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 투자해 세계 최초 개발했지만
2001년 5월, 중소기업 웰게이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들고 KT를 찾았다. 휴대전화가 꺼져 있거나 통화 중일 때 걸려온 전화번호를 문자로 알려주는 '캐치콜 서비스'였다. 당시 음영지역이 많고 배터리가 빨리 닳던 시절, 부재중 전화를 확인할 방법은 거의 없었다. 웰게이트는 이 문제를 해결할 세계 최초의 기술을 개발했다.
웰게이트는 12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기술 개발부터 장비 구매, 대규모 TV 광고까지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KT는 초기에 이 서비스를 부정적으로 봤다. 음성사서함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웰게이트가 100% 투자한다는 조건으로만 계약을 받아들였다.
정우성, 조인성, 안성기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등장하는 광고가 쏟아졌다. 서비스는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출시 5개월 만에 이용자 100만 명, 2년 만에 300만 명을 돌파했다. KT는 언론에 "세계 최초 개발"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대박 조짐 보이자 수익배분 '역전'
처음 계약 때 수익배분은 웰게이트 7, KT 3이었다. 웰게이트가 모든 것을 투자하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년 뒤 본계약을 맺을 때 상황이 바뀌었다.
KT는 자체 설문조사와 외부 기관 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캐치콜 서비스는 '대박 서비스'였다. KT 담당 부장은 박기오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자 KT는 여러 이유를 대며 계약 조건을 바꾸자고 요구했다. 웰게이트 장비가 KT 내부에 들어올 수 없다, 장비를 원가에 구매하겠다, SMS 직접 통보 방식으로 변경하겠다 등의 이유였다. 결국 수익배분은 정반대로 뒤집혔다. KT 7, 웰게이트 3.
박기오 대표는 "역할이 줄어들었다는 이유였지만, 대박 서비스라는 걸 알고 난 뒤 벤처기업에 70%를 주는 게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100만 명 돌파하자 일방적 계약해지
서비스는 통신업계를 뒤흔들었다. SK텔레콤도 70만 명, LG텔레콤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런데 2003년, 웰게이트가 특허를 등록하자 KT의 태도가 돌변했다.
KT는 계약서에 없던 '독점권 문제'를 들먹이며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실제로 계약서 어디에도 독점 조항은 없었다. 이후 KT는 해지 이유를 '갱신 거절'로 바꿨다. 2003년 5월 계약이 끊겼다.
하지만 서비스는 중단되지 않았다. KT는 계약을 끊고도 똑같은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며 웰게이트에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기술만 빼간 것이다.
당시 1인당 재통화 수익만 월 2000원으로 추산됐다. 이용자 600만 명 기준으로 KT는 연간 1500억 원 가량의 통화 수익을 올렸다. 여기에 월 이용료 500원까지 합치면 20년간 수익은 1조 원이 훌쩍 넘는다.
1심 승소했지만 2심에서 완전히 뒤집혀
웰게이트는 2005년 1심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KT가 웰게이트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명확히 인정했다. 손해배상액은 약 16억 원으로 산정됐다. 특허 무효 심판에서도 특허심판원은 웰게이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2심에서 모든 게 뒤집혔다. 재판부는 증인 진술을 왜곡하고, 증거 없이 추론만으로 판단했다.
1심에서 KT 직원 하모씨는 "웰게이트가 제공한 시스템을 활용해 KT가 계속 제공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계약서 내용 그대로였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이 증언을 "KT가 제공한 서비스"라고 정반대로 해석했다. 주어와 목적어를 바꿔버린 것이다.
2심 재판부는 또 이렇게 판단했다. "KT가 제시한 여러 기술을 조합하면 통상의 기술자도 만들 수 있다. 이미 업계에 널리 알려진 기술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기술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KT조차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고, 증거도 제출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스스로 추론해서 만들어낸 결론이었다.
세계 최초 인정받았는데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웰게이트의 캐치콜 기술은 한국, 미국, 일본에서 모두 특허 등록을 받았다. 세계 최초로 인정받은 것이다. KT도 서비스 개시 전날 언론에 "세계 최초"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특허심판원도 일본 공개 특허와의 차이를 명확히 인정했다. 웰게이트 특허는 기존 통신 시스템과 별도로 발신자 정보 시스템을 구축했고, 상황별로 다르게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일본 특허는 전원이 꺼진 경우만 저장했다가 일괄 전송하는 단순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이 모든 증거를 무시하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기술"이라고 판단했다. 세계 최초 기술을 누구나 만들 수 있다니, 논리적으로 모순이었다.
판결 뒤집은 전직 판사들, 취재 회피
취재진은 1심을 뒤집은 2심 판사들을 찾아갔다. 민사 소송 2심 재판장이었던 이성호 전 판사와 특허 소송 2심 재판장이었던 황한식 전 판사다. 두 사람 모두 현재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황한식 전 판사가 있다는 법무법인 직원은 "대표 변호사는 상근하지 않는다"며 면담을 거부했다. 이성호 전 판사 측 비서도 "고문님은 자리에 없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연락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법복을 입고 판결문을 낭독할 때는 당당했지만, 법복을 벗은 지금은 단 한 마디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이성호 전 판사는 이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국민의 힘 당무감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박기오 대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꿔치기한 분이 어떻게 인권위원장과 감사위원장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비정상적 재판 진행과 대형 로펌 총동원
재판 과정도 의심스러웠다. 변론이 일곱 차례나 연장됐고, 변론 종결 후에도 세 차례나 재개됐다. 선고 기일도 두 차례 연기됐다.
KT는 1심에서 진 뒤 2심에서 대형 로펌 세 곳(율촌, 지평, 충정)을 추가로 투입했다. 개인 변리사도 세 명을 더 투입했다. 각 로펌은 수백 명의 변호사를 보유한 곳들이다.
특허법원 2심 재판장은 부임 3개월 만에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을 내렸다. 특허 전문 배경도 없는 판사가 복잡한 특허 소송을 급하게 처리한 것이다. 박기오 대표는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고 와서 판결 내리고 간 것 같다"고 말했다.
2018년 법 개정됐지만 또 기각
2018년 부정경쟁방지법이 개정됐다. 거래 과정에서 제공받은 기술적·영업상 아이디어를 부정하게 사용하는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서였다. 특허 등록이 없거나 단순 아이디어 단계에서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웰게이트 사건이 바로 이 조항이 막으려던 전형적 사례였다.
박기오 대표는 희망을 품고 2024년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또다시 웰게이트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과거 판결문을 거의 그대로 인용했다. 웰게이트가 제출한 경제적 가치, 비공지성 등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새로 만들어진 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웰게이트가 캐치콜 개발에 투자한 12억 원 이상의 직접 투자금, 대규모 인력과 연구개발비는 1심 판결문의 '기초사실'에도 명시돼 있었다. 기초사실이란 원고와 피고가 다툼 없이 인정한 객관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심은 이 기초사실을 삭제해버렸다.
KT 본사 찾아갔지만 "답변 어렵다"
취재진은 KT 본사를 찾아갔다. 광화문 이스트빌딩 1층 보안 데스크부터 난관이었다. 홍보실 연락처를 요청하자 "사전에 협의된 분들만 출입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전 협의를 하려면 연락처가 필요한데, 연락처를 알려면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는 순환논리였다. 직원은 "저희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만 반복했다.
취재진은 10 가지 질문을 문자로 보냈다. 계약 해지의 정당성, 이미 알고 있던 기술이라면 왜 계약했는지, 세계 최초 홍보의 근거, KT 직원 증언의 진실성, 특허 무효화 이유,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여부 등이었다.
며칠 뒤 KT 홍보실에서 짧은 문자가 왔다. "시간이 많이 지난 사안이라 답변이 어렵다." 하지만 부정경쟁방지법 소송은 2024년에 제기됐고, 2심도 진행 중이다. 현재 진행형 사안이다.
공정거래 전문가 "전형적 하도급법 위반"
공정거래위원회에서 10여 년간 근무한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KT가 거래 관계를 악용해 웰게이트의 노하우와 영업비밀을 탈취한 전형적인 하도급법 위반"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 창업 의욕과 기술 개발 의지가 꺾인다. 대기업은 급변하는 소비자 니즈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이 중요한데, 이런 식으로 꺾이면 국가 경제에도 안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입증 책임을 중소기업이 아니라 기술 탈취 의심을 받는 대기업 쪽에 부여해야 한다"며 "내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 조사를 활성화하고 전담 인력을 늘린다는 점은 희망적"이라고 덧붙였다.
김용민 의원, 법왜곡죄·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 발의
변호사 출신 김용민 의원은 2022년 12월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침해 행위 유형 확대, 침해 물건 몰수 규정 신설, 범죄재산 몰수 및 추징이 핵심이다.
올해는 '법왜곡죄' 신설 법안도 냈다. 법관과 검사가 기득권을 위해 불공정하게 재판하는 것을 처벌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실 관계를 조작하거나 법을 부당하게 적용하면 최대 징역 10년이다. 김 의원은 "퇴직 판사와 현직자의 유착으로 사법 신뢰도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박기오 대표는 "법에 호소했는데 법마저 기득권 편을 든다면 정말 잔인한 일"이라며 "법왜곡죄는 공소시효 없이 신설돼야 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잔인한 범죄"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계속되는 싸움
웰게이트는 현재 1조 원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KT가 20년 넘게 캐치콜 서비스로 얻은 수익을 종합하면 통화 재창출 수익만 1조~1조5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별도로 월 이용료 매출 수익은 약 8000억 원이다.
박기오 대표는 "상생이 아니라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죽이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며 "웰게이트 특허가 무효화되지 않았다면 전 세계 통신사에 특허를 등록하고 막대한 로열티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KBS 시사프로그램에서 박기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1심에서 다 이겼습니다. 하지만 2심에서는 다 졌습니다. 진실이 법이란 이름으로 왜곡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죽는 날까지, 죽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이건 제 문제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현실입니다."
20년이 지났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KT는 웰게이트의 기술로 서비스를 운영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정당한 대가 없이.
법은 만들어졌다. 하지만 법원이 그 취지를 외면한다면, 웰게이트 같은 중소기업의 기술과 권리는 누가 보호할 것인가. 대한민국이 진정한 혁신 국가로 가려면, 기술을 개발한 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고, 신뢰 관계가 악용되지 않으며, 법원이 법의 취지를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웰게이트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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