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량 전 신안군수가 재임 시절 동생의 골프장 사업을 위해 송전선로를 변경한 의혹이 제기됐다. 당초 해안도로를 따라 우회하기로 협의됐던 송전선로가 갑자기 마을 인근으로 변경됐는데, 변경된 노선이 피해간 부지에 박우량 전 군수 동생의 자녀들이 이사로 등재된 골프장 개발업체가 땅을 매입하고 있었다. 박우량 전 군수는 현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특보를 맡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신안판 양평고속도로 게이트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목포에서 천사대교를 건너 차로 한 시간 거리다. 이곳에서 한국전력이 추진 중인 154kV 송전선로 건설사업의 노선이 갑자기 바뀌면서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원래 계획은 해안도로를 따라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마을과 거리를 두고 우회하는 노선이었다. 주민들은 이 노선에 협의했다. 그런데 2023년 갑자기 노선이 바뀌었다. 마을 안쪽으로, 산을 관통하는 노선으로 변경된 것이다. 당시 신안군수는 박우량이었다.
탄금마을 주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집 앞에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을 목격했다. 직선거리로 250~300m.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보면 마을 주변을 송전탑이 둘러싸고 있다. 한 주민은 "몇 억을 들여 새집을 지었는데 바로 옆으로 송전탑이 왔다"고 했다. 해안도로 쪽으로 가는 줄 알고 공사를 했는데, 갑자기 바로 옆으로 온 것이다.
주민들은 노선 변경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 어느 날 누군가 마을에 와서 "송전선로가 변경된다, 저쪽에 골프장이 들어선다"고 말해서야 알게 됐다.
"신안군의 요청으로 변경"
주민이 한전에 문의하자 답변이 왔다. "154kV 송전선로 경과지 변경은 신안군의 요청에 의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전이 아니라 신안군이 노선 변경을 요청한 것이다.
원래 이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진행되던 사업이었다. 2022년 9월 장관의 고시까지 났다. 그런데 2023년 신안군은 군 관리계획 결정을 통해 노선을 변경해버렸다. 두 페이지짜리 공문 하나로 기존 계획을 뒤엎은 것이다.
신안군 주민은 이렇게 증언했다. "송전선로를 변경할 때 간사가 와서 주민들한테 설명했다. 한 주민이 '이건 공문에 다 있다'고 했다. 공무원이 할 말이 아니다." 노선 변경에 대해 주민들과 제대로 협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군청 공무원에게 "정말 골프장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한 공무원이 "예"라고 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공무원이 팔꿈치로 찔러서 "그걸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신안군청 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셈이다.
골프장 예정 부지를 정확히 피해간 노선
노선이 왜 바뀌었는지 의문이 풀린 건 골프장 예정 부지를 확인하면서다. 신안군이 투자 유치용으로 작성한 도시관리계획 도면에는 골프장 예정 부지가 그려져 있었다. 천사대교가 바로 보이는 위치에 산이 있고, 꼭대기는 가파르지만 중턱까지는 완만하다. 골프장 만들기에 좋은 조건이다.

변경된 송전선로는 이 부지를 정확히 피해갔다. 원래 노선대로라면 송전선로가 골프장 예정 부지를 관통했을 것이다. 송전탑과 고압선은 대표적인 기피시설이다. 골프장을 치려는 사람이 머리 위로 고압선이 지나가는 곳을 선호할 리 없다. 결국 골프장 부지를 피해 송전선로가 마을 쪽으로 밀려온 것이다.
신안군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골프장 예정 부지와 마을이 있는데, 송전선로 노선을 바꾸게 된 원인이 골프장 유치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골프장 개발 회사의 이사들이 박우량 당시 군수의 조카들이다. 사실상 동생의 회사로 알려져 있다."
엔젤브릿지, 조카들이 이사로 등재
골프장 개발을 추진하는 업체는 '엔젤브릿지개발'이다. 천사대교(Angel Bridge)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법인등기부등본을 확인하니 사업목적에 '골프장운영업', '관광객이용시설운영업', '숙박업' 등이 명시돼 있었다.

등기부에 이사로 등재된 인물들 중 '박윤○', '박수○'가 눈에 띄었다. 85년생, 90년생이다. 신안군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들이 박우량 전 군수의 동생 박우득 씨의 자녀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름도 같고 나이도 비슷하다고 했다.
확인을 위해 박우득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박윤○, 박수○ 씨가 따님 되십니까?" "예." "엔젤브릿지라는 회사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따님들이 이사로 계셨던 회사가 암태면에 땅을 구입하고 골프장 건설하려고 신안군과 MOU 체결했던데요."
여기까지 말하자 박우득 씨의 태도가 돌변했다. "야 이 새끼야! 신분도 밝히지 않은 놈이!" 뉴탐사 기자라고 밝히자 "뉴탐사가 뭐 한 놈들이냐" "꺼져 이 새끼야"라며 거칠게 욕설을 퍼부었다. "혓바닥을 잘라버리겠다"는 말까지 했다.
통화 내용을 정리하면, 박우득 씨는 딸들이 엔젤브릿지 이사였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암태면 골프장 사업 이야기가 나오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페이퍼컴퍼니 의혹
엔젤브릿지의 등기상 주소지를 찾아갔다. 건물에는 '종합건축'이라는 다른 업체 간판만 걸려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사람이 없었고 책상도 비어 있었다. 창문은 깨진 채 방치돼 있었다. 엔젤브릿지라는 간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주소지에 등기된 다른 업체의 등기부를 떼보니 주소만 같고 상호는 달랐다. 엔젤브릿지는 주소지만 빌린 페이퍼컴퍼니로 보였다. 문제 있는 회사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모습이다.
엔젤브릿지 등기를 다시 살펴보니, 2024년 8월 1일자로 박우량 전 군수의 조카들로 추정되는 이사들이 사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가 될 것 같으니 서둘러 빠진 것으로 보인다.
산자부 장관도 못 말린 '엽기적 행정'
절차상 문제도 심각하다.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르면 승인받은 사항을 변경하려면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종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한다. 그러나 박우량 전 군수는 장관 승인 없이 군 관리계획 결정만으로 노선을 바꿔버렸다.
국토계획법 제86조에 따르면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외에만 군 관리계획 결정이 가능하다.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특별법이 적용되는 사업을 군수가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은 절차 위반이다.
토지이용규제 기본법에 따르면 지형도면을 고시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신안군의 고시에는 "고시 도면 게재 생략"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주민 동의 절차도, 공청회도 거치지 않았다. 절차상 하자가 명백한 위법·부당한 행정이다.
주민들은 한전과 신안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취하했다. "나이 드신 분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다. 군에서는 소송을 취하하면 마을 숙원사업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작은 마을에서 군수 권력에 맞서기란 쉽지 않다.
"박우량이 답변해야 할 일"
신안군 주민은 단호하게 말했다. "왜 지역 주민들까지 속여가면서 그렇게 했냐? 그 답변은 박우량이 해야 된다."
이 사안은 양평고속도로 게이트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평고속도로 게이트는 좋은 시설을 자기 땅 가까이 가져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안 송전선로 변경 의혹은 기피시설을 주민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자신의 가족이 추진하는 골프장 사업을 위해 다른 주민들에게 피해를 전가한 셈이다.
신안군에서 박우득 씨는 '무소불위의 권력 2인자'로 알려져 있다. 욕설 섞인 전화 통화에서 드러난 오만함은 신안군에서 박우량 일가가 누려온 권력을 짐작케 한다.
박우량 전 군수는 현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특보다. 신안군 곳곳에는 '정청래 당대표 특보 박우량'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눈만 뜨면 보이는 수준이다. 현수막을 걸 수 없는 곳에도 걸어놨다.
같은 날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주권 정부 제1의 국정운영 원칙은 오직 국민의 삶"이라고 했다. "국민의 삶을 저해하는 반칙과 특권, 불공정은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라도 반드시 바로잡겠다"고도 했다. 박우량 전 군수는 동생의 골프장 사업을 위해 주민들의 삶을 짓밟은 의혹을 받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양평고속도로 게이트를 비판했던 민주당이 같은 구조의 의혹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신안 주민들은 박우량이 다음 선거에서 다시 군수로 돌아올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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