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안철수 "핵잠수함·농축 권한, 파병 대가로 받아내야"…4개월 전 이미 합의된 사항이었다
미국 협상단 방한 4차례 연기, 지연 원인은 이란 전쟁…파병이 해결이 아니라 악화
- 안철수가 파병 조건으로 내건 핵잠·농축 권한, 2025년 11월 한미 팩트시트에 이미 명시
- 미국 협상단 방한 4차례 연기…지연 원인은 이란 전쟁, 파병은 이 지연을 악화시킨다
- 이란 핵시설 파괴 전쟁에 파병하고 농축 권한 요구하면, 미 의회에서 반대 명분만 만들어준다
안철수 의원은 3월 19일 페이스북에 "호르무즈 파병을 조건으로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 권한에 대한 명시적 확답을 받아내야 한다"고 썼다. 매경, 헤럴드, 경향이 이 발언을 보도했다. 비판도 나왔다. 그런데 어느 언론도 한 가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안철수가 파병 대가로 요구한 것이 이미 합의된 사항인지 아닌지 확인해 봤다.

핵잠 건조 승인과 농축 권한, 4개월 전에 확보됐다
2025년 11월 13일(현지 시각) 백악관이 공개한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 마지막 섹션 "FURTHERING OUR MARITIME AND NUCLEAR PARTNERSHIP"에 두 문장이 있다.(원문 바로 가기)

핵잠수함 건조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The United States has given approval for the ROK to build nuclear-powered attack submarines." 미국이 우리나라의 핵추진 공격형 잠수함 건조를 "승인(approval)"했다는 것이다. 핵잠 건조 승인 측면에서 호주에 이어 비핵보유국 중 두 번째였다.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에 대해서는 표현이 다르다. "the United States supports the process that will lead to the ROK's civil uranium enrichment and spent fuel reprocessing for peaceful uses." 결과를 승인한 게 아니라 "절차를 지지(supports the process)"한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앞에 단서가 붙어 있다. "Consistent with the bilateral 123 agreement and subject to U.S. legal requirements."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123협정) 범위 안에서, 미국 국내법 요건을 충족한다는 전제다.
정리하면 이렇다. 핵잠수함 건조는 "승인"이 났다. 농축·재처리는 "절차를 지지"한다는 약속이다. "확답"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백악관 공식 문서에 명문화됐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고, 양국 정상이 서명한 합의다.
12월에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워싱턴에서 루비오 국무장관,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을 만났다. 핵잠 협력을 위한 별도 협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올해 1월 국방부가 범정부 TF를 꾸렸고, 2월에는 외교부가 북미국 산하에 '핵추진잠수함 협상팀'까지 만들었다.
안철수 의원이 3월 18일에 "받아내야 한다"고 한 것의 뼈대는 4개월 전에 갖춰져 있었다.
미국 협상단은 넉 달째 오지 않고 있다
합의는 됐는데 이행이 멈춰 있다.
1월 초로 잡혔던 미국 협상단 방한이 2월 말로 밀렸다. 다시 3월로 밀렸다. 3월 29일 현재까지 오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우리 쪽은 준비를 다 마쳤다, 미국 쪽 일정에 달렸다"고 했다. 외교부는 "보류가 아니라 스케줄링 이슈"라고 했다. 3월 25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디나노 국무부 차관은 "광범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만 했다. 구체적 일정은 없었다.
농축·재처리 쪽은 팩트시트 원문 자체가 "supports the process"에 "subject to U.S. legal requirements"라는 단서까지 달려 있다. 미국 국내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니, 미국이 움직여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 미국이 안 움직이고 있다. 놓고 보면 안철수 의원이 "명시적 확답이 없다"고 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왜 미국이 안 오는지를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이 안 오는 이유가 이란 전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혼선과 중동사태 장기화로 미국의 관심이 한반도를 비껴가고 있다.
핵잠 협상은 국무부가 핵연료를, 국방부가 인프라를 맡는다. 미국은 지금 이란에서 1만 개 넘는 표적을 때리고 있고, 펜타곤은 지상 작전까지 준비 중이다. 국무부와 국방부가 전쟁에 매달려 있으니 핵잠 협상에 손을 못 대는 거다.
안철수 의원은 바로 이 전쟁에 뛰어들자고 한다. 파병을 지렛대로 핵잠 협상을 앞당기자는 얘기다.
따져 보자. 우리나라가 호르무즈에 군함을 보내면 미국이 고마워서 핵잠 협상을 서두를까. 미국이 이란 전쟁에 더 깊이 빠질수록 국무부와 국방부 사람들은 더 중동에 붙잡혀 있게 된다. 파병은 미국의 중동 짐을 나눠 지는 것이지, 미국 관심을 한반도로 끌어오는 게 아니다. 지연을 일으킨 원인 한복판으로 뛰어들어서 지연을 풀겠다는 셈이다.
이란 핵시설 부수는 전쟁에서 농축 권한 달라고 하면
한 겹 더 들어간다.
핵잠 건조와 우라늄 농축 권한은 핵비확산(NPT) 체제 안에서 돌아간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이걸 넘기려면 123협정을 고치거나 별도 협정을 맺어야 하고, 미 의회가 90일 동안 검토한다. 팩트시트에 "subject to U.S. legal requirements"라고 단서를 단 이유가 이거다.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우리나라가 핵비확산 체제를 모범적으로 지켜왔다는 신뢰다.
지금 이란 전쟁이 왜 시작됐나. 이란 핵 프로그램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두들기고 있다. 이 전쟁에 우리나라가 파병하고 그 대가로 농축 권한을 달라고 하면, 바깥에서 보기에 '핵시설 부수는 전쟁에 낀 나라가 그 보상으로 핵물질 권한을 챙겼다'는 이야기가 된다. 미 의회 90일 검토에서 비확산 진영 의원들한테 반대표 명분을 갖다 바치는 꼴이다.
안철수 의원의 주장은 자기가 원하는 걸 얻는 데 가장 불리한 길을 고르고 있다.
"이란 다음은 북한" 전제부터 안 맞는다
안 의원은 3월 4일에는 페이스북에 "이란 문제가 해결되면 다음은 북한"이라고 썼다. 707특임단 위상을 세워야 한다고도 했다. 707특임단은 12·3 비상계엄 때 국회 봉쇄에 투입된 부대다. 단장 김현태 대령은 올해 1월 파면됐다.
3월 29일 현재, 이란 문제는 해결은커녕 확전 직전이다. 트럼프는 이란 발전소 공격을 4월 6일까지 유예해뒀다. 애널리스트 바이런 캘런은 5월까지 끝날 확률 25%, 2027년까지 이어질 확률 35%로 봤다. "해결되면 다음은 북한"이라는 말의 출발점부터 서 있을 자리가 없다.
진단은 맞지만 처방이 틀렸다
팩트시트 이행이 밀리고 있다는 진단은 맞다. 그런데 밀리는 원인이 이란 전쟁이고, 파병은 이 지연을 더 굳히고, 파병 대가로 농축 권한을 달라고 하면 NPT 체제에서 우리나라 입지가 깎인다. 병을 키우는 약이다.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이 4개월 전 정상회담의 핵심 합의를 모를 리 없다. 알면서 "명시적 확답이 없다"고 프레이밍한 거라면, 이행 지연 책임을 현 정부에 떠넘기면서 파병에 명분을 씌우려는 정치적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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