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만 막으면 1월로 넘어간다. 진영이 결집하면 대통령을 지킬 수 있다. 극도의 소요사태가 일어나면 정상적으로 군경을 동원할 수도 있다."
12·3 내란 직후 국민의힘 내부에 돌았던 소름 끼치는 말들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상욱 의원(울산 남구갑)이 7일 시민언론 뉴탐사 '뉴탐사 인사이트'에 출연해 당시의 아찔했던 순간을 생생히 증언했다.
국민의힘에서 "숨만 쉬어도 3~4선 간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가 왜 민주당 배지를 달게 됐을까. JTBC 동시간대 출연 요청을 거절하고 뉴탐사를 택한 김 의원은 2시간 30분에 걸친 대담에서 탄핵 정국의 숨겨진 이야기부터 '참 민주보수'라는 독특한 정치철학까지 거침없이 풀어놨다.
서울역 플랫폼에서 되돌아선 그날
12월 7일, 첫 번째 탄핵 표결일. 김상욱 의원은 서울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국민의힘이 단체로 본회의장 보이콧을 결정한 직후였다. 울산행 기차에 발을 올리기 직전, 그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쳤다.
"나 혼자서라도 가자. 이건 잘못된 거다."
서울역에서 국회까지 1~2km. 차는 막혀 있었다. 뛰고 또 뛰었다. 의총장 문은 잠겨 있었다. 친했던 신정훈, 위성곤, 이해식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겨우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탄핵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더 절박한 건 12월 14일 두 번째 표결이었다. 김 의원은 "12월 14일 탄핵을 못 시키면 잘못하면 내전이나 전시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는 절박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던 의원들마저 발을 빼고 있었다.
"막내가 이러는데..." 1인 시위의 진짜 이유
김 의원은 국회 본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피켓을 들고 3일 밤낮을 지켰다. 춥지도,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았다고 했다. 오직 한 생각뿐이었다.
"윤석열 멈춰야 한다. 안 그러면 전쟁 난다."
그에게는 계산이 있었다. "막내급인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 전체 보이콧하기 부담스러울 것이고, 선배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라는. 실제로 12월 14일 탄핵안은 가결됐다. 8표 차이였다.
펑펑 울며 싸운 성일종과의 점심
탄핵 표결 전날, 김 의원은 성일종 의원과 점심을 먹었다. 두 사람은 펑펑 울면서 싸웠다.
"탄핵은 더 큰 혼란을 가져올 뿐이야. 즉시 하야가 더 빠르다."(성일종)
"이런 자를 대통령 자리에 둘 수 없다. 당장 끌어내려야 한다."(김상욱)
성일종 의원의 설득에 김 의원은 "만약 즉시 하야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반드시 윤석열을 내려앉히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약속은 깨졌다. 윤석열은 하야하지 않았고, 국민의힘은 보이콧을 택했다.
"한동훈이 적으로 간주하겠다 했다"
김 의원의 폭로는 계속됐다. 2월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를 제안했을 때의 일이다. 금남로에서 계엄군을 '십자군'으로 표현하는 집회가 열렸다. 학살 현장에서 벌어진 반인륜적 행위였다.
"당장 광주에 가서 사과하자. 영령들께 무릎 꿇고 송구한 마음을 올려야 한다."
한동훈 전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최측근이 전화를 걸어왔다. "한동훈 대표의 강력한 뜻이다. 가는 순간 적으로 간주하겠다."
김 의원은 혼자 광주로 갔다. 영령들 한 기 한 기에 헌화했다. 금남로 현장에서 무릎 꿇고 사과했다. "피 흘려 만든 민주주의가 2025년에 이 모양이 되도록 우리가 못 지킨 탓"이라며.
"광주의 아들이 됐다"...TK 출신 의원의 고백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란 김 의원은 스스로를 "광주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광주와 직접적 인연이 없던 그가 이런 표현을 쓴 이유가 있었다.
"12월 3일 밤, 죽더라도 계엄을 풀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것이 80년 5월 광주였다.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용기를 줬다."
그는 광주시민들에게 약속했다. "울산 국회의원으로서 울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지만, 광주에도 국회의원 한 명 더 있다고 생각해 달라. 광주 일에도 앞장서겠다."
실제로 김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 시절 호남동행 국회의원 명예의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구민이기도 하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광주가 스며들었다"는 그의 말처럼, TK 정치인의 광주 사랑은 진영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재명은 가장 보수적인 대통령"
왜 민주당이었을까. 김 의원의 대답은 의외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가장 보수적인 후보다."
보수는 이념이 아니라 기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회가 합의한 원칙을 지키고, 품위와 통합을 유지하는 것이 보수의 역할. 87년 헌법이 담은 민주주의, 법치, 시장경제, 공정사회를 가장 잘 지킬 후보가 이재명이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충실하지 않았다. 반보수적 후보다. 개혁신당 후보는 혐오와 갈등을 조장했다. 역시 반보수다."
새납마을의 기적, 억대 성공보수를 포기한 변호사
김 의원의 진정성은 과거 행적에서도 드러난다. 변호사 시절 울산 새납마을 철거 소송을 맡았다. 지주를 대리해 완벽하게 승소 준비를 마쳤다. 억대 성공보수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멈췄다. 판자촌 주민들이 쫓겨나고, 개발제한구역인 땅은 어차피 개발도 못한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승소였다.
"지주에게는 합법적 임대차 관계를 만들어 월세를 받게 하고, 주민들은 주거 안정을 이루게 조율했다."
성공보수는 포기했다. 지금도 지주와 마을 주민들은 1년에 한 번씩 손잡고 축제를 연다.
"민주당, 지지자의 성에 갇히면 감옥된다"
김 의원은 민주당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지자들의 성에 갇히면 그건 성이 아니라 감옥이다. 지지자들만 바라보고 똘똘 뭉쳐서 국민 여론과 떨어지면 안 된다. 국민의힘이 그래서 망했다."
주식 양도세 문제로 당 함구령을 어긴 것도, 정청래 대표가 개혁신당 대표를 만나지 않은 것을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집권 여당은 품위를 지켜야 한다. 책임정당답게 행동해야 한다."
그는 민주당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국민의힘을 때리는 게 아니라,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1400만 명이 '더 이상 국민의힘이 필요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게 본질이다."
12·29 참사, "유족들은 진실만 원한다"
김 의원은 12·29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과 계속 만나고 있다. 사고조사위원회가 조종사 과실로 몰아가는 것에 분노했다.
"국토교통부 관할 사고조사위가 국토부 책임은 함구하고 조종사 탓만 한다. 활주로 끝 콘크리트 구조물은 누가 만들었나. 이 얘기가 왜 사라졌나."
그는 사고조사위원회를 독립기관으로 만드는 법안 통과를 위해 "떼써서" 특위에 들어갔다고 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더라도 마지막까지 같이 가겠다고 유족들께 약속했다."
외통위 초선의 꿈, "한반도를 물류 허브로"
초선이 외교통일위원회를 자원한 이유도 밝혔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한반도가 대리전 전쟁터가 될 위험을 막고, 오히려 기회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부산에서 평양 거쳐 유라시아 철도로 이어지면 세계 최고의 물류 거점이 된다. 제조업은 이제 인건비가 아니라 물류와 관세가 결정한다. 한국이 싱가포르보다 더 번영할 수 있다."
러시아는 연해주 방어를 위해, 몽골은 자원 수출을 위해,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모두 이 구상을 환영할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백골부대는 갈 데가 없다"
김상욱 의원은 스스로를 "백골부대"라고 불렀다. 6·25 때 북에서 탈출한 백골부대처럼 "뒤가 없어 가장 독하게 싸운다"는 의미다.
"민주당은 무조건 잘 돼야 한다. 국민의힘이 못하니까 안심이야, 이런 생각 가져서는 안 된다. 더 긴장하고 더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는 마지막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정치를 오래 하려고 하지 말고 잘 하려고 하자. 재선, 3선이 목적이 되면 눈치 보고 줄서기 하게 된다. 나는 이번 임기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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