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서 토목 회사를 운영하며 성공을 거둔 한 중소 기업가가 70억 원을 투자해 경북 최초의 아파트형 공장을 건설했다. 하지만 계약 일주일 만에 동의 없이 20억 원이 빠져나가며 10여 년 간 이어질 악몽의 서막이 올랐다. 대기업 한라 건설과 금융기관 아시아 신탁이 검찰과 법원까지 동원해 한 중소 기업인을 어떻게 파산시키고 법정 지옥으로 내몰았는지, 그 충격적인 실상을 추적했다.
경북 최초 아파트형 공장, 꿈의 시작
에이원 도시개발 유영모 대표는 구미에서 토목 회사를 운영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구미 공단을 둘러보던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경북 최초의 아파트형 공장 '한라 시그마 밸리' 사업이었다.
2009년 11월, 유영모 대표는 주식회사 에이원 도시개발을 시행사로, 한라 건설을 시공사로, 아시아 신탁을 수탁사로 하는 관리형 토지 신탁 사업 약정서를 체결했다. 총 사업비 8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65% 책임 분양 보증, 한라 건설의 의무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조항은 한라건설의 65% 책임분양보증이었다. 전체 분양가 728억 원 중 65%인 473억 원에 대해 한라건설이 책임을 져야 했다. 분양이 안 될 경우 한라건설이 현금으로 분양대금을 아시아신탁에 지급하고, 해당 상가와 공장을 직접 매입해야 하는 구조였다.
유영모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라고 한다" 며 "시행사인 우리는 위험 부담이 거의 없는 계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계약서를 보면 시행사의 부담은 1%도 되지 않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계약 일주일 만에 벌어진 20억 원 무단 인출 사건
문제는 계약 체결 일주일 후인 2009년 12월 1일에 발생했다. 아시아신탁이 유영모 대표의 동의 없이 20억 원을 한라건설로 무단 이체한 것이다. 신탁계약서에는 시행사의 지급동의서 없이는 돈을 절대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였다.
유영모 대표는 "통장을 관리하는 자들이 주고받는 돈을 제가 어떻게 다 볼 수 있겠나"라며 "돈이 나간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구미세무서에서 한라건설이 20억 원을 매출신고했는데 부가세 2억 원이 미납이라는 연락을 받고서야 무단인출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사업의 금융 주관사인 한양 증권 손모 씨의 법정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한라가 공사 대금 선급금으로 20억 원을 요구하면서 함께 협의하자고 했는데, 유영모 씨가 동의를 안 한 걸로 기억한다" 고 증언했다.
유영모 대표는 결국 구미 세무서의 지속적인 독촉에 못 이겨 2억 원의 부가세를 납부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소송에서 "유영모가 20억 원 지급에 동의했다는 증거" 로 둔갑했다.
스타 벅스 상가 29억5천만 원 강탈 사건
2011년 준공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구미에서 두 번째로 입점하는 스타벅스가 한라 시그마밸리 1층에 들어오기로 하면서 해당 상가의 분양가가 급등한 것이다.
유영모 대표는 도로변 프리미엄 상가 3개 구간을 채모 씨에게 평 당 1600만~1780만 원에 분양했다. 총 분양 대금은 29억5천만 원이었다. 당초 예정 분양가 평 당 1100만 원에서 680만 원이나 뛴 대박 계약이었다.
하지만 한라 건설은 이 분양을 인정하지 않았다. 65% 책임 분양 조항을 악용해 "초과 이익은 절반 씩 나눠 가져야 한다" 고 주장한 것이다. 유영모 대표가 거부하자 한라 건설은 해당 상가 포함하여 9개의 상가를 평 당 1100만 원으로 강제 확보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한라 건설이 이렇게 확보한 상가를 나중에 똑같이 29억5천만 원에 되팔았다는 사실이다. 등기부 등본을 확인한 결과, 한라 건설은 스타 벅스가 입점한 106호를 평 당 1780만 원에, 인근 상가들을 각각 1700만 원, 1600만 원에 판매했다.
분양 시스템 완전 마비, 고액 체납자로 전락
한라건설과 아시아신탁의 조직적 방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1년 준공 후 잔여 공사비 80억 원 정산 과정에서 계약서 제20조 5항에 명시된 "20% 할인율 대물변제 또는 할인분양" 조항을 거부하며 현금을 요구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분양 수수료 지급 중단이었다. 분양 수수료를 받지 못한 분양대행업체들이 모두 철수하면서 분양이 전면 중단됐다. 설상가상으로 분양 해약금 1년 이상 미지급으로 구미 일대에 악소문이 퍼졌다.
아시아 신탁은 한라 건설이 65% 책임 분양으로 473억 원 상당의 물건을 가져간 후 이를 매출로 인정하면서도 세금 납부는 거부했다. 결국 에이원 도시 개발은 11억 원의 국세를 체납하는 고액 체납자가 됐다.
무효 판결문으로 점철된 재판의 참상
참다못한 유영모 대표는 2012년 아시아신탁 해임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은 더욱 가관이었다.
1심에서 아시아 신탁은 태평양법무법인을 선임해 "유영모가 동의해서 20억 원을 지급했다" 고 주장했다. 유영모 대표가 지급 동의서 제출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확실한 증거도 없이 "유영모가 동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2심 재판이었다. 정식 법정이 아닌 조정실에서 판사 혼자 재판을 진행한 것이다. 유영모 대표가 "공개된 법정에서 3명에게 재판받고 싶다"고 요구했지만 변호사는 "재판은 판사가 하는 것이니 관여하지 말라"고 했다.
2심에서 아시아 신탁은 주장을 180도 바꿨다. "아시아 신탁은 한라 건설에 20억 원을 지급한 사실이 없고, 한라 건설에 물어보니 유영모한테 직접 받았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1심과 완전히 상반되는 주장이었지만 2심에서도 패소 했다.
서명도 날인도 없는 무효 결정문
가장 충격적인 것은 2심 결정문이었다. 재판장과 좌우 배석 판사의 서명도 날인도 전혀 없는 결정문이 나온 것이다. 민사소송법 제208조 제1항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런 결정문은 명백히 무효다.
2004년 대법원 판결은 "민사소송에서 판결서는 서명 날인을 통해 법관이 심리 재판에 관여했음을 인증하는 효력을 갖는다. 서명 날인이 없으면 판결은 무효"라고 명시하고 있다.
조작된 증거들의 향연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서도 한라건설과 아시아신탁은 조작된 증거를 제출했다. 13개 협력업체의 직인이 모두 누락된 수지분석표를 법정에 낸 것이다. 원본 수지분석표에는 13개 업체의 직인이 모두 찍혀 있고, 공정률 3.15% 도달시 공사비를 지급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한양 증권 손모 씨는 법정에서 "수지 분석표가 수정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 고 답하며, "수정된 것에 관련해서는 13개사가 다 도장을 찍어야 된다" 고 증언했다.
공정률 3.15%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었다. 3000평 토지를 지하 12미터까지 파고, 지진 7도까지 견디는 건물을 위해 1300개의 파일을 60미터까지 박는 대공사였다. 3개월 이상 걸리는 작업이었다.
아시아 신탁의 압도적 승률
유영모 대표에 따르면 아시아 신탁 김모 차장은 "저희하고 소송 하지 마세요. 저희가 지금까지 300번 넘게 재판했는데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라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실제로 아시아 신탁은 서울 중앙 지법에서 매년 100여 건의 소송을 진행하며 거의 승소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영모 대표는 "300전 300승에 가까운 승률"이라며 "이게 재판인지 진짜 몰랐다" 고 분개했다.
한라 건설의 해명
한라건설은 이메일 답변을 통해 "본 사안은 이미 유영모 대표가 여러 차례 형사고소하여 검찰에서 혐의 없음 결정이 나고 법원에서도 최종 판결이 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20억 원 지급에 대해서는 "사업약정서 수지표에 선급금 20억이 포함되어 있고, 집행 일주일 후 부가세 납부도 따로 요청하는 등 이의 제기도 없었다"며 "당연히 인지하고 동의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스타 벅스 상가 관련해서는 "상가 분양 초과 이익 배분에 관한 사항은 처음 듣는 내용"이라며 "상가 매각 대금은 전액 미수 공사비에 충당할 수 있는데 이를 시행사와 나누는 것은 당사에 불리한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검찰과 법원까지 동원된 조직적 기업 죽이기
이 사건은 단순한 계약분쟁을 넘어선 조직적인 중소기업 파산시나리오로 보인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손잡고 계획적으로 중소기업의 자산을 탈취하고, 검찰과 법원까지 동원해 피해자를 범죄자로 만드는 치밀한 작전이었다.
70억 원을 투자한 중소기업인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10여 년간 법정지옥을 헤맨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정의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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