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사

경술팔적의 아들 민복기, 일제 판사에서 대법원장까지…현충원 18호에 잠들다

일제 판사로 독립운동가 탄압, 인혁당 8명 사형 선고…자신이 유죄 내린 이들과 60m 거리에 안장

경술국치 서열 2위 민병석의 아들, 여흥 민씨 삼방파 출신

경성지방법원·복심법원 판사로 독립운동가 이초생·상록회 재판

인혁당 재건위 8명 사형 선고 15분 만에 마무리, 18시간 뒤 집행

대전 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 독립유공자와 60m 거리

2026-04-03 06:50:37

경술국치의 주역 민병석의 아들 민복기. 일제강점기 경성지방법원 판사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해방 뒤에는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대법원장을 두루 거쳤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 인물은 지금 대전 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18호에 잠들어 있다. 자신이 유죄를 선고한 독립운동가들과 불과 60m 거리다.


2일 시민언론 뉴탐사 '역사탐사' 코너에서 역사독립군 배기성 강사가 민복기의 행적을 추적했다.


경술팔적의 적장자, 민복기


민복기는 1913년 12월 12일 태어났다. 여흥민씨 삼방파 31세손이다. 여흥민씨 가운데서도 삼방파만이 조선 3대 세도가문으로 꼽힌다. 나머지 파는 세도와 무관하다.


아버지 민병석은 고종황제의 비서실장 격인 궁내부 대신이었다. 1898년부터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당일까지 세 차례 궁내부 대신을 지냈다. 경술팔적 서열 2위. 이완용 바로 다음이었다. 일본이 총을 들이대는 상황에서 고종은 민병석을 자를 수도 없었다. 민병석은 1939년 일제 중추원 부의장에 올라 1940년 사망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배기성 강사는 "친일 매국은 죽어야 고치는 병"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죽어서야 멈췄고, 친일은 아들을 통해 이어졌다.


일제 판사, 독립운동가를 법정에 세우다


민복기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게 된 근거는 경성지방법원·경성복심법원(현 서울고등법원) 판사 시절의 재판 기록이다. 두 건이 핵심이다.


첫째는 이초생 사건이다. 이재상으로도 불린 이초생은 1930년 상해로 건너갔다. 1935년 문일민의 권유로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해 독립운동에 나섰다. 문일민은 1925년 이승만 대통령을 최초로 탄핵한 인물이기도 하다.


둘째는 상록회 사건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상록회는 졸업 뒤에도 춘천과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38년 가을 조직이 일본 경찰에 발각됐다. 137명이 연행됐고 12명이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1939년 12월 27일 선고공판에서 남궁태, 이찬우, 문세현, 용환각, 백흥기, 조규석, 배근석, 조흥환, 이연호, 신기철 10명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전홍기와 차주화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었다. 백흥기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1940년 스무 살의 나이로 옥사했다. 경성지방법원 1심 판사도, 경성복심법원 2심 판사도 민복기였다.


민복기는 자서전에서 경성복심법원 판사 시절 "사이비 교주 전용회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판결을 내린 것 외에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재판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배기성 강사는 "민복기가 기록을 없앴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해방 뒤, 요직 두루 거쳐


해방 뒤 민복기의 이력은 한국 법조사의 요약본 같다. 법무부 검찰국장, 법무부 법무국장,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제5대 법무부 차관, 초대 해무청장(현 해양수산부), 5대 검찰총장. 1961년 9월부터 1963년 4월까지 대법원 판사, 이어서 1대부터 3대까지 약 8년간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1968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10년 동안 대법원장이었다.


배기성 강사는 "조선 전국에서 가장 관운이 좋은 인물"이라고 했다.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대법원장. "내가 다 했어"라고 할 만한 이력이다.


퇴임 뒤에는 법무법인 태평양에 관여했다. 등록된 대표 변호사는 다른 사람이었다. 배기성 강사는 "나는 대형 로펌을 만든 적 없다, 태평양에서 하도 오라고 해서 끌려갔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욕심 없는 인물로 보이려는 장치였다는 것이다.


1987년에는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 약 10년간 활동했다. 2007년 7월 13일 서울대병원에서 93세로 사망했다. 죽기 한 달 전 혈압이 올라 입원했고,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키 163cm였던 민복기에 대해 박정희가 좋아한 이유가 전해진다. 자기보다 키가 작아서였다. 민복기 본인은 박정희를 "만주군 소위 출신"이라며 속으로 깔봤다고 한다. 세도가문 적장자의 자부심이었다. 겉으로는 임명장을 받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지만, 청와대를 "만주군 감찰실 정도"로 여겼다는 것이다.


사법 사상 암흑의 날


1966년 국회 오물 투척 사건 당시 법무부 장관이 민복기였다.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와 박정희·공화당 정치자금 의혹에 항의해 김두한 의원이 국무위원석에 똥물을 뿌렸다. 민복기도 뒤집어썼다.


그러나 민복기가 관여한 사건 가운데 가장 어두운 것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4호를 발표하고 민청학련을 범죄단체로 규정했다.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의 배후로 제2차 인민혁명당 재건위를 지목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장 민복기가 주재한 대법원은 여덟 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원, 이수병, 여정남. 선고에 걸린 시간은 15분이었다.


18시간 뒤 사형이 집행됐다. 판결문이 대법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형무소에서는 이미 사형장 청소가 끝나 있었다. 5년 이상 중형 죄수들이 물 청소를 마쳤고, 간수들은 "오늘 사형이 있을 것"이라고 알렸다. 각본대로였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여정남은 몽양 여운형 선생의 삼촌뻘이다. 도예종은 사업가였다. 하재완은 철봉에 무릎을 꺾어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고문당했다. 직장이 체외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배기성 강사는 "일제시대 도산 안창호 선생이 평양 감옥에서 같은 방식으로 당했다"고 했다.


1977년에는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의 상고심을 맡았다. 1976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함석헌, 윤보선, 김대중 등이 유신독재에 저항해 발표한 선언이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전원 구속됐다. 민복기가 주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민주구국선언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유신 체제는 태평성대인데 폭력의 집이라 했다"는 이유를 들어 상고를 기각했다.


처숙부 이병도, 김창용 묘비명을 짓다


민복기의 인맥도 주목할 만하다. 처숙부(아내의 삼촌) 이병도는 서울대 국사학과의 뿌리를 이루는 인물이다. 우봉이씨 이완용의 종가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1925년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7대 문교부 장관, 서울대 명예교수를 지냈다. 이병도의 손자가 서울대 총장 이장무다.


배기성 강사가 꺼내든 자료는 이병도가 쓴 김창용 묘비명이다. 김창용은 만주국 고용 밀정이었다. 조선인 독립운동 단체를 적발한 공로로 조선총독부 표창장과 일본 대본영 훈장을 받았다. 6·25 전쟁 중 육군 특무대장으로 관련자 2만5000명을 검거·처단했다.


이병도는 묘비명에 "나라의 큰 손실"이라고 적었다. "그 흘린 피는 전투에 흘린 그 이상의 고귀한 피였고, 그 혼은 길이 호국의 신이 될 것이다"라고 썼다.


인혁당 재건위 대법원 판결 당시 민복기 옆에 있었던 인물이 신직수다. 중앙정보부장,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대통령 법무비서관을 거쳤다. 도지코인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신현성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피고인들과 함께 현충원에 누운 판사


민복기는 대전 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18호에 안장돼 있다. 자신이 일제 판사로 유죄를 선고한 독립운동가 이초생과 상록회 관련 인사들도 같은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잠들어 있다. 거리는 60m다.


민복기의 묘는 독립유공자 묘역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다. 법원 재판장석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국이다. 경술국치의 주역인 아버지를 둔 아들이 일제 판사로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해방 뒤에는 인혁당 사형을 집행한 대법원장이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묻혀 있다.


김용만 의원이 발의한 이른바 '박진경 방지법'은 인권 유린 사건 가해자를 유공자 지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이다. 소급 적용이 가능하다. 서훈이 박탈되면 현충원 안장 자격도 사라진다.


배기성 강사는 "인혁당 재건위, 조봉암 진보당 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동백림 사건이 다 연결된다"며 "이런 조작 수사의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제주 4·3 사건 관련 행사에서 "국가 폭력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없어야 한다"며 "나치 전범처럼 끝까지 추적하고, 과거 서훈도 취소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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