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행어사

700만원 신제품 지열보일러, 뚜껑 열자 10년 넘은 중고부품 '충격'

36년 업력의 전문업체, 정상 제품도 교체하고 중고부품 재사용 정황 포착...경찰 수사 착수, 업계 "터질 게 터졌다"

2025-12-02 17:41:45

경기도 일원의 한 주택에 지난해 설치된 지열보일러가 계속 고장났다. 700만원을 주고 설치한 신제품이었다. 의심이 든 집주인이 전문가를 불러 보일러 뚜껑을 열어본 순간,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2012년에 제조된 10년도 넘은 냉동기용 압축기가 들어있었다.

지열보일러는 땅속의 일정한 온도를 이용해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해주는 친환경 시스템이다. 에너지 효율이 좋아 많은 가정과 농장에서 설치하고 있다. 제품 구입과 설치에만 수백만원이 드는 고가 제품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설치한 제품 안에 10년 넘은 중고 부품이 들어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국 곳곳서 확인된 중고부품 사용 정황


취재진은 경기도 일대에서 시스웍스 제품이 설치된 곳을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확인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경기도 의왕의 한 업체에는 시스웍스 지열보일러 두 대가 설치돼 있었다. 보일러 겉의 명판에는 2024년 제작 설치로 표기돼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핵심 부품인 냉동기용 압축기를 확인한 결과, 한 대에는 2014년도 제품이, 다른 한 대에는 2015년 6월 18일 제조된 제품이 들어있었다.

다른 지역 가정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24년 제조 명판이 붙은 보일러 내부에는 2017년도 압축기가 설치돼 있었다. 또 다른 가정에서는 작년에 설치한 제품 안에 2012년도 압축기가 발견됐다. 10년도 더 넘은 압축기였다.

압축기 제조 연도는 덴포스나 파나소닉 같은 제조사 명판의 시리얼 넘버로 확인할 수 있다. 덴포스 제품의 경우 'S0812'라는 시리얼 넘버는 미국 공장에서('S') 2012년('12') 8번째 주('08')에 생산됐다는 의미다.

    ▲ 보일러 겉 명판에는 2024년 11월 제작일 표기, 내부의 냉동기용 압축기는 2014년 제품이 들어 있는 사진


한 가정에서는 설치 후 두세 달 만에 찍은 사진에서 압축기 위쪽부터 노란 녹물이 흘러내린 흔적이 확인됐다. 압축기 연결 배관도 심하게 부식돼 있었고, 압축기 다리 부분에는 붉은 녹이 끼어 있었다. 신제품이라면 불가능한 모습이다. 보일러는 실내 보일러실 케이스 안에 설치되기 때문에 두세 달 만에 이렇게 녹이 슬 수 없다.

또 다른 가정에서는 2024년 12월 설치된 보일러 내부에 2011년 26주차에 제조된 압축기가 들어있었다. 지열보일러 배관 연결부에는 오랜 세월이 지나야 생기는 백태가 끼어 있었다.


"신제품 가격 받고 중고 팔아...사기죄 성립"


(사)소비자와함께 윤영미 대표는 "이번 문제처럼 사업자가 소비자를 속이려는 의도를 갖고 상품을 판매한 경우 소비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신제품을 팔면서 압축기 같은 주요 부품에 중고를 사용해 제조해 팔 거라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윤 대표는 "중고 부품을 사용해 만든 제품을 신제품으로 속여 판 것은 사기 판매에 해당돼 소비자는 전액 환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오래된 중고 부품을 재사용한 경우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장날 가능성이 크고, 고장 나면 AS를 받거나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금전 손실과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완전히 사기를 친 것"이라며 "작년에 설치했는데 고물도 한창 고물을 갖다가 껍데기만 바꿔서 신제품으로 판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노했다. 이 피해자는 11년 전에도 같은 회사 제품을 설치했다가 고장이 나서 작년에 회사를 믿고 다시 설치했는데 배신당했다고 토로했다.


회사 대표 개인계좌로 대금 입금 지시


취재 과정에서 또 하나의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여러 피해자들이 제품 대금을 회사 계좌가 아닌 대표 개인 명의 계좌로 입금했다고 증언했다. 600만원에서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 보일러 대금을 시스웍스 대표 명의의 개인 통장으로 입금 안내하는 회사 상담직원의 문자 메세지


시스웍스 상담 직원이 보낸 문자를 보면, 펌프 일체 교체 및 물탱크까지 교체하면 830만원, 보일러만 교체할 경우 600만원이라며 기업은행의 임모씨(대표) 계좌로 입금하라고 안내했다.

윤영미 대표는 "어차피 사기로 인한 소비자 피해 건이고 소비자가 입금한 사실이 입증된다면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인정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수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회사 대표가 회사 돈이나 개인 재산을 미리 빼돌릴 경우 형사 처벌을 받더라도 배상은 나몰라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개인 사업자가 아닌 법인 기업이 개인 통장으로 입금하라고 한다면 소비자는 거래를 중단하거나 회사 통장 계좌를 알려달라고 해야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직원회의 녹취 "정상 제품도 교체했다"


취재진은 회사 내부의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했다. 지난해 말 회사 직원 회의 녹취였다. 이 회의에서 한 직원이 말한다.

"보상 판매해서 회수되는 기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들은 반드시 갖고 와서 어떤 원인으로 고장이 났는지 또 무엇이 문제인지 한번 점검할 필요는 있어."

이에 대표가 직접 답한다. "원인이 고장난 거 아니고 우리가 마케팅으로 해서 정상적인  교체한 것도 있고, 진짜 고장나서 교체 한 것도 있고 섞였을 거예요."

정상적인 것도 교체했다. 고장도 나지 않은 제품을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교체했다는 것이다. 회사 대표가 직접 인정한 것이다.

윤영미 대표는 "정상 작동하는 제품을 소비자에게 고장났다고 속여서 새 제품을 설치하게 해 600만~700만원의 거금을 부담하게 했다면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날의 직원 회의에서는 더욱 노골적인 대화가 오갔다.

"단상 펌프 있잖아요. 저게 재사용품인데 저게 되는지 테스트는 한번 해보셔야 될 것 같아. 단상이 두 대가 있었는데 한 대는 써먹었어요. 저거는 일단 내가 전기를 다 하기 전에 압축기를 한번 돌려볼 거예요. 되면 저거를 써먹는 거고 안 되면 빨리 교체해야 하니 그러면 수배를 좀 해야 됩니다."

기업은행 임모씨(대표) 개인 계좌로 보일러 대금을 입금받는 것이 일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재사용품을 돌려보고 되면 써먹는다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중고부품 재사용이 회사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윤영미 대표는 "회사 내에서 여기 가담한 사람은 모두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고, 조직적인 사기 거래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녹취록이 있다면 소비자 피해 구제 단계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상판매'로 소비자 두 번 속이고 작업장서 중고부품 재활용


회사 내부 업무 카카오톡방을 보면 소비자가 AS를 요청하자 본부장이 직원들에게 보상 판매를 유도하라고 지시했다.

이 회사의 보상 판매란 수리가 가능한데도 안 된다고 말하고 고철값에 기계를 수거해 와서 그 안에서 쓸 수 있는 부품을 다시 빼내 재사용하는 것이다. 소비자를 두 번 속이는 것이다. 한 번은 수리 불가능하다고 속이고, 또 한 번은 중고 부품을 신제품이라고 속이는 것이다.

취재진이 입수한 작업장 사진들은 그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소비자에게 고철값에 회수한 보일러가 작업장에 쌓여있고, 녹슨 모습이 역력하다. 작업자들은 지열보일러 커버를 벗기고 열교환기, 배관, 압축기를 하나하나 분해해 모아둔다.

압축기에는 하얀 견출지가 붙어있다. 중고 압축기 중에서 작동이 가능한 것을 확인한 후 붙이는 것이다. 배관은 파랗게 녹슬어 있다. 5~10년 이상 사용해야 생기는 녹이다.


▲ 폐 지열보일러에서 분해한 열교환기를 수돗물과 칫솔로 세척하는 사진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분해한 열교환기를 화장실로 가져가 배관 연결부에 호스를 연결해 수돗물을 붓는 사진이다. 반대편에서는 녹슨 물이 흘러나온다. 칫솔을 꽂아 녹슨 배관 안쪽을 닦는다. 냉동용 가스가 들어가는 부분에는 발포 고무를 꽂아 물이 들어가지 않게 막는다.

화장실에서 닦은 열교환기를 다시 작업장으로 가져온다. 물기가 채 마르지도 않은 열교환기를 새 케이스 위에 올려놓고 중고 압축기와 함께 조립한다. 배관의 녹슨 모습만 봐도 중고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작업이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회사는 압축기, 열교환기, 배관뿐 아니라 차단기 등 다른 부품도 중고를 사용했다. 부품 진열대에는 박스 없이 알맹이만 노출된 중고 차단기가 놓여있고, 동관 끝에는 사용 흔적인 테프론 테이프가 남아있다.

회사 창고에는 신품과 중고품이 구분 없이 뒤섞여 보관돼 있다. 신품은 동관 끝부분에 마개가 박혀있지만, 중고는 투명 테이프로 감겨있다. 신품과 중고품을 구분하지 않고 보관한다는 것은 구분 없이 소비자에게 다 판매한다는 증거다.


회사 측 "그런 일 없다"→증거 보이자 "몰랐다"→"연구용"


취재진이 경기도 평택시 청북읍 주식회사 시스웍스를 찾아갔다. 직원들은 당연히 신제품을 판매한다고 답했다가 취재를 거부하고 빨리 나가 달라고 했다.

회사 임모 대표가 등장했다. 중고 부품을 넣어 판다는 제보가 있다는 질문에 대표는 "그렇지 않아요"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취재진이 직접 확인했다며 2012년도 것이 들어가 있었다고 말하자 대표는 "그런 사례가 없다"며 단호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증거를 보여주자 말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 일 없다'에서 '우리는 몰랐다'로 바뀌었다. 변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는 대리점 탓을 한다.

대표는 압축기는 자신들이 만든 게 아니라 대리점에서 들어온 것이라며, 대리점이 작년에 2011년 것을 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물건을 검사해서 가져오는 게 아니고 제조 연도까지 따져서 사지 않으며 사업상 20년 30년 거래하다 보니 고물을 가져왔는지 따질 수 없다고 했다.

취재진이 작업장 사진들을 모두 보여주자 대표는 "물을 넣었을 때 왜 막히나 실험한다"며 "연구를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폐 기계를 화장실에서 칫솔로 닦는 게 연구라는 것이다.

취재진이 새 차를 샀는데 그 안에 엔진이 중고라면 어떻겠냐고 묻자 대표는 "그러면 안되죠"라고 답했다. 냉동형 압축기가 핵심 부품인데 10년 이상 사용된 걸 닦아서 새 제품에 놓는다고 해서 새것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표는 "안 되죠"라고 인정했지만, 더 이상 답하지 못했다.


경찰, 증거 제시 후 수사 착수...업계 "명백한 범죄"


취재진은 경기도 평택경찰서를 찾아갔다. 경찰 담당자는 처음에 전문 분야라 수사가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현장 확인 결과와 증거를 제시하자 수사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확인한 게 네다섯 군데인데 전국적으로 퍼졌고, 30년 이상 된 기업이 언제부터 이렇게 팔았는지 모르겠으나 작년 제품들은 다 10년도 더 되는 것을 안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새 차 샀는데 안에 중고가 들어가 있는 것이며, 국민의 안전상으로도 차단기도 중고를 넣었는데 불이 나면 수사를 제대로 안 한 경찰이 트집을 잡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윤영미 대표는 경찰 수사가 늦어지면 회사 자산을 빼돌리거나 임직원들이 입을 맞추고 증거를 은폐할 수도 있어 피해 소비자들이 실질적인 피해 구제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이 업체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비슷한 수법으로 사업하는 업체들이 계속 소비자 피해를 양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냉동기 업계에서 수십 년간 일한 전문가는 "압축기는 냉동기 제품 안에서 가장 핵심 부품"이라며 "소비자가 신제품을 샀는데 판매 업자가 신제품이라고 말하고 팔았다면 속은 게 맞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같은 업자들끼리는 속이지를 못해요. 잘 알기 때문에"라며 "결국 터질 게 터졌네요. 명백한 범죄네"라고 지적했다. 회사에서 이걸 신제품이라고 하고 판 것이라면 사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업계 안에서는 중고 컴프레셔를 중고라고 하고 판매하고 사는데, "최종 단계에서 새것이라고 하고 판매하는 행위, 그게 정말로 문제"라고 강조했다.


"업계 전체 자정 노력 필요...제도 개선해야"


윤영미 대표는 회사 직원들이 가담하면서 인센티브까지 받았기 때문에 모두 공범이 되는 것이라며 자기들끼리 묵시하면서 은폐해 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하는 업체들이 더 있으니까 업계에서는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다들 묵시해 온 게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단 이번 건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져야 되고 업계에 이런 관행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면 당연히 수사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스스로도 자정 노력이 있어야 되고, 필요한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소관 정부 부처와 소비자, 사업자들이 함께 모여서 이런 피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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