것, 그리고 스스로 세우신 그 지침을 딱 지켜 달라"고 강조했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는 "내부 방침일 뿐"...서울시의 변명
서울시는 최근 해명자료를 통해 "인권위 행정소송에서의 성희롱 인정을 사유로 한 직위해제는 현행법상 불가하며, 중징계 의결 요구가 오면 직위해제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인사과 담당 주무관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는 내부 방침이고, 법령은 그 방침보다 상위법"이라며 "내부 방침으로 법령을 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세훈 시장은 "워낙 특수한 경우다 보니까 개별적으로 보고를 받았고, 적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시민사회에서는 "약자와의 동행이 아닌 강자와의 동행"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약속했던 '원스트라이크 아웃제'가 단순한 정치적 쇼였던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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