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탐사가 임은정 검사 대 TV조선·조선일보 명예훼손 소송 판결문을 단독 입수했다. 판결문 분석 결과, TV조선이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을 거부했음에도 승소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모든 증거를 제출하고도 8천만원 배상 판결을 받은 뉴탐사의 한동훈 사건과 정반대다.
법원 명령 거부해도 승소한 TV조선
임은정 사건 판결문의 핵심 대목이다.
"원고의 'TV조선 취재팀이 2021년 3월 22일 제보자 Q을 취재한 녹음 또는 녹화파일'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에 관하여 피고들이 취재원 보호를 이유로 위 문서제출명령에 불응하였으나, 문서제출명령을 불응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원고의 주장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임은정 검사가 TV조선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2심 판결문 p.3 (2025.4.17)
민사소송법 제349조는 문서제출명령 거부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법원은 TV조선의 거부를 수용했다. 이미 방송에 나간 인터뷰인데도 법원에는 제출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반면 뉴탐사는 첼리스트의 녹음파일부터 술자리 참석자와의 통화 녹음까지 모두 제출했다. 결과는? 법원은 CCTV 미확보, 추가 목격자 미확보, 블랙박스 증거 미확보 등을 지적하며 8천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전과자 증언이 녹음파일을 이긴 날
판결문이 밝힌 TV조선 측 증인 Q의 신상이다.
"원고가 그런 말을 Q에게 했는지에 관하여 Q의 진술 외에 달리 뒷받침하는 증거가있는 것은 아니다. 원고는 Q이 모해위증을 했다는 입장이었는바, Q의 원고에 대한 태도는 적대적으로 보인다. 원고가 그와 같은 말을 했다는 대검찰청 복도는 소속 공무원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장소이다. Q은 사기 등 수회의 전과가 있고 사실과 다른 말을 한 전력도 여러 번 있어 보인다."임은정 검사가 TV조선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 판결문 p.4 (2024.4.17)
전과자의 일방적 주장이 TV조선 승소의 유일한 근거였다. 사건 장소인 대검찰청 복도는 "소속 공무원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장소"였지만 다른 증인은 없었다.
한동훈 사건에서 뉴탐사는 첼리스트가 "윤석열, 한동훈 왔다"고 말한 녹음파일을 제출했다. 그런데 패소했다.
정하정 부장판사는 "인증(증언)이라는 게 항상 불완전한 거"라고 말했다. 맞다. 그렇다면 전과자의 증언은 더욱 불완전한 것 아닌가.
수사권 없는 검사의 '구속 협박'도 가능하다는 기묘한 논리
판결문에서 법원은 놀라운 논리를 펼쳤다.
"원고는 당시 수사권이 없어 Q을 구속시킬 수 없었고 그 사실이 널리 알려진 터라 구속을 협박수단으로 사용할 리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원고가 수사권이 없어 Q을 구속시킬 수 없었던 것은 맞지만, 뉴스 및 기사에 보도된 Q의 주장을 살펴보아도 원고가 Q에게 Q이 구속되어 수사를 받는 경우에 관하여 언급했다거나 자신에게 수사권이 있었으면 구속시켜놓고 수사를 했을 것이라는 취지일 뿐 원고가 Q에게 자신이 Q을 구속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는 취지는 아니어서, 원고가 보도된 것과 같은 말을 했을 리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임은정 검사가 TV조선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 판결문 p.5 (2024.4.17)
임은정 검사는 당시 수사권이 없었다. 법원도 이를 인정했다. 그런데 법원은 수사권도 없는 검사가 '다른 기관에 의한 구속 가능성'을 언급했거나, '만약 수사권이 있었다면'이라는 가정법으로 말했을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리고 이것도 '구속 협박'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처럼 임은정 사건에서 법원은 TV조선이 보도한 '구속 협박'의 의미를 매우 넓게 해석했다. 직접적인 구속 권한이 없어도, 간접적인 언급만으로도 협박이 성립할 수 있다는 유연한 해석을 적용한 것이다.
반면 한동훈 사건에서 법원은 뉴탐사가 보도한 청담동 술자리에 대해 엄격한 입증을 요구했다. 첼리스트가 "윤석열, 한동훈 왔다"고 말한 녹음파일이 있었지만, 법원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 술자리의 정확한 시간, 장소, 참석자, 대화 내용 등 모든 세부사항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한쪽에서는 가능성과 추정을 인정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완벽한 입증을 요구하는 이중적 태도다.
더 주목할 점은 임은정 검사가 Q를 증인으로 채택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법원이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TV조선의 유일한 증인인 Q를 법정에 세워 진실을 확인할 기회를 법원 스스로 차단한 것이다. 증거 파일 제출도 거부당하고, 증인 신문도 거부당한 임은정 검사. 그런데도 법원은 TV조선의 손을 들어줬다.
법무부장관 비판 8천만원, 일선 검사 비판 무죄
두 사건의 원고를 비교해보자. 임은정은 대검찰청의 한 검사였다. 한동훈은 검찰 조직 전체를 지휘하는 법무부장관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수십 년간 일관된 원칙을 유지해왔다. "공직자의 지위가 높을수록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더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 권력이 클수록 견제가 필요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은 이 원칙을 뒤집었다. 법무부장관에 대한 의혹 제기는 첼리스트의 녹음파일과 참석자의 통화 녹음이 있어도 8천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일선 검사에 대한 의혹 제기는 전과자의 일방적 증언만 있어도 무죄였다.
임은정 검사는 TV조선 보도 직후 즉각 부인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력히 항의했다고 판결문은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TV조선이 이에 대해 추가 취재를 했다거나, 반박 증거를 찾았다는 내용은 판결문 어디에도 없다. 법원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반면 한동훈 사건에서 첼리스트가 경찰에서 진술을 번복하자, 법원은 이를 뉴탐사의 결정적 과실로 봤다. "2022년 11월 24일 번복 후에도 2023년 1월까지 보도를 계속했다"며 질타했다. 피해자의 즉각 부인은 무시해도 되지만, 증인의 번복은 치명적이라는 이중잣대다.
사건번호가 결정한 운명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사건번호에서 시작됐다. 임은정 사건은 '손해배상(언)'으로 분류됐다. 언론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이라는 의미다. 한동훈 사건은 '손해배상(기)'로 분류됐다. 일반적인 명예훼손 사건으로 취급됐다.
둘다 언론사가 공인의 비위 의혹을 보도한 사건이다. 그런데 왜 하나는 언론 사건이고, 하나는 일반 사건인가. 이 분류의 차이가 모든 것을 갈랐다.
언론 사건으로 분류되면 언론의 자유와 공익성이 우선 고려된다. 취재원 보호가 인정되고, 보도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된다. 일반 사건으로 분류되면 엄격한 입증책임이 적용된다. 모든 주장을 완벽하게 증명해야 한다.
TV조선과 조선일보는 언론의 자유라는 보호막 안에 있었다. 뉴탐사는 그 보호막 밖에 있었다. 사건번호 하나로 결정된 차별이었다.
법원이 만든 위험한 전례
임은정 판결문과 한동훈 판결문을 비교하면 한 가지 패턴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TV조선이 법원 명령을 거부하면 '취재원 보호'로 이해받지만, 뉴탐사가 모든 증거를 제출하면 '더 찾지 못한 것'이 과실이 된다. 전과자의 일방적 주장은 믿을 만한 증거가 되지만, 녹음파일은 의심의 대상이 된다.
이미 방송한 내용을 법원에 제출할 수 없다는 TV조선의 주장을 받아들인 법원이, 왜 뉴탐사에게는 CCTV와 블랙박스까지 요구했을까. 방송으로 수백만 명이 본 인터뷰는 비밀이지만, 첼리스트와의 사적인 대화는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가.
임은정의 즉각적인 부인은 무시해도 되지만, 첼리스트의 번복은 치명적이라는 판단. 수사권 없는 검사도 구속 협박을 할 수 있다는 세밀한 논리는 임은정 사건에만 적용되고, 한동훈 사건에서는 포괄적 판단만 이뤄진다.
항소심 앞에 놓인 두 개의 판결문
한동훈 사건 항소심이 곧 열린다. 재판부 앞에 두 개의 판결문이 놓여 있다. 하나는 법원 명령을 거부하고도 승소한 판결, 하나는 모든 증거를 제출하고도 패소한 판결이다.
법 앞의 평등은 헌법의 대원칙이다. 그런데 언론사의 이름에 따라, 사건 분류에 따라 법 적용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법치가 아니다. 임은정 판결문이 보여준 전례는 위험하다. 증거를 숨기는 것이 유리하고, 법원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신호를 언론사들에게 보내고 있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는 처벌받고, 진실을 숨기려는 자는 보호받는다. 전과자의 일방적 주장이 녹음파일보다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것이 정말 법원이 원하는 결과일까.
항소심 재판부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임은정 판결문이 보여준 '증거 은폐=승소, 증거 공개=패소'라는 공식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아니면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회복할 것인가. 그 선택이 대한민국 언론 자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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