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이재명 테러 배후 '김충식 메모' 보름만에 무너져: 정천수 "누가 썼는지 모른다" 자백

6월 입수 메모, 특검법 발의 직후 공개...2주 만에 "여러 사람이 쓴 노트" 번복

2025-09-02 01:23:04

지난 8월 13일, 열린공감TV 정천수 PD가 공개한 메모 하나로 최은순의 내연남으로 알려진 김충식에게 시선이 쏠렸다. '세계로교회 손목사 아산배방 부동산 7억'이라는 짧은 문구가 적힌 이 메모는 이재명 전 대표 테러 사건의 배후로 김충식을 지목하는 증거로 제시됐다. 정천수는 이 메모를 "소름 돋는 발견"이라며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9월 1일, 정천수 스스로 이 메모를 김충식이 썼는지 알 수 없다고 시인하면서 모든 주장의 근거가 사라졌다.

▲열린공감TV는 지난 8월 13일 김충식을 이재명 테러 배후로 지목하며 그 근거로 손목사(세계로교회) 메모를 처음 공개했다.


정천수는 6월 10일 김충식 수첩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왜 두 달이나 공개를 미뤘을까. 8월 11일 김충식 특검법이 발의되고 이틀 후인 8월 13일에야 메모를 공개한 타이밍이 의미심장하다. 이재명 테러의 배후를 밝힐 증거라면 6월에 즉시 공개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천수는 당시 "김건희가 김충식을 통해서 사람을 모집하고, 김충식이 손현보 목사한테 부탁을 해서 사람을 찾았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확신에 찬 그의 주장은 언론과 정치권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김충식 "내가 쓴 것 같지 않다"...필적 위조 고소 예고


8월 28일, 뉴탐사가 김충식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열린공감TV는 8월 30일 갑자기 뉴탐사 강진구 기자를 '밀정'으로 몰아세우는 보도를 내보냈다. 김충식 인터뷰 방송을 앞두고 선제적 물타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8월 31일 방송된 뉴탐사의 3시간 인터뷰에서 김충식은 '세계로교회' 메모에 대해 "내가 쓴 것 같지 않다"고 명확히 부인했다. 그는 "필적 위조 의혹을 포함해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탐사는 정천수의 필체와 메모를 비교 분석한 결과도 공개했다. '사'자의 획순, '회'자의 패턴이 놀랍도록 일치했고, 정천수가 과거 작성한 피신조서의 '윤'자와 작년 김건희 약정서라고 공개한 문서의 '윤'자가 완벽하게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열린공감TV 측이 제시한 김충식 메모, 김건희 약정서와 정천수의 진술서(23.3.14), 요청서(22.4.22), 피신조서(22.4.15) 상의 정천수 필체와 비교


김충식은 인터뷰에서 손현보 목사를 전혀 모른다고 했다. 이재명 테러범과도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천수가 주장한 '테러 배후 시나리오'의 핵심 연결고리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제 필체랑 거의 비슷하죠"...정천수의 당황스러운 자백


뉴탐사 보도 직후 정천수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9월 1일 방송에서 그는 "김충식의 노트는 김충식이 하나하나를 자신의 자필로 썼다라고 믿을 수가 없을 만큼 확연히 다른 필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8월의 "김충식 비밀 노트"가 9월에는 "여러 사람이 쓴 노트"로 둔갑한 것이다.


정천수는 "동거녀도 메모했고, 측근들이 필기했고, 심지어 손자가 적은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더 놀라운 건 "저도 처음에 그 필체를 보고 나서 깜짝 놀랬습니다. 제 개인 필체와 약간 엇비슷해 보이거든요."라는 고백이었다. 자신의 필체와 비슷하다고 인정하면서도 "필체를 가지고 논하는 것 자체가 코끼리 뒷다리 긁는 것"이라며 필체 논란을 폄하했다.

▲열린공감TV 정천수 씨가 김충식 수첩 메모가 김충식이 직접 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입장을 처음 밝혔다.(2025.9.1)


뉴탐사가 필체 감정 협조를 요청했지만 정천수는 거부했다. 자신이 쓰지 않았다면 감정으로 증명하면 될 일이었다. 그의 거부는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손현보 목사에게 전화 한 통 안 한 언론과 정치권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인 점은 언론과 정치권 누구도 기본적인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현보 목사에게 김충식을 아는지 물어보지 않았고, 김충식 본인에게 메모를 썼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서정필 기자는 서희건설 손윤익 고문에게는 전화해 "김충식을 모른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 왜 핵심 당사자인 손현보 목사에게는 같은 확인을 하지 않았을까.


김어준의 뉴스공장, 매불쇼 같은 대형 채널들이 이 검증되지 않은 메모를 반복 인용했다. 최혁진 의원과 서영교 의원 같은 현역 국회의원들도 이를 근거로 테러 배후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최혁진 의원은 9월 1일 매불쇼에서도 "김충식의 자필이냐 아니냐 논란이 있다"면서도 "김충식이 테러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증거가 불확실한데도 결론은 단정적이었다.


정천수는 과거에도 제보자 음성 조작 등으로 신뢰를 잃었던 인물이다. 그런데도 언론과 정치권은 그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언론의 기본인 교차 검증을 포기한 채 선정적인 음모론만 확산시킨 것이다.


15일 소동이 남긴 것...진짜 수사는 표류


이재명 테러 배후설의 논리 구조는 단순했다. 김충식이 메모를 썼고, 이것이 손현보 목사와의 연결 증거이며, 따라서 테러를 사주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전제가 무너지면서 모든 주장이 허공에 떴다. 김충식이 쓰지 않은 메모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15일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김충식 메모 소동. 그것은 검증되지 않은 메모 하나에서 시작된 거대한 해프닝이었다. 이 소동은 김충식에 대한 수사 동력을 낭비시켰고, 김건희 특검 논의의 초점을 흐렸다. 뉴탐사가 2024년 1월부터 추적해온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와 이재명 테러 배후 의혹에 대한 진지한 수사 가능성도 희석시켰다.


건전한 공론의 장이 무너지면 사회가 올바른 해법을 찾는 것도 어려워진다.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사실처럼 유통되는 현실 속에서, 이재명 테러 사건의 진짜 배후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정작 중요한 수사는 표류하고, 근거 없는 음모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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