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이재명 "오만의 경고"… 회견 칼끝은 정청래
취임 1주년 회견서 6·3 패배 "국민의 경고"로 규정… 칼끝은 정청래 거취
이재명 대통령 "이겨야 되는 곳을 졌다, 더 낮은 자세로 겸손해야"… 패배 책임 자임
"야당은 창, 여당은 그릇", "강함은 바다 같은 것"… 정청래 갈라치기 정조준
김민석 총리 극찬 뒤 전당대회로 보내며 사실상 불신임… 정청래는 사과 없이 칭찬글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은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자리였다. 그러나 8일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회견에서 대통령이 겨눈 곳은 분명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였다. 대통령은 6·3 지방선거를 "오만에 대한 국민의 경고"로 규정했다. 패배의 책임을 자기 몫으로 떠안으면서도, 회견 내내 정 대표가 비켜설 자리를 가리켰다.
패배는 내 책임이라는 대통령
대통령은 졌다는 사실을 피하지 않았다. "이겨야 되는 곳을 졌다"며 "최소한 성공은 아니죠"라고 했다. 책임은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비가 안 와도 그건 대통령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선거 결과는 국민의 경고로 받아들였다. "더 낮은 자세로 더 겸손해야 된다"고 했다.
가장 솔직한 대목은 선거를 빗댄 말이었다. 대통령은 "선거는 저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 같다"고 했다. 박지원 대표의 말을 빌려 "골프와 선거는 고개 들면 진다"고도 했다. 자신이 너무 쉽게 생각한 면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한 2, 3일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했다.
표정마저 솔직했다.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표정은 중립이 잘 안 되더라"고 털어놨다. 결론은 한 문장이었다. "나의 부족함이다." 정작 패배를 책임져야 할 당대표는 사과하지 않았다.
창과 그릇, 겨냥은 정청래
회견을 관통한 비유는 창과 그릇이었다. 대통령은 "야당은 창을 잘 써야 된다, 잘 찔러야 된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여당은 그릇이 돼야 된다"고 했다. 야당은 공격이지만 집권당은 색깔이 다른 사람까지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강함의 정의도 다시 세웠다. 대통령은 "욕설을 잘한다고 강한 당이 되지 않아요"라고 했다. 세게만 말하면 지지자가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진짜 강한 거는 바다 같은 거"라고 했다. 다 받아들일 수 있어야 강하다는 얘기였다.
이 말이 누구를 향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읽힌다. 정 대표는 평택을 재보선에서 김용남 후보를 두고 민주당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며 갈라쳤다. 이언주 최고위원도 과거 이력을 빌미로 같은 공격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이재명 대통령이 외연을 넓히려 끌어들인 인물이다. "끊임없이 같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되고, 저는 그게 정치라고 봅니다"라는 말은 이 갈라치기에 대한 답이었다.
같은 논리를 펴 온 논객도 있다. 유시민씨는 사람을 이익 지향과 가치 지향으로 나누고, 이재명 대통령 지지층을 이익을 좇는 부류로 규정해 왔다. 정준희 교수는 진보 지지층이 역린으로 여기는 것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 지지층 결속을 외연 확장보다 앞세우는 논리다. 대통령의 그릇론은 이들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일 잘한 총리를 굳이 내보낸 까닭
말에는 행동이 따랐다. 대통령은 김민석 국무총리를 아낌없이 칭찬했다. "뛰어난 리더십으로" 내각을 잡음 없이 이끌었다고 했다. 짧은 기간에 성과를 많이 낸 내각이라고도 했다. 그러더니 "다른 역할을 맡는 게 더 적정하다"며 교체를 공식화했다. 후임으로는 한성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명했다.
손발 맞는 총리를 굳이 내보낸 이유는 한 가지로 모인다. 지금 민주당에서는 당대표 자리가 총리보다 급하다는 판단이다. 일 잘하는 총리를 전당대회로 보내는 것 자체가, 정 대표 체제로는 안 된다는 신호다. 사실상의 불신임이다. 대통령은 검찰 보완수사권 문제마저 김 총리에게 맡겨 국회로 넘기게 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 총리를 향한 공격의 빌미를 미리 걷어낸 셈이다.
책임을 대하는 태도는 두 사람에게서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6·3 패배를 책임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정 대표가 먼저 했어야 할 일이었다. 정 대표는 사과 대신 다른 길을 골랐다. 대통령 회견이 끝나기도 전에 "대체불가 대통령"이라는 칭찬글을 올렸다. 재보선 당선인 만찬에는 송영길 의원 등 일부가 불참했다.
장흥 유세장에서 본 오만
대통령이 경고한 오만은 멀리 있지 않았다. 선거를 나흘 앞두고 찾은 전남 장흥의 유세장이 그랬다. 정 대표는 현직 장흥군수인 민주당 김성 후보를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데 연설의 대부분이 질문이었다.
"윤석열이 좋으냐, 이재명 대통령이 좋으냐." 박근혜·이명박과 이재명 대통령을 견주라는 식이었다. 그러면 민주당 후보를 찍어 달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청중도 정상이 아니었다. 현장 주변의 80~90%는 파란색 점퍼를 입은 선거운동원이었다. 유세 전에는 관광버스가 줄지어 청중을 실어 날랐다. 정 대표는 호남 일대를 돌며 같은 연설을 되풀이했다. 지역 현안에 대한 약속도, 어떻게 살림을 바꾸겠다는 비전도 없었다. 실제로 현직 군수였던 김성 후보는 장흥에서 떨어졌다.
기조는 그대로, 남은 건 한 사람
정작 국정 기조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선거 패배로 노선이 흔들리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국정 기조는 바뀔 게 없어요"라고 잘랐다. 오히려 더 빠르게, 더 힘차게 가겠다고 했다. 부동산 투기는 누르고 공급은 늘리겠다는 방향도 그대로다. 조작 기소 특검을 두고는 "법과 상식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잡고, 없으면 놔두면 된다는 것이다.
노선을 바꾸지 않겠다는 말에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번 패배의 원인이 정책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대통령의 진단에서 패인은 오만이었다. 그 오만의 한가운데에 정 대표가 있었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8월 17일 대전에서 열린다. 정 대표는 아직 사과하지 않았고, 당대표 연임에 도전하겠다는 뜻도 거두지 않고 있다.
최신뉴스
여러분의 회비는 권력감시와 사법정의, 그리고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취재 및 제작에 사용되며, 뉴탐사가 우리사회 기득권을 견제할 수 있는 언론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뉴탐사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