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보여준 한국 사법부의 민낯
가발 위 왕관 쓴 판사들, 시민 없는 재판정 - 루이스 캐럴의 160년 전 풍자가 2025년 대한민국 법정 현실이 되다
어린 시절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재판 장면을 읽으며 웃었다. 하트 여왕의 재판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판사인 왕이 가발 위에 왕관을 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하지만 지금 다시 읽으면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루이스 캐럴이 1865년에 쓴 이 장면은 풍자가 아니라 예언이었다. 대한민국 법정의 초상이었다.
가발 위의 왕관: 법관이 된 권력자
앨리스가 처음 본 판사는 "큰 가발 위로 왕관을 쓴" 왕이었다. 판사는 왕이었는데, 큰 가발 위로 왕관을 쓰고 있었다. 왕은 어쩐지 불편해 보였고, 썩 어울리지 않았다. 법복 위에 권력의 상징을 겹쳐 쓴 이 기묘한 형상은, 오늘날 한국 사법부를 닮았다.

지난 2023년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김형두 재판관은 "법원의 주인은 판사들"이라고 말했다. 헌법 제1조가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하는 나라에서, 법을 수호해야 할 재판관이 법원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판사라고 공언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발 위의 왕관이다. 법관의 역할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지, 스스로를 법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부는 어느새 법복을 입은 권력기관이 되어버렸다.
"바보 같기는!": 들리지 않는 시민의 목소리
앨리스가 "바보 같기는!"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 흰토끼가 "법정에서 정숙하시오!"라고 외쳤다. 왕은 안경을 끼고 누가 말을 하고 있는지 법정을 살폈다. 앨리스는 어깨 넘어로 모든 배심원이 석판에 "바보 같기는!"하고 적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모두 맞춤법을 틀렸고, 옆 사람에게 "같기는"의 받침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더 기묘한 것은 한 배심원(도마뱀 빌)이 석판에 연필로 적을 때마다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자, 앨리스가 주위를 돌아가 그 배심원의 연필을 잡아챘다는 점이다. 불쌍한 도마뱀 빌은 연필을 빼앗기자 석판에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이 그렇다. 배심원 9명 전원이 무죄 평결을 내려도 판사는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 시민의 목소리는 '기록되지만' 판결문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법원은 시민의 연필을 빼앗은 채, 혼자서만 판결문을 쓴다.
청담동 술자리 재판이 대표적이다.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단 하나의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언론에 8천만 원 배상을 명령했다. 시민들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판결은 이미 내려졌다. 누가 판사의 연필을 빼앗을 수 있는가? 아무도 없다.
"평결하시오!": 증거보다 먼저 나온 결론
하트 여왕의 재판에서 토끼가 고발장을 읽자 왕이 배심원들에게 "평결하시오!"라고 명령한다. 토끼가 "아직, 아직이요! 그 전에 더 큰 일을 해야합니다"라고 만류하지만, 왕은 이미 결론을 내리려 했다.
지난 5월 대법원은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10대 2의 판결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10명의 대법관은 파기환송에 찬성했고,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2명만이 반대했다.
주목할 점은 재판 과정이다. 4월 8일 임명된 마용주 대법관은 전원합의체가 구성되기도 전에 임명이 강행됐고, 한 달도 안 되어 파기환송 의견을 냈다. 7만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이틀 만에 검토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평결하시오!" 재판이다. 충분한 검토 없이,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조희대의 별동대: 카드 병사들의 사전 공작
앨리스의 법정에서 "새들과 동물 모두 한 벌의 카드마냥 정렬해 있었다. 잭들은 병사를 양 옆에 거느리고" 있었다. 카드 병사들은 여왕과 왕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사실은 더 충격적이다.
이재명 사건 기록이 주심 재판관 지정도 되기 전인 3월 31일에 이미 공동연구관실로 넘어갔다. 주심 지정은 그보다 22일 뒤인 4월 22일이었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사건 기록은 형사과에 보관되다가 주심 재판관이 지정된 후에야 해당 재판부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주심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희대 별동대'로 불리는 공동연구관들이 먼저 기록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기록 인수인계부에는 더 의심스러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4월 22일자 인수인계부에 누군가 수기로 이렇게 적었다. "이미 기록은 위에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이날 기록이 인계됐다고 적으면서도, "이미 위에 있다"고 쓴 것이다. 사후 알리바이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대법관 12명은 방대한 기록을 직접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 4월 22일 소부 배당 후 불과 이틀 만에 표결이 이루어졌다. 결국 대법관들은 '조희대 별동대'가 작성한 검토보고서를 받아봤을 뿐이다. 카드 병사들이 짜놓은 각본에 따라 움직인 셈이다.
"머리를 쳐라!": 양극단의 정의
원작에서 하트 여왕은 소란을 피운 기니피그들을 보며 "가증스러운 짐승들!"이라고 외쳤다. 여왕의 심기에 따라 처벌이 달라졌다.

지난 3월 박성재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기각 사유는 "위법성 인식의 경위를 다툴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법무부를 이끌던 장관이 계엄이 위법한지 몰랐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22년 경력의 변호사들도 "처음 보는 영장 기각 사유"라고 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거도 방파제 비리 사건에서 이명준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에 대한 수사 요청이 들어간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증거는 명백했다. 녹취록까지 있었다. 하지만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
권력자에게는 관대하고, 권력에 불편한 사람에게는 가혹하다. 이것이 하트 여왕의 재판과 무엇이 다른가.
거대한 앨리스: 깨어나는 시민
이야기의 마지막, "앨리스!"라고 흰토끼가 크게 외쳤다. 그 순간 거대한 앨리스가 재판정 안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작고 무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원작에서는 이 장면 이후 다음 장에서 앨리스가 "당신들은 그냥 카드 한 벌에 불과해!"라고 외치며 꿈에서 깨어난다.)
대한민국 시민들도 성장하고 있다. 더 이상 법복을 입은 자들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다. 청담동 술자리 재판 판결에 의문을 제기하고, 10대 2 판결의 정치성을 비판하며, 조희대 별동대의 실체를 폭로하는 국정감사를 주목한다.
일곱 글자의 혁명: 시민이 주인인 재판
해법은 있다. 헌법 제101조를 바꾸는 것이다. 현재 조문은 이렇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여기서 일곱 글자를 지우면 된다.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
이 일곱 글자가 판사를 독점적 권력자로 만들었고, 시민을 구경꾼으로 만들었다. 미국 헌법은 사법권을 '법원(Courts)'에 부여한다. 그래서 평범한 시민 12명이 배심원으로 O.J. 심슨의 무죄를 결정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시민 참심원 2명과 직업법관 1명이 동등한 표결권으로 재판한다. 판사가 유죄라 해도 시민 2명이 무죄라 하면 무죄다. 일본에서는 검찰이 불기소해도 시민 검찰심사회가 8명 이상 찬성하면 반드시 기소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의 헌법이 사법권을 '법관'이 아닌 '법원'에 부여했기 때문이다. 법원이라는 틀 안에서 시민과 법관이 함께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500년 전 그림이 주는 교훈
제라르 다비드의 1498년 작품 '시삼네스의 심판'은 부패한 판사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장면을 그렸다. 페르시아 왕은 뇌물을 받은 판사를 극형에 처하고, 그 가죽으로 의자를 만들어 후임 판사를 앉혔다. 이 그림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벨기에 브뤼헤 시청에 걸려 있다. 권력을 쥔 자들에 대한 영원한 경고로.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우리는 판사 개인을 처벌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부패한 시스템은 바꿀 수 있다. 폭력이 아닌 개헌으로, 개인이 아닌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꿈에서 깨어날 시간
검찰청 해체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소청이 기소하고 중수청이 수사해도, 결국 판사 혼자 밀실에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진짜 개혁은 헌법 101조의 일곱 글자를 지우는 것이다. 그날이 오면 더 이상 법관 혼자서 정의를 독점할 수 없다. 시민이 정의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그냥 카드 한 벌에 불과해!" 앨리스가 외친 이 말은, 이제 거대하게 성장한 대한민국 시민들이 외칠 차례다. 가발 위에 왕관을 쓴 판사들, 맞춤법도 틀리는 배심원들, 증거도 보기 전에 평결하려는 재판—이 모든 이상한 나라는 끝나야 한다.
법치국가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법관이 아니라 시민이 주인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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