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서울 중랑을 당협에서 기초의원 후보자들에게 공천헌금을 요구한 정황이 담긴 녹취파일이 공개됐다. 녹취에는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민병주 현 서울시의원이 "나도 5천만 원 줬다"며 공천 희망자들에게 돈을 내라고 압박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단식농성에 돌입하기 3일 전 이 비리 의혹을 보고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공천비리 의혹을 집중 공격하며 쌍특검을 촉구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단식농성까지 벌였고, 27일부터는 릴레이 천막농성에 돌입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공천비리 의혹은 덮고 있었다.
"나는 다섯 개, 최윤찬은 세 개, 전경구는 두 개 줬다"
뉴탐사가 입수한 녹취파일은 2022년 5월 서울 상계동의 한 음식점에서 녹음됐다. 당시 국민의힘 중랑을 당협 사무국장이었던 민병주 씨가 구의원 공천을 희망하는 당직자들과 나눈 대화다.
민병주 씨는 녹취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모) 소장한테 그러더라고. 내가 딱 자, 그럼 내가 2천만 원 드리면 되는 거죠? 했더니 야 너 생각해 봐라. 이거 5년 동안 운영하고 어쩌고 하려면 500씩 들어가는데 한 2, 3억 있어야 돼라고 하면서 자 우선 2천만 원 내놓고 공천 받으면 1천만 원, 당선되면 1천만 원 내놓으라는 거야." 합산하면 총 4천만 원이다.

민병주 씨는 자신이 당시 윤상일 당협위원장에게 직접 확인한 경험도 털어놓았다. "윤상일 의원한테 '2천만 원 더 드리면 되는 거죠'라고 했더니 더블을 요구하더라. 따블이 돼 버린 거야. 하루 종일 멍했어." 처음 전해 들은 2천만 원에서 두 배인 4천만 원으로 요구액이 뛰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녹취에서 민병주 씨는 공천이 확정된 다른 후보들의 헌금 액수까지 거론했다. "지금 안 하면 진짜 타이밍이 없을 수도 있어. 최윤찬이도 세 장(3천만 원)으로 알고 있어. 전경구도 두 개(2천만 원). 나는 다섯 개(5천만 원)." 최윤찬 씨와 전경구 씨는 실제로 그해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중랑구의원에 당선된 인물들이다.
당협위원장 측근 "민병주가 내 이름 팔아 공천헌금 받은 것 같다"
녹취에 이름이 등장하는 전모 씨는 당시 윤상일 당협위원장의 후배로, 2022년 대선 때 중랑을 연락사무소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전 씨의 딸 전유정 씨는 그해 지방선거에서 중랑구의원에 당선됐고, 전 씨의 동향 선배 딸인 이은경 씨도 같은 선거에서 구의원이 됐다.
취재진이 전 씨에게 전화로 확인한 결과, 그는 녹취에 나오는 민병주 씨의 목소리가 맞다고 인정했다. 전 씨는 "민병주가 사무국장 타이틀만 가지고 있었지, 실제 일은 내가 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병주가 내 이름을 팔아서 공천헌금을 받은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윤상일 사무실에 오래 근무한 적도 없고, 그런 말까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전 씨는 자신의 딸이 공천받은 경위도 설명했다. "윤상일 위원장이 젊은 청년을 하나 구해달라 그래서 집에 가서 얘기했더니 딸이 해보겠다 그러더라. 해라 해봐라 그러고 하니까 다 물어본다고 하니까 알아서 하는 거지." 경선 없이 당협위원장의 재량으로 공천이 이뤄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중랑구의회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당선된 중랑구의원 4명 전원이 경선 없이 전략공천됐다. 최윤찬 씨와 전경구 씨는 녹취에서 공천헌금을 냈다고 언급된 인물들이고, 전유정 씨와 이은경 씨는 전 씨와 특수관계에 있는 인물들이다.

빈 종이컵 들었다 놨다…민병주 의원의 당혹
취재진은 서울시의회와 중랑구의회, 중랑을 당협 사무실 등을 수소문한 끝에 민병주 의원을 직접 만났다. 민 의원은 처음에 "왜 찾아다니느냐"며 짜증을 냈고, 녹취 내용을 언급하자 태도가 급변했다.
"그거 다 끝난 거니까 그 얘기도 하지 마세요. 5천만 원 줬다고? 그런 소리 그런 적도 없고 그런 헛소리 하지 마세요." 민 의원은 강하게 부인했다. 취재진이 녹취파일을 직접 들려주자 민 의원은 빈 종이컵을 반복해서 들었다 놨다 하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민 의원은 "벌금 받고 다 끝난 사건인데 왜 이제 또 떠드느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벌금형은 2020년 10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한 것으로, 2022년 지방선거 공천헌금 비리와는 전혀 다른 사안이다. 민 의원은 2008년에도 서울시의회 의장 선거와 관련한 금품 살포 사건으로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취재진이 "녹취가 본인 음성이 맞지 않느냐"고 재차 확인하자 민 의원은 "그런 얘기 한 적 없다"고 부인하다가 "사람이 얘기하다 보면 별 얘기를 다 하는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민 의원은 엉겁결에 자신이 돈을 줄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털어놓았다. "나는 원래 중화동에서 한번 했는데, 윤상일 위원장이 나보고 중화동으로 가라는 거야. 거기 가면 떨어질 확률이 많겠더라고. 나는 신내동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를 받기 위해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장동혁 대표, 단식 전 비리 제보 받고도 '묵살'
취재 결과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 비리 의혹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제보자에 따르면 장동혁 대표가 단식농성에 돌입하기 3일 전, 녹취파일이 담긴 USB와 진정서가 국민의힘 당사 당무감사실과 당대표실에 접수됐다.
취재진이 국민의힘 당사 당무감사실을 찾아가 확인한 결과, 담당 직원은 진정서 접수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진행 상황은 말씀드릴 수 없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취재진이 "장 대표에게 보고됐느냐"고 묻자 "그거는 저희가 모르죠. 저희는 접수받으면 보고만 올리는 거니까"라고만 답했다.
취재진은 국회 내 당대표실로 이동해 담당 간사를 만났다. 간사는 "대표님께 보고했다"고 직접 확인해줬다. 다만 "보고 후 별다른 지시는 없었고, 그 뒤에 계속 일정이 있으셔서"라며 후속 조치가 없었음을 시인했다.
장동혁 대표는 민주당의 공천비리 의혹을 집중 공격하며 특검 수용을 촉구하는 단식농성까지 벌였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이끄는 당 내부에서 발생한 공천헌금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단식 전에 보고받았다는 점에서 의도적 '묵인'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윤상일 전 의원은 침묵, 구의원들도 회피
녹취에서 공천헌금을 요구한 당사자로 지목된 윤상일 전 의원은 현재 한국전력기술 상임감사로 재직 중이다. 윤 전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친박연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지냈고,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중랑을 당협위원장으로서 공천권을 행사했다. 2023년 1월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120억 원을 신고해 신규 공직자 중 최다 재산가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기도 하다.
취재진은 한국전력기술 감사실을 통해 여러 차례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감사실 직원은 "전달드렸고, 본인께서 직접 조치하시겠다고 하셨다"고 답변했지만, 방송 시점까지 윤 전 의원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녹취에서 공천헌금을 냈다고 언급된 최윤찬 구의원과 전경구 구의원에게도 확인을 시도했다. 전경구 구의원은 통화에서 "그건 근거 없는 얘기"라며 공천헌금을 낸 적 없다고 부인했다. 최윤찬 구의원은 취재진의 전화번호를 차단했고, 다른 번호로 연락하자 한마디 대답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취재 당일 민병주 의원 사무실에서 취재진을 가로막고 촬영 장비를 빼앗으려 했던 인물이 바로 최윤찬 구의원이었다.
정청래 합당 제안 당일, 여론조사꽃 설문지 작성 '공교로운 타이밍'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조국혁신당 합당 제안과 관련한 의혹도 제기됐다. 정 대표가 합당을 공식 제안한 날짜는 1월 22일이다. 그런데 여론조사 전문기관 여론조사꽃이 선관위에 등록한 설문지 파일의 작성 날짜도 20260126으로 기록돼 있다. 1월 22일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설문지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조국혁신당에 지방선거 전 합당을 제안했습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담겨 있다. 여론조사는 23일과 24일 양일간 실시됐고, 24일 선관위에 등록됐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합당 제안 발표 후 설문지를 작성했거나, 합당 제안을 미리 알고 설문지를 사전에 준비했거나. 어느 쪽이든 정 대표의 합당 제안과 여론조사꽃의 설문 조사가 같은 날 이뤄졌다는 점은 공교롭다.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김어준 씨는 뉴스공장에서 이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민주당 지지자들은 70%, 조국혁신당 지지자들은 거의 80%가 합당에 찬성한다"고 보도했다. 합당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충분한 찬반 토론이 이뤄지기도 전에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워 합당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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